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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바라며
봄을 바라며
  • 유형준
  • 승인 2019.11.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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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98)
유 형 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중국 당나라 현종이 둘째 아들의 부인 양귀비에 빠져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난리가 났다. 양귀비의 수양아들이며 그녀의 총애를 받았던 안록산(安祿山)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성은 폐허가 되고, 시국 근심과 부모형제를 그리는 가족애와 함께 자신의 늙은 몸을 한탄하며 두보(杜甫)는 읊조린다.

나라가 망했으나 산천은 의구한데 성안에 봄이 와서 초목이 무성하다 어려운 난세에 꽃조차 눈물을 흘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들이 놀라네 전쟁 알리는 봉화가 석달째 이어지고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만큼 귀하고 귀하다 흰머리 긁을수록 더욱  짧아지니 도저히 동곳[상투를 짠 뒤에 풀어지지 않게 꽂는 물건]을 꽂을 수가 없네- ‘봄을 바라며’, 두보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 感時花淺淚(감시화천루) /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春望(춘망)’, 杜甫(두보)
두보가 마흔여섯 살에 지은 시다.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 그의 시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처절하게 가난했던 두보는 평생 교분을 나누었던 이태백의 사촌동생 이양빙(李陽氷)을 찾아간다.

“나 배고파 죽겠어. 남은 밥 좀 없나.” “찬밥이 조금 있긴 한데…” 배고픔에 쫓겨 허겁지겁 찬밥을 먹은 탓에 두보는 그날 밤 급체(急滯)로 찬 밥 몇 톨을 입에 문채 쉰일곱 생을 비참하게 마감한다. 무명 시인 두보는 죽어서 시성(詩聖)으로 불리며 시선(詩仙) 이태백과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태백을 처음 만났을 때 두보는 서른두 살, 태백은 마흔 셋인 서기 744년이었다. 둘은 시를 주고 받는 사이였다. 여기 소개한 두보의 ‘춘망’ 중에서 널리 알려진 구절은 셋째와 넷째구다. ‘어려운 난세에 꽃조차 눈물을 흘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들이 놀라네.’ 머리 희어지며 빠져 동곳을 꽂기도 점차 어려워지는 늙음을 겪으며 세상이 무너져 스러지는 허무함을 ‘꽃의 눈물’과 ‘새의 가슴 뜀’으로 드러내는 감성은 가히 경탄할만하다. 

두보가 마흔일곱 살에 지은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일흔 살을 가리키는 ‘고희(古稀)의 유래 원문이다.

퇴청하는 날마다 (주머니는 가난하니) 봄옷을 전당잡혀 / 곡강 가에서 진탕 마시고 취해 돌아온다 / 술 외상이야 늘상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 인생 칠십 채우는게 어디 흔한 일인가 / 호랑나비 꽃 사이에 깊이 깊이 들어가 꿀을 빨고 / 잠자리 꼬리를 물에 담그며 천천히 날고 / 풍광아, 나도 함께 흘러 가자 / 잠시 서로 가까이 즐기자꾸나

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항처유) /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 穿花(蟲夾)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 點水청(蟲廷)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곡강(曲江)’, 두보

오십 넘기기도 만만치 않은 시절에 두보는 그런대로 늙음을 꽤 절절하게 거쳤다. 두보의 쉰아홉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이르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가난과 소외 두 단어를 든다. 삶은 철저히 무시되고 인정받지 못했다. 앞서 이른대로 지독한 가난은 찬밥 몇 알의 죽음을 맞게 했다. 젊어서 과거에 낙방한 이후 이속 저곳을 떠돌다가 어쩌다 얻은 미관말직의 벼슬도 감당하지 못하고 일년을 못채웠다. 그래서일게다, 그의 시에 담긴 늙음은 대개 한숨과 어쩔 수 없음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생각이 가장 잘 알려진 대목이 바로 ‘고희(古稀)’. 흔히 ‘사람이 일흔살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고 이해하려 하나 더 적확한 속뜻은 ‘애쓰고 살아야 칠십’이다. 온갖 정성을 다해야 고작 칠십 년인데 굳이 그럴 필요 있겠느냐, 어차피 삽시간이니 꽃과 잠자리처럼 현재에 만족하고 풍광처럼 흘러가자는게 본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일흔 번째 생일을 축하할 때 생일을 맞은 당사자 앞에서 ‘고희(古稀)’라는 말은 삼가고 ‘칠순(七旬)’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칠순 잔치’라 하지 ‘고희 잔치’라 표시하지 않는다. ‘고희(古稀)’가 문학적이고 멋은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늘어짐’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시 ‘춘망’의 마지막 두 연을 보면 두보의 늙음 역시 소외된 가난을 이고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흰머리 긁을수록 더욱 짧아지니, 도저히 동곳[상투를 짠 뒤에 풀어지지 않게 꽂는 물건]을 꽂을 수가 없네.’ 이를 중국 고전에 조예가 깊은 일본 교토대 교수 요시카와 쿄오지로오 등은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마흔 여섯의 두보는 벌써 백발이었던 듯하다. 수심이 일어날 때 마다 긁어대는 백발. 긁으면 긁을수록 빠져버려 비녀를 꽂을 수 없을 정도다. ---중략--- ‘혼(渾)’이란 글자는 ‘모두 다’라고 할까, ‘도무지’라고 할까, 완전히, 전적으로라는 뜻이어서 절망적인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당시(唐詩) 읽기’, 요시카와 코오지로오, 미요시 타쯔지/심경호 역 그런 늙음 속에 두보는 꽃처럼 울고 새처럼 놀라며 봄을 바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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