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폭행 잇따르는데 근무처 알려주다니···의료계 "당혹스럽다"
의사 폭행 잇따르는데 근무처 알려주다니···의료계 "당혹스럽다"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11.08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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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병원 피습 등 의료인 폭행사건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칫 신변위협될라
자문해주는 의사가 보험사 입김에서 자유롭도록 객관성 확보하는 게 중요

관련법 개정으로 당장 내년부터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제공한 의사의 소속 의료기관을 피보험자에게 알려주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하지만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의료계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의료계는 당혹감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최근 의사를 상대로 한 흉기난동이 잇따르는 등 의사의 신변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감한 개인정보인 의사의 근무처를 알려주도록 한 데 대해 일선 의료현장에선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 의해 폭행당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도 의사들의 안전을 위한 지원이나 보호는커녕 더 위험에 노출시키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실명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실명제 도입 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발 늦게 대책마련 나선 의료계···의협, 상임이사진과 토의할 것

금융위원회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될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을 지난 7월에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료계의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제도 변경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계는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안 내용은 물론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정부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정책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많다"며 "의료계에 한마디만 물어봐도 (요즘 같은 상황에선) 무리한 제도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막연히 '의료기관을 공개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협은 이제라도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안과 관련해 상임이사진들과의 토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금융당국에 의료계의 입장을 전달할 지도 논의할 예정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이와 같은 행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란 점이다. 의료법 등 의료 관련 법령을 개정할 때 의료계를 배제하거나 심지어 의료계의 지속적인 요구를 무시하는 바람에 ‘탁상공론’식 제도를 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 논의를 거친 법안이 국회를 거쳐 실제로 적용될 경우 그 해악은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실명제 놓고 의견 분분, 제3의 기관 통해 자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얻어

사실 '의료자문 실명제' 자체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채 찬반 의견이 나뉘고 있다. 실명제를 통해 나타날 부작용 못지 않게 장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소속 의사 A씨는 “실명제가 도입될 경우 의료자문의들도 투명하고 정직하게 자문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자문을 한 의료기관의 실명을 밝히는 데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A씨는 의료자문의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보험사 의료자문 관련 논란도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반해 또 다른 대학병원 의사 B씨는 "의료기관을 공개할 경우 의료인 폭행 우려 뿐만 아니라 진료 방해로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입장에 섰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의사나 의료기관과 싸우려 하는 환자들로 인해 진료훼방을 넘어선 대란(大亂)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을지병원에서 자신이 원하는 장애진단서를 끊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가 의사 진료실을 찾아가 흉기를 휘두른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환자와 의사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사안의 경우 자칫 물리적 폭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의료자문제 역시 자문 결과로 인해 보험금이 삭감된 피보험자가 의료자문을 해준 의사에게 앙심을 품고 물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의료자문 의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협 산하의 제3의 기관 등을 통해 의료자문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문을 해주는 의사가 보험회사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의료자문의는 말 그대로, 자문, 즉 소견서를 쓰는 사람인데 실명제 도입 여부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면서도 “의료자문의들이 모두 보험사 입맛대로 소견을 쓰는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의협에서 공정한 소견 관련 기준을 내주는 ‘공정한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만큼 심도있게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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