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손에 묻다
흙이 손에 묻다
  • 유형준
  • 승인 2019.11.1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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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97)
유 형 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흙이 손에 묻었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산세비아* 화분을 들여 놓으려다 손에 흙이 묻은 것이다. 흙을 묻힐 기회가 거의 없었던 탓인지 마치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 간 동생의 홀연한 방문을 맞던 때의 느낌이 든다. 물로 씻어 버릴까 하다가 작게 덩어리진 것이 쉽게 떼어질 것 같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기로 했다. 떼어 화분에 놓으려니 마음처럼 쉽지 않다. 여러 번 털어내고 나서도 흙 몇 톨이 남아 있다. 쉬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애틋함을 보면서 그 인연을 생각한다.

몸과 흙은 닮은 데가 있다. 사람이 흙으로 빚어졌다는 신묘불측함을 펼쳐 늘어놓을 필요도 없이 구성 성분과 구조만 살펴 보아도 서로 닮은 게 많다. 산소, 탄소, 칼슘, 철분 등의 원소들이 비슷한 비율로 들어 있고 몸의 가장 겉에 있는 피부와 지구 표면의 흙이 켜켜이 쌓인 모양이 그렇다. 흙은 맨 겉의 흙가루층 밑에 미생물에 의해 낙엽이나 동물의 사체 등이 썩어 영양이 넉넉한 흙이 쌓여 있고 그 아래에 모래와 자갈과 진흙층이 있고 돌 부스러기와 돌덩이가 맨 밑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피부 역시 살갗 바로 아래에 잘 짜인 결합 조직인 진피가 있고 그 밑에 지방이 넉넉한 피하층이 있다.

이처럼 각별한 닮음 때문일까 어릴 적 흙장난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득했다. 꼭 쥔 고사리 주먹을 땅에 대고 그 위에 흙을 둥그렇게 모아 덮고 한 손으로 두드리며 ‘두껍아 두껍아 뭐하니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 부르면 주먹은 슬그머니 두꺼비가 되었다. 살며시 손을 빼내어 지어진 두꺼비집에 흙을 조그맣게 떼어 돌돌 빚은 흙경단을 두꺼비 밥이라고 넣어 주던 일. 흙 묻은 손으로 콧물 닦아 낸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고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음성이 저녁 짙은 동네 골목을 가득 채우고나서야 끝나곤 했다. 두꺼비 등껍질처럼 흙물이 든 손은 흙의 감촉을 꼭 쥐고 못내 아쉬워했다.

당시의 촉감을 다시 느낀 것은 한참 뒤 외국에서 맞은 어느 정월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유학 시절, 선진 외국인들과의 고요하면서도 팽팽한 경쟁을 잠시 접고 도시를 한참 벗어난 토기장에 갔다. 필기구통을 만들어 새해의 소원을 적어 넣는 체험을 자원하여 택한 터라 제법 정성을 들여 한 과정씩 배워가며 빚었다. 흙덩이에 손을 대는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은 바로 그 감촉이었다. 흙에 물든 노래와 손등과 어머니의 저녁을 감싸는 느낌. 그날 그곳에선 어릴 적 동네로 돌아간 듯 손은 흙을 빚고 흙은 손을 빚고 있었다.

우리들의 소원이 신통한 것일까. 헌집들이 헐리고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골목 안엔 어머니의 목소리 대신에 시멘트와 색깔 페인트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신통은 지치지 않고 힘을 발휘하여 아파트 층층마다 두꺼비 대신에 우리들이 차곡차곡 들어가 사는 은전까지 베풀었다. 땅의 기운이 닿는 거리 안에 머물러야 삶의 영혼이 싱싱하다며 마을에서 가장 높게 자란 우듬지보다 더 높은 집을 짓지 않던 옛 어른들의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그 후로도 세상 회전이 가속화되더니 지금은 18층 인공 구조물 위에서 마치 구름에 발을 딛고 선 손오공처럼 세상일을 전자로 소통하고 있다.
흙은 편리함의 포장 아래 갇히고 가장 높던 나무도 저 아래로 가물가물해지면서 아토피, 비염, 천식 등과 같은 알레르기 질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낯선 것에 대한 반응인 알레르기를 떨쳐내려 황토방, 황토 내복, 황토 음식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느라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가깝게 부대껴야할 처지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으니 서로의 그리움이 점점 더 간절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드디어 동네 외진 곳 단 한 군데 남은 자투리 빈터에도 경전철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중장비로 파헤쳐 퍼내지는 저 땅은 꽤 여러 채의 두꺼비집이 들어 섰던 곳이다. 어머니의 긴 음성도 늘 가득했었다. 흙이 쌓인 순서가 흐트러지고 건설 장비의 기계소음에 노래와 음성이 묻혀가고, 흙이 손등을 떠나 허공으로 흩어지고 인공구조물이 대신 들어가 박혀있다. 표피와 진피가 엎어지고 흐트러져 어긋나더니 낯선 물질이 들어차 원래의 위치와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손바닥만한 흙터조차 찾을 수 없다. 노을도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조각조각 나뉘어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여전히 두꺼비를 부르고 있고 저녁때를 맞춘 어머니의 부름을 듣고 있다.

서로 닿아 이어져 있음이 항상 눈에 보여야 하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아도 기억 속 제자리에 놓여 있으면 있을수록 질겨진다. 구름처럼 높은 허공에서 세파를 겪으며 모질 정도로 문대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질긴 흔적, 바로 인연이다. 손에 묻은 흙 한 톨을 화분에 되돌려 놓으며 유년의 흙장난을 떠올린다.

*산세비아의 별명은 공기청정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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