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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권역 중증외상센터 설립, 더는 미루면 안돼”
[인터뷰] “서울권역 중증외상센터 설립, 더는 미루면 안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10.30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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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중증외상수련센터, 고대 구로병원 오종건 센터장
국립의료원 이전 무산으로 서울권역 외상센터 언제 설치될지 몰라
외상외과의, 사명감에 고행길 선택···"재능 펼 수 있게 지원해 달라"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수도 서울에 중증외상센터를 하루 빨리 건립해야 합니다.”

오종건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수련센터장(사진·정형외과 교수)은 29일 의사신문과 만나 "전국 13곳에 지역별, 권역별로 운영되고 있지만 서울에는 없는 중증외상센터 건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수련센터는 외상골절 및 골수염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의로 손꼽히고 있는 오종건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또한 정형외과 조재우 교수와 중환자외상외과 조준민 교수가 지도전문의를 맡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서울지역 중심 외상전문의 집중 육성’ 사업에 따라 중증외상전문의수련병원을 지정하고 지원하며 외상전문의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고대 구로병원은 사업이 시작될 무렵인 지난 2014년 국내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보건복지부로부터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로 지정됐다. 지정되기 2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위급한 중증외상 환자를 위한 외상팀을 운영하며 다수의 외상 전문의와 중증외상환자 치료 의료인프라를 구축한 것이 수련센터로 지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외상팀은 인력과 장비에 투자한 만큼 수가 인정도 되지 않고 위험부담도 크기 때문에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에서 조직을 구성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고대 구로병원이 자체적으로 외상팀을 운영했던 이유에 대해 오 센터장은 “고대 구로병원만의 특별한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로 선정되기 2년 전, 오 교수는 당시 병원장이었던 김우경 원장을 찾아가 “외상수련센터 사업을 준비하려는데 외상외과 의사를 채용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돈은 안 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설득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김 원장은 “대학병원이 어떻게 돈 되는 것만 하느냐”며 흔쾌히 승낙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후임 병원장들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고대 구로병원은 지난 1983년 개원했을 당시부터 주변에 구로공단이 위치해 있어 외상 환자를 많이 상대해 왔습니다. 이 때문인지 외상 환자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이 병원 구성원들에게 자리잡았습니다. 당시 김우경 병원장도 수지접합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일종의 외상환자를 다루던 의사였죠. 저도 이대목동병원에서 10년간 근무하다 모교로 다시 돌아왔는데, 골절만 다루는 의사를 교수로 채용하기가 병원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고대 구로병원이 이처럼 외상환자에 대해 남다른 자세로 호기롭게(?) 외상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경영 측면에서는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가 느는 구조’다. 

현재 고대 구로병원에 외상외과 의사 3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외상외과 소속일 뿐 고대 구로병원이 복지부로부터 지정받아 운영하는 권역응급센터 소속은 아니다. 권역센터로 소속되면 정부가 급여를 지급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이들에 대한 급여를 병원 측이 지급하고 있다. 

오 센터장은 “권역응급센터에 소속된 외상외과 의사들은 (규정상) 외상수술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외상수술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 외상외과 의사들을 뽑아놓고 다른 응급환자들을 진료하지 않게 할 수도 없어 정부 지원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권역응급센터에는 외상의사가 최소 5명은 있어야 하지만, 예산 문제로 3명밖에 없다보니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와 서울시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 센터장은 "이런 이유에서도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최근까지 전국 13곳에 지역별·권역별 중증외상센터가 지정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인구 10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수도 서울에는 중증외상센터가 없다. 반면, 인구 규모가 비슷한 경기도에는 2곳의 중증외상센터(의정부 성모병원, 아주대병원)가 설치돼 있고, 인구 300만여 명의 부산(부산대병원)에도 1곳이 운영 중이다. 특히 부산 중증외상센터의 경우 규모가 다른 센터의 2배 수준이다.

전국 유일의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를 보유한 고대 구로병원에서 지금까지 배출한 외상외과 세부전문의는 모두 9명(정형외과 5명, 신경외과 2명, 외상외과 2명). 하지만 서울에 권역외상센터가 없어 이들은 모두 집이 서울임에도 수련을 마친 뒤 연세대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국군수도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안동병원 등에서 근무하며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애초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이 원지동으로 이전하면 이곳에 서울 일대를 아우르는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앙의료원 이전이 취소되면서 서울권역 중증외상센터 설치도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서울권에 중증외상센터가 최소 4곳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에 권역외상센터가 건립되면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수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외상외과 의사들은 더 큰 수익이 보장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명감과 도전의식만으로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수없이 인공관절수술을 반복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상황에서 눈 앞의 환자를 살리는 일에 보람과 매력을 느껴 외상외과를 지원한 것이죠. 이들이 최소한의 삶의 질은 보장받으면서 충분히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 아닐까요?”

스스로 고행(苦行)의 길을 택한 의사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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