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아픈 유가족들··· 장기기증 확산 막는 '악성' 댓글
'악플'에 아픈 유가족들··· 장기기증 확산 막는 '악성' 댓글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11.2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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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하고 떠난 중학생 기사에 "오토바이나 타는 불량청소년" 악플
악플 본 유가족 "기사 내려달라" 호소···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감소 전환

#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A군은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한동안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가족들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A군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A군의 기증 사례는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다. 

하지만 가족들이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은 생각지도 않은 상처로 남게 됐다. A군에 대한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접하게 되면서다. 댓글들은 A군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불량 청소년”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평소 검사가 꿈이었다'는 기사 내용에 대해선 “공부도 못하는 불량 청소년이 무슨 검사를 하느냐” “장기기증자 예우도 좋지 않은데 왜 기증을 했느냐”는 식으로 유가족들 가슴에 못을 박았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이처럼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공격하는 일부 악성 댓글들이 남은 유족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유족들 입장에선 어렵게 장기기증을 결정했음에도 언론보도에 부정적 댓글이 달리면서 유족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아들의 장기를 기증한 A씨도 악성댓글로 고통을 겪었다. A씨는 “원래 (우리나라는) 신체훼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탓에 (가뜩이나) 장기기증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견디기 힘들다”며 “(여기에 더해) 아픈 댓글들로 상처를 입은 유족들을 보면 우리사회가 공동체라는 생각과 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느꼈던 씁쓸함을 다른 기증자 가족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경숙 한국장기조직기증원(기증원) 홍보부장은 "얼마 전에도 언론보도에 동의한 장기기증 유가족 사례가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배포된 적이 있는데 유족들이 악성댓글에 시달린 나머지 최근 기사전체를 내려달라는 요청을 해왔다"며 "이 같은 일로 인해 현장에서는 서약을 파기하고 장기기증을 취소하겠다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악성 댓글로 부정적 인식 확산, 장기기증자 수 감소

실제로 악성댓글의 여파가 유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쳐 장기기증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기증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지난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서 2018년 449명, 2019년 6월 현재 213명으로 감소추세다. 

뇌사 장기기증 가족동의율도 지난 2015년 51.7%에서 2018년 36.5%, 2019년 6월 31.5%로 감소하고 있다.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인구 100만 명당 9.9명에 불과해 스페인 46.9명, 미국 31.9명, 이탈리아 27.73명, 영국 24.52명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에 반해 '장기이식 대기자 및 기증자 추이'에 따르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2015년 2만7444명에서 2019년 6월 3만8977명으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수요는 갈수록 많아지는데,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종합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는 늘고 있는데 장기기증자는 감소하는 위기 상황이 연일 심각해지고 있다”며 기증 활성화를 위한 대책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하지만 장기기증을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외에는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언론보도로 촉발된 부정적 여론, 제도 개선 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아

결국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려면 사회적으로 장기기증의 숭고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기기증의 가치를 폄훼하고 조롱하는 악성 댓글은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저해하는 '암적' 존재라는 분석이다. 

기증원은 특히 "지난 2017년 언론보도 이후 특히 기증원은 물론, 기증자와 가족들에 대해서도 악성 댓글이 늘어났다"고 보고 있다. 

당시 한 언론은 장기기증 후 시신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문제가 된 장기기증자의 사례를 보도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특히 그 이유가 장기조직기증원이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에서만 시신수습 및 장례식장 이송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조항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당시 기사엔 기증원의 처사를 비난하는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

문제는 이같은 관행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증원에 대한 비난이 계속 이어지면서 일부는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기증자와 유가족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악성' 댓글로 진화해 나갔다는 점이다. 장기기증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엉뚱하게 장기기증자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당시 보도로) 협약이 체결되지 않았던 한 병원의 (문제) 사례를 통해 '(전체) 장기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좋지 않다'는 식의 인식이 국민들에게 깊게 박힌 것 같다"며 "이후 나아진 부분이 있음에도 장기기증 기사만 나오면 욕부터 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도가 나간 이후인 작년 4월부터 모든 기증자에 대해 기증자 이송 지원서비스가 제공된다. 뇌사 장기기증을 한 기증자의 유가족이 수술 받은 병원이 아닌 다른 장례식장 이용을 원하는 영구차 지원과 장제비 360만원, 진료비 180만원 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 내년부터는 장기조직기증원이 직접 뇌사 장기기증자 이송지원을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장례지도사도 파견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장기기증자의 생명 나눔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도심에 조형물 등을 설치하는 기념공원 조성도 검토 중이다.  

조원현 원장은 “최근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바꾸기 위해 청소년 및 직장인들을 위한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기증자 예우 강화를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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