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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설계사가 다 해주는데"··· 국민편의 앞세우지만 실상은 보험사 잇속 챙기기
"지금도 설계사가 다 해주는데"··· 국민편의 앞세우지만 실상은 보험사 잇속 챙기기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11.11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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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법개정안 "진료비계산서 등 의료기관에 송부 강제화"···보험사 "소비자 불편 해소"
현재 절반은 설계사가 청구 대행, 소비자는 아쉬울 게 없어···의료계 "병원에 비용 떠넘기기"

최근 정부가 전향적으로 돌아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에 대해 정부와 보험업계는 '국민 편익 증진'을 입법 취지로 내세우고 있다. 보험에 가입한 일반 국민들이 법 개정을 통해 편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국민을 앞세운 포장을 뜯고 속내를 들여다 보면 결국 '보험회사 배불리기' 정책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청구 금액은 작고 건수는 많은 실손보험···보험사 "소비자가 불편 겪고 있다"

실손보험은 병·의원이나 약국에서 건강보험으로는 보장받을 수 없는, 환자 본인부담금에 해당하는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해 주는 '사적' 보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손보험 가입자는 중복 가입자를 제외하고도 3800만 명에 달한다. 

실손보험은 청구 금액은 작고 청구 건수는 많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지금은 보험가입자들이 병원을 방문해 서류를 떼고 이를 다시 팩스나 우편으로 보험사로 보내야 하는 등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하면 무엇보다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보험사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업무를 줄일 수 있으니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불편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보험사들은 '심평원'을 중개기관으로 두고 병원이 의무적으로 심평원에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같은 보험사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의료기관이 보험회사에 전자적인 형태로 전송하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이 법안과 관련한 반대 성명 발표가 잇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부산시의사회는 지난 5일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 사무실 앞에서 입법 반대 집회를 열었다. 

◆소비자가 불편하다?···의료계 "이득 얻는 건 행정비용 절감하는 보험사뿐"

의료계는 이와 같은 보험사의 주장은 "소비자를 앞세워 실제로는 보험사의 잇속을 챙기려는 속셈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무엇보다 보험사들은 소비자들이 실손보험 청구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 상황에서 불편한 것은 소비자가 아닌 보험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우리나라는 설계사가 가져가는 수당이 비싸다 보니 보험가입자가 영수증을 보내주면 설계사가 이를 청구해주는 대행업무도 해주고 있다"며 "전체 실손보험 청구의 절반 정도를 설계사가, 나머지를 팩스나 앱을 이용해 청구하기 때문에 지금도 개인 입장에선 전혀 불편할 게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구 절차를 간소화해서 이득을 보는 쪽은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보험사뿐이란 얘기다. 

또한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심평원이 중개기관 역할을 하게 되면 심평원은 자연히 현재 병원측에 급여 정보를 요구할 때처럼 체계화, 표준화된 자료를 요구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심평원에 보낼 자료를 일일이 가공하는 비용 부담은 병원이 떠안게 된다. 무엇보다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심평원이 '민간' 보험사를 위해 인력과 비용을 사용하는 것은 시장의 원리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주장의 배경에는 보험회사가 매년 발생되는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험회사의 손해율이 높아져 적자를 보는 지경에 이르자 보험사들이 그 원인을 소비자와 의료진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처럼 보험업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소액진료비에 대한 청구방법과 서류를 간소화하고 절차를 투명화해 보험금 지급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청구 수행할 의무 없어"···문재인 케어와도 배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 대해선 의료계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의료기관이 민간 실손보험 청구를 수행할 의무는 없다. 또한 개인의 의료정보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기관에 민간실손보험 청구를 수행할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민간 실손보험사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조치는 소위 '문재인 케어'를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여 국민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하는 현 정부의 기조와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공공성 강화는 민간보험 영역의 축소를 전제로 하는데, 이번 조치는 사실상 실손보험 이용을 독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현 정부가 야당이던 시절 주장했던 바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3년 초 금융위원회는 민간 보험사들의 비급여 정보 등을 집중관리하는 '보험정보원'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보험정보원을 두고 민간 부문의 '심평원'이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는데, 지금은 그같은 민간 부문에 대한 역할을 심평원에 몰아주자는 것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현 여당) 소속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은 “금융위가 설립을 추진 중인 보험정보원은 급여정보와 비급여정보는 물론이고 생명보험-손해보험 협회와 심평원의 정보를 동시에 축적하는 보험 분야의 `빅 브라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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