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상상력의 사악한 한계, 고문
인간 상상력의 사악한 한계, 고문
  • 전성훈
  • 승인 2019.11.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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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61)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한 전직 대통령이 세간의 공분을 사고 있다.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상대로 제기된 형사재판에 계속 불출석하고 있으면서도, 최근에도 골프장에서 측근들과 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말단공무원이라도 ‘당신 공무원이라면서 법 안 지켜?’라는 말을 들으면 움찔할 것이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질서 준수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적어도 출석하여 재판에 응하려는 시도라도 할 것이지만, 사람들이 비꼬듯 칭하는 그의 별명대로 그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이다. 하긴 애초에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쿠데타로 집권하여 처벌까지 받은 사람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바라는 것일까.

그가 쿠데타로 세운, 철옹성 같았던 독재정권은 한 학생의 고문치사 사건으로부터 몰락이 시작됐다. 그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경찰은 1987년 1월 14일 자정 무렵 수배학생의 소재를 알아내려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었던 박종철을 하숙방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고 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자행했고, 결국 고문 10시간 만에 죽여 버린 것이다.
국민들의 들불 같은 분노가 일어났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시위가 뒤를 이었다. 경찰은 고문한 경찰 몇 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지만, 경찰의 사건 축소조작 모의가 발각되면서 국민들은 더 이상 정권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불과 반년 전인 1986년 6월에 발생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터진 국가의 고문 살인 사건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발각되면 정권이 바뀔 정도의 위험이 있는 고문이라는 행위를 국가는 왜 계속해 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가 원하는 진술이나 정보, 태도변화를 손쉽게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사람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원하는 진술 등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수천 년간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현재에도 전세계에서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이를 근절한 상황이고, 이 역시 조건부 근절에 가깝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보기관 문서들을 보면 해외에서 테러 용의자들에게 강화 심문 기술(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을 사용하여 얻은 진술이라는 기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고문을 뜻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고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국, 프랑스 등도 실은 많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마 있을 것 같은 러시아, 그리고 아마 더 있을 것 같은 중국도 있다.
고문기술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인간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인간은 발전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구와 태양 거리의 36배 거리에 있는 깨알만한 명왕성에 우주선을 보내 사진을 찍어 보내게도 했지만, 동시에 사악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람에게 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 위해 수천 가지가 넘는 고문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끔찍하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전통적인 방법인 두들겨 패기, 채찍질, 불고문, 물고문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별로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일부러 상처를 내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염장 고문, 꼼짝도 할 수 없는 좁은 관에 며칠씩 넣어두는 벽관(壁棺) 고문, 사람을 벌거벗겨 웅크린 자세로 묶어 다리 사이에 쇠파이프를 넣어 책상 사이에 걸어두는 통닭구이 고문 같은 것들을 보면 탄식이 나온다.

잠을 못 자게 하기 위해 묶어 눕혀 놓고 이마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물방울 고문, 발바닥에 소금물을 발라놓고 염소에게 핥게 하는 간지럼 고문 같은 것들을 보면 그 기발함에 혀를 차게 된다. 그리고 남성의 양쪽 고환을 대바늘로 관통시켜서 잡아당기는 은행꼬치 고문, 남성의 요도에 볼펜심(심지어 볼펜)을 박는 볼펜심 고문 같은 것들에 이르게 되면 말 그대로 ‘식겁’하다. 게다가 볼펜심 고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남성의 요도에 기름종이를 말아 넣고 불을 붙이는 고문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가혹행위라는 점에 가장 큰 문제점이 있지만, 동시에 큰 문제점은 고문으로 얻은 진술 등이 허위진술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고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최종적인 결론을 정해 놓고 고문을 시작하기 때문에, 고문당하는 사람은 침묵하다가, 사실을 말하다가, 결국 고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내용을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을 얻기 위해 고문했다는 고문범죄자들의 말은, 모두 헛소리이다.

철옹성 같았던 독재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고문치사 사건은, 실은 여러 의사들의 용기에 힘입어 사실이 밝혀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을 사건 당일 11시경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최초 검안한 오연상 중앙대 교수(당시 전임강사)는,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서 ‘병원 응급실에 들어왔을 때까지 살아 있었다’라는 허위주장을 하려는 경찰들의 시도를, 긴급히 병원에 연락하여 시신을 병원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 차단하려 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사건 현장에 물이 흥건한 것을 목격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물고문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사건 다음날에 한양대 병원에서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 한양대 박동호 교수는 ‘부검 결과 온몸에 피멍이 들고 엄지와 검지간 출혈 흔적과 사타구니, 폐 등이 훼손되어 있었으며 복부가 부풀어 있고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는 내용의 부검보고서를 부검 바로 이틀 뒤에 작성했다. 그 사이에 경찰의 엄청난 협박과 회유가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의사들은, 이를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의사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담담한 태도를 보였고, 계속되는 정계 입문 요청도 모두 뿌리치고 의사로서의 외길을 걸었다.

지금의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는, 의술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전문가로서 사실을 말하며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이런 의사들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아무리 몇 십만 원밖에 되지 않는 실손보험금을 위해 의사가 내린 전문가로서의 판단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한숨 나오는 세태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의사들이 선배들이 걸어온 길과 지켜온 가치에 대한 자부심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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