"보건의료의 (남북 간) 소통은 생명을 살리는 소통"
"보건의료의 (남북 간) 소통은 생명을 살리는 소통"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12.0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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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위주 남한 의료용어, 러시아·라틴어 중심 북한과 소통 안돼
통일보건의료학회, 통일 대비해 "남북 의료용어부터 통일하자"

남한의 정신병원과 정신건강의학과를 북한에서는 각각 '49호 병원', '49호 예방과'라고 부른다. 중환자실은 '소생실', 진단검사의학과는 '실험실', 진정제는 '가라앉힘약', 링겔과 수액은 '점적주사'라고 통칭하고 파스는 '범이 반창고'라고 부른다. 

북한 의료 용어의 특징은 외래어로 러시아어와 라틴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서구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영어가 보건의료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북측은 또한 '주체의학'과 '고려의학'이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한글에 바탕을 둔 전통 용어가 보건의료 현장에 상당수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이같은 남북간 의료용어의 차이를 단순한 문화의 차이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같은 차이가 남북의료인 간 소통을 어렵게 하고 만약 통일이 될 경우 남북 의료진 간 협력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의료인들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지난 11월 29일 통일보건의료학회(이사장 김신곤)가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이사장 배순희)과 공동으로 ‘한반도 건강 공동체 형성에 기본이 되는 소통의 중심, ‘의학용어’ 통일'을 주제로 고려대학교에서 개최한 추계학술대회는 그 결과물이다. 이날 행사는 그동안 보건의료단체에서 각각 진행해 오던 남북한 의학용어 정리에 대한 성과물을 상호 공유하고 공동협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첫 번째 학술적 교류의 장이었다는 점에서 몹시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다. 

김신곤 이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재 남북관계가 매우 경색돼 이런 주제의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결국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학회는 이미 ‘한반도 건강공동체 준비’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해 통일 전 단계로 남북 건강공동체를 구성해 통일에 대비할 것을 제안해 (해당 도서가) 전국 공공도서관에 비치됐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출발로 우선 이질화된 남북 의료용어부터 통일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박상민 학술이사(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는 “서독과 동독은 통일 이전에도 의료인 간 교류가 활발했고 교육과정에도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도 서로간 면허를 인정했다”며 "(이에 반해) 남북은 학제와 교과과정도 다르고 특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열악한 상황에서 신체검진과 문진에 치우치고 있는 데 비해, 남한은 각종 첨단 검사장비 사용이 많아지는 등 수많은 차이가 있어 (통일에 대비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전우택 교수(연세의대)가 좌장을 맡고 김영훈 대한의사협회 남북의학용어사전편찬위원장이 ‘남북보건의료용어 통일을 위한 준비’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을 통해 그동안 의협에서 진행해 온 사전편찬사업의 단계별 추진 계획 및 전략을 발표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1부는 김신곤 이사장을 좌장으로 ‘보건의료 분야별 남북 용어 통합을 위한 경험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각 보건의료 단체 대표 패널들이 참석하여 해당 분야의 남북한 용어의 차이점 비교, 현재까지 연구된 내용, 용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대응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치의학 용어는 대한치과의사협회 진보형 교수(서울치대)가, 약학 용어는 대한약사회 주승재 교수(서울약대)가, 간호학 용어는 대한간호협회 김건희 교수(이화간호대)가, 한의학 용어는 대한한의사협회 최문석 부회장이, 식품영양학 용어에는 대한영양사협회 윤지현 교수(서울대)가 각각 참여했다.

이어서 남북한용어 통일을 위한 공동 협력을 위한 종합토론의 장에서는 김소윤 교수(연세의대), 허윤정 연구소장(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용운 편찬실장(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유나 고대 간호대생(전 북한 간호사), 이진한 기자(동아일보)가 참여해 의학용어의 통일을 위한 보건의료단체, 정부, 언론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했다.

2부에서는 통일보건의료 관련 학술 업데이트 세션이 마련돼 신현영 홍보이사(한양대 명지병원)가 2018-2019 최근 통일보건의료 학술연구에 대한 국내외 최신경향 흐름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통일보건의료학회-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연구비 수여식에는 이주은 임상강사(아주대 예방의학)가 ‘사회주의 국가 건강보험 도입 전후 건강지표 비교를 통한 통일 후 의료보장체계 통합에 대한 시사점 발굴’이라는 주제에 대해 500만 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됐다.

통일보건의료학회는 창립 5년차를 맞아 김신곤 이사장을 제2대 이사장으로 선출하고 의학, 한의학, 치학, 약학, 간호학 등 보건의료 전반을 아우르는 이사회 집행부 체계를 다시 한번 공고히 다지게 됐다. 

김신곤 이사장(고대의대 내분비내과, 고대대학원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건강검진 코호트를 구축, 이들의 비감염병질환과 관련된 건강 연구에 역량을 발휘해 왔다. 현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비상임이사,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상임이사로서 활약하면서 통일보건의료 분야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통일보건의료 전문가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한반도의 경색 정국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끈은 결코 놓을 수 없다"며 "보건의료 영역의 소통은 생명을 살리는 소통이며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보건의료 용어통일 준비는 한반도건강공동체를 향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어 “머잖아 남북이 공동 학술대회 개최를 성사시키는 기대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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