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별이 장벽이 되지 않는 환경을 꼭 만들어주고 싶어요"
[인터뷰] "성별이 장벽이 되지 않는 환경을 꼭 만들어주고 싶어요"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11.13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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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 대전협 사상 첫 '여성' 회장 맡아
의료현장에 산재한 여성 전공의 문제 알리고 해결하겠단 각오
여의사회와 전공의 선발과정에서의 성차별 해소 캠페인 진행

# A씨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내과 전공의로 근무하던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병원측에 알리자 병원은 A씨를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여성 전공의가 임신을 할 경우 주 40시간 근무 제한이 생기는데, 이를 맞추려면 당직 근무를 설 수 없으니 대신 당직 근무가 없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A씨는 전공인 내과의 여러 분과 수업을 받지 못하게 됐다. 또한 정상적인 몸 상태로도 버티기 힘든 응급실 근무를 하느라 몸에 이상 신호가 왔고 A씨는 결국 전공의 과정을 중도에 포기했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A씨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외견상으로는 임신부에 대한 주 40시간 근무처럼 정부 정책이 여성 전공의를 배려해주는 것 같지만, 차별 없이 이를 뒷받침할 추가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이어서 임신한 전공의들은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차별과 문제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이같은 제도적 미비로 인해 임신한 전공의는 물론, 함께 일하는 다른 전공의들도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 

임신 문제는 여성 전공의가 겪는 차별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여자의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1170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의료계 성평등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공의 지원과정에서 10명 중 6명이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1항과 제7조 1항에 위배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회장(삼성서울병원 외과 3년차)은 대전협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이다. 박 회장은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지금까지 산재해 있던 의료 현장에서의 여성 전공의 문제를 적극 알리는 한편,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박 회장은 최근 전공의 성차별 척결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국 수련병원 225곳에 관련 포스터를 배포하고 민원 창구를 신설해 성차별 피해 사례를 모은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여성 전공의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 전공의들에게 "‘성별’이 결코 ‘장벽’이 되지 않는 환경을 꼭 만들어 주고 싶다"는 박지현 회장을 의사신문이 만났다. 

 

Q. 지난 9월 대전협 첫 여성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여성 전공의 수련문제 개선을 약속했다. 현재 여성 전공의들이 처해 있는 여러가지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순히 남성 위주의 의료 환경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의료계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의료진이 희생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복지’라는 단어와 ‘보호’라는 단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성 보호와 전공의에 대한 복지는 궁극적으로 의료계 전반에 충분한 인력 투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뤄질 수 있다. 이는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꼭 수행돼야 할 과제다. (이러한 전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책도 없이 진행하다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빈자리를 채우는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선 제대로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박지현 회장은 전공의 성평등 문제 해결 등 의료계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제70차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총회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박지현 회장은 전공의 성평등 문제 해결 등 의료계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제70차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총회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Q. 얘기를 듣다보니 정책적으로 큰 사각지대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여성 전공의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임신 전공의 문제는 유럽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함께 가지고 있는 문제다. 우리보다 근무시간 제한을 먼저 시작한 미국도 똑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련환경 실태 파악이 최우선이고 대책은 그 다음이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전공의법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고 나니 실제로 근무시간 제한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는 반면, 겉으로만 이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EMR 차단 같은 꼼수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임신 전공의의 근무시간만을 제한하는 것이 모성보호 및 여성 전공의 수련환경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함께 의견을 모아 현재 수련 환경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전공의 복지’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Q. 최근 여자의사회와 함께 ‘전공의 선발과정에서의 성평등 유지를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을 열게 된 계기가 있나

취임과 동시에 갑자기 시작된 사업은 아니다. 여의사회와는 이승우 전 회장 임기 때부터 지속적으로 간담회를 가지며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여러 사안에 대해 검토해왔다.

캠페인을 통해 제보도 받고 있는데 여성 전공의들이 병원 내에서 차별을 당한다고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과 관련해 ‘선발과정’을 가장 많이 언급한다. 꽤 오래 전부터 여의사회와 함께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제도적 보완 이전에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에 도달해 이번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대전협과 여의사회가 함께하는 전공의 선발과정에서의 성평등 유지를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 포스터
대전협과 여의사회가 함께하는 전공의 선발과정에서의 성평등 유지를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 포스터

 

Q. 이번 캠페인을 시작으로 앞으로 여성 전공의들을 위해 진행할 회무엔 어떤 것들이 있나

전공의 선발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필두로 어느 과에서든 ‘성별’이 장벽이 되지 않는 수련환경을 만들고 싶다. 임신 문제도 전공의 선발 문제 이상으로 큰 비중을 둬 해결에 매진할 것이다. 특히 임기 안에 다양한 여성 전공의들의 의견을 모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 더 많은 여성 전공의들이 자기가 소속된 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껏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Q. 끝으로 같은 여성으로서 동료 여성 전공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 때가 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어릴 적 내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꿈꿔 온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힘을 내곤 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꿈꾸던 모습이고, 그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 더 나아질 미래를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모두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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