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지만 처벌할 수 없다, 공소시효
살인범이지만 처벌할 수 없다, 공소시효
  • 전성훈
  • 승인 2019.11.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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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8)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정치인도 연예인도 재벌총수도 아닌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이춘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0년대 말 대한민국을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 놓았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4세부터 71세까지 10명의 여성이 한 지역에서 연속적으로 강간살해당한, 건국 이래 초유의 연쇄살인 사건이었다.

대통령의 특명까지 내려져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되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살인은 계속되었다. 서울보다 넓은 화성군에 인구는 20만 명에 불과했고, 당시 우리나라에는 과학수사라는 개념이 희박했으니, 목격자도 없고 부실한 채증을 거친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끈질긴 노력 끝에, 경찰은 올해 7월 피해 여성에게서 나온 DNA 분석을 통해 수감 중인 재소자 중에서 DNA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냈다. 그리고 추궁 끝에 이춘재는 10월 그간의 범행, 즉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9건(1건은 진범 논란이 계속 중이다), 화성에서의 별건 3건, 청주에서의 2건 총 14건의 강간살인 범행과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범행을 자백했다.
실로 천인공노할 범행을 자백했지만, 1994년 체제를 강간살해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춘재를 현재로서는 처벌할 수 없다.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다.

공소시효란 죄를 범하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켜 공소 제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명확하게 할 점은,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범죄자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소추권’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소추 → 재판 → 처벌’이라는 국가 형벌권 행사의 첫 단추를 꿸 수 없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국가의 소추권이란 검사가 법원에 ‘이 사람을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게 하는 이러한 제도를 둔 것이 다소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형벌권 행사에 굳이 기간 제한을 둔 이유는, 첫째 국가는 오류 없는 존재가 아니어서 그 형벌권 행사도 항상 완전하지는 않으므로, 그 권한 행사에는 일정한 기간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 형벌권 행사의 가장 큰 목적은 사회 안전 확보 및 범죄자의 교화(과거에는 ‘형무소’라고 하다가 현재에는 ‘교도소’라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이므로, 범죄 발생으로부터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위 두 가지 목적 달성을 위한 처벌의 필요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는 만능이 아니어서, 사회 안전 확보 등과 같은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수사력을 무한히 투입할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찰은 11만 명 정도인데, 이 중 교통, 행정 등을 담당하는 인력을 제외하면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의 수는 많이 줄어든다.

넷째 시간이 흐르면 증거(물증, 증언)를 보전하기 어려워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과학수사기법이 크게 발달하여, 이춘재의 경우처럼 범행시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DNA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의 확보.분석이 가능해 졌으므로, 2015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여 살인죄 중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이유를 보더라도 ‘그래도 죄지은 사람은 꼭 처벌해야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물론 그러면 좋다. 하지만 사소한 죄,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빵집에서 친구들과 장난삼아 빵을 1개 훔쳐 먹은 중년 남성에게, ‘40년 전 절도죄로 처벌하겠다’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2018년 기준으로 전체 범죄 약 158만 건 중 약 77%가 절도, 사기, 단순폭력, 교통사고 등과 같은 범죄들이다. 흔히 연상하는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강력범죄’는 약 1.7%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각각의 범죄마다 공소시효는 구체적으로 어떤가? 형사소송법은 각 범죄마다 공소시효를 정해 놓지 않고, 각 범죄의 법정형의 상한(上限)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즉 그 범죄의 법정형의 상한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5년, 무기징역은 15년,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은 10년, 장기 10년 미만의 징역은 7년, 장기 5년 미만의 징역이나 벌금 등은 5년 등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절도의 경우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 6년으로 장기 10년 미만의 징역에 해당되므로 공소시효는 7년이다. 강도나 강간의 경우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 30년으로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므로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의사의 경우에 문제되는 몇 가지 범죄들의 공소시효를 살펴보자. 허위청구가 확인되는 경우 사기죄가 문제되는데, 사기죄는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 10년으로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므로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즉 10년 전의 허위청구인 경우 공소시효의 경과로 처벌받지도, 소멸시효의 경과로 환수되지도 않는다. 처벌받지 않으므로 행정처분을 받지도 않는다.

진료상 과실로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문제되는데, 법정형의 상한은 금고 5년이므로 공소시효는 7년이다. 리베이트를 받은 경우 법정형의 상한은 징역 3년이므로 공소시효는 5년이다. 단 리베이트의 경우 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1년 미만의 자격정지 행정처분이 병과될 수 있다.

만약 진료 중 환자가 의료인을 폭행하여 상해를 입힌 경우라면 공소시효는 7년, 중상해를 입힌 경우라면 공소시효는 10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라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므로 공소시효는 15년이다. 최근의 고 임세원 선생님 사건의 범인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되었으므로 공소시효는 적용되지 않는다.

살면서 공소시효를 찾아보고 고민하게 되는 상황은 가해자로서건 피해자로서건 없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의사 분들이 공소시효를 찾아보게 되는 상황은 더더욱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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