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
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
  • 유형준
  • 승인 2019.11.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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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95)
유 형 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설니홍조(雪泥鴻爪). 눈 위 진흙[雪泥]에 잠깐 머물던 기러기 발톱자국[鴻爪]이 시간이 지나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듯이 ‘인생의 자취가 덧없음’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중국 북송의 대문호 소식(蘇軾, 1036~1101)의 시 ‘화자유면지회구’(자유의 ‘면지회구’에 답함’에 나오는 성어(成語)다. 동파(東坡)란 호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소식은 부친 소순(蘇洵)과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송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삼소(三蘇)로 불렸다. 아우 소철의 자가 자유(子由)다. 그러니까, 동생 소철이 중국 허난성에 있는 면지에서 함께 지냈던 회고를 써서 보낸 글을 받아보고 소식이 화답하는 시다.

여기저기 떠도는 인생은 무엇을 닮았는가
눈 녹은 진땅을 기러기가 밟는 것 같다.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지만
날아간 기러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새로운 탑이 서고
무너진 벽에는 예전에 쓴 필적을 찾을 수 없다.
지난날의 기구한 여행길을 아직 잊지 않고 있는가,
먼 길에 사람은 지치고 나귀는 절뚝대며 울어댔지.
- ‘자유(子由)와 함께 지나갔었던 면지에서의 옛일을 회고하며’, 소식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 泥上偶然留指爪(이상우연유지조) /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 路長人困蹇擄嘶(노장인곤건로시)]
- ‘화자유면지회구’, 蘇軾(소식)]

소식은 동생과 함께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도중에 허난성 면지를 지나가며 절에 머물렀다. 마침 절에 주석하던 노승 봉한(奉閑)의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는다. 그 후 다섯해, 다시 걸에 들렀을 때 봉한 스님은 이미 입적하였고 단지 스님의 사리탑만이 소식을 맞았다. 소식은 인생무상을 깊이 느꼈다.
간단히 시를 감상한다. 첫째 구에서 넷째 구까지 인간사의 덧없음에 대한 회의를 눈 위에 찍힌 기러기의 발자국으로 비유하고 있다. 뒤이어 인생에 대한 회의를 다섯째, 여섯째 구에서 인생무상으로 읊고 있다. 그러나 허무한 비관에 빠지지 않고 시인은 일곱째, 여덟째 구에서 지난날의 여행이 힘들었지만 즐거움으로 회고하고 있다.

무상, 덧없음의 역설인가. 찰나 반짝이고 스러지는 아침 이슬의 극치인가.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 일 년여 지난 신문에서 발견한 기사를 되읽는다.
2018년 8월 14일 오후 4시 서울시립동부병원에서 열린 장례식은 각별한 내용을 담아 조문객을 초대하였다.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고인이 되어서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루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초대한 이의 뜻에 따라 사람들은 검은 옷이 아닌 알록달록한 예쁜 옷을 입고 왔다. 초대한 사람은 수개월 전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암 진단을 받은 살아있는 망자(亡者)였다. 자신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간간히 눈물을 보였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도 불렀고 싸워서 멀어졌던 사람과 만나 화해도 하고 용서도 했다. 여러 사람들과 손을 잡고 춤도 췄다. 자신의 병세를 걱정하는 이들에겐 외려 담담한 위로를 전했다. “죽음을 즐겁게 이야기 하자. 사람은 어차피 모두 죽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좀 일찍 죽느냐 늦게 죽느냐 뿐이다. 너무 울지들 말라.” 그리고 장례식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말을 했다.

“오늘 이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죽기 전에 이별의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중요한 시간인지 생각하게 됐다. 영혼을 가진 인간의 육신이 다하는 것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라 여깁니다.”
극치이든 역설이든 삶은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죽음의 연습’이며 ‘산채로 치루는 장례식’은 발표회에 해당한다. 기러기처럼 조로(朝露)처럼 휙 사라지면 그만이지, 과정을 연습하고 발표하는 상황이 어색하거나, 혹시 기러기의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을지라도 거기엔 흔적뿐이지 기러긴 오간데 없지 않으냐는 되물음에 삶을 철학하는 일이 ‘죽음에 대한 마련’이라던 키케로(Cicero)나 ‘죽음을 배우는 일’이라 이르던 몽테뉴(Montaigne)의 사색을 보탠다.

저녁 땅거미가 젖을수록 노을은 더 붉고,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반짝인다. 삶의 꼴과 속내도 늙음이 깊어지고 죽음이 점점 더 가까이서 어른거릴수록 흠씬 또렷해진다. 누구나 다 깊어지는 또렷함을 볼 순 없다. 평탄치 못하고 가탈이 많아 ‘지치고 절뚝대며 울어댔’던 모든 발자국들 앞에 여전히 절뚝거리면서라도 지금 찰나의 발자취를 찍어가는 이들만이 바라볼 수 있는 노을이며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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