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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의 현상금 사냥꾼
의료계의 현상금 사냥꾼
  • 전성훈
  • 승인 2019.10.29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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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7)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사람을 아는가? 잘 모르겠다면,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사람은 아는가? 아마 이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사람도 모르겠다면, 당신은 지난 20년간 무인도에서 살았음이 틀림없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로서 무장테러조직(전자는 IS, 후자는 알 카에다)의 수괴였다는 점, 그리고 미국 정부가 어마어마한 현상금(전자는 약 300억 원, 후자는 약 600억 원!)을 걸었다는 점이다.

현상금은 어떤 사람/단체가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이 수행해 주기를 원할 때 그에 대한 대가로 거는 돈이다. 그리고 현상금이 걸린 일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통상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이라고 한다.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하면 대부분 서부영화에 나오는 그것을 연상할 것이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현상금 사냥꾼은 현상수배범을 찾아가 죽이거나 체포한 뒤에 보안관에게 수배전단과 함께 “시체로 또는 산채로(dead or alive)” 넘기고 현상금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영화적 허구가 약간 있다.

실제로는 위 문구는 정부가 내건 현상금에는 붙지 않았고, 민간기업들이 내건 사설 현상금에만 붙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현상수배범이 사형이 확실한 중범죄자더라도 일단은 산채로 넘겨받기를 원했다. 그래야 법원에 넘겨 재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금 사냥꾼이 현상수배범을 시체로 넘겨주면 제대로 된 현상금을 주지 않았다.
반면 현상수배범에게 피해를 입은 철도회사, 은행, 축산회사 같은 민간기업들은 이런 사법절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범죄를 중단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민간기업들은 ‘생사불문하고 잡아만 올 것’을 조건으로 고액의 사설 현상금을 걸었다. 이로 인해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해당 범죄자뿐만 아니라 단지 의심받았을 뿐인 용의자들, 심지어 무고한 사람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미국도 법치주의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고, 문제점들을 눈 감아달라는 민간기업들의 정부에 대한 로비는 지금보다 심했다. 마크 트웨인과 같은 당시 지식인들은 이런 상황을 통렬히 비판했다고 한다.
그럼 현대에는 더 이상 현상금 사냥꾼이 없는가? 아니다. 미국과 필리핀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된다. 필리핀이야 치안이 불안정하므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미국이?  미국의 사법 제도는 불구속재판 원칙이 매우 강조된다. 따라서 체포된 형사피고인도 재판에 출석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판사가 명하는 금원을 납부하면 일단 석방해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보석(保釋)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다.

이 때 납부해야 하는 보석금은 상당히 고액이라,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이런 액수의 돈을 갑자기 마련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실무상으로는 피고인은 보석금의 10% 정도만 납부하고, 피고인과 계약을 맺은 민간 대부업자가 법원에 대해 나머지 보석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보석금 대부업자들을 ‘보석 보증인(bail bondsmen)’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석 보증인을 세우고 풀려난 피고인이 예정된 재판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보석 보증인은 나머지 거액의 보석금을 법원에 전액 납부해야 한다. 보석 보증인 입장에서는 생돈을 떼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고가 예정된 재판일 전에 재판을 피해 도망치면, 보석 보증인은 추적 전문가인 현상금 사냥꾼을 사적으로 고용하여 잡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상금 사냥꾼이 일부 남아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람’을 잡아오는 현상금 사냥꾼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사실’을 잡아오는 파파라치(paparazzi)가 대체했다. 대중문화의 형성, 유명인의 탄생, 인간 본성인 호기심이 결합하여 ‘대중의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어떤 사람을 잡아오는 것보다 더 손쉽고 수지맞는 장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카메라는 20세기 들어 현상금 사냥꾼이 파파라치로 대중화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 휴대폰카메라로 더욱 대중화되자, 파파라치도 더욱 대중화되었다. 각종 ‘파라치’, 즉 신고포상금을 노리는 전문신고꾼의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개파라치, 차파라치, 폰파라치, 식파라치, 영파라치, 담파라치, 세파라치, 청파라치, 선파라치, 란파라치, 실파라치, 쓰파라치...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신고포상금 제도는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의파라치’도 있다. 의파라치 중 주된 것은 무파라치(무면허의료행위), 실파라치(실손보험), 리파라치(리베이트), 부파라치(부당청구), 세파라치(탈세) 등을 들 수 있다. 무파라치는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나 감독이 없이 간호조무사나 물리치료사 등이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이를 몰래 촬영해서 의사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형태이고, 실파라치는 ‘실손보험 혜택을 위해 상병명, 치료기간 등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이에 응하면 이를 녹음한 뒤 의사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형태이다. 무파라치나 실파라치는 환자를 가장한 외부인이 대부분이고, 촬영이나 녹음시 의사의 잘못이 드러나거나 강조되도록 의도적인 편집이나 조작을 하기도 한다.

리파라치, 부파라치, 세파라치 등은 대부분 내부고발에 의해 문제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2017년 A 제약회사의 558억 원 리베이트를 신고한 내부 공익신고자에게 10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대한 공익신고 중 보건의료 관련 신고는 2018년에만 700건이 넘었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신고포상금 제도는 순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강 같은 평화가 아닌 강 같은 불신이 넘치는 대한민국에서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큰 것 같다. 대한민국 의사들이 의파라치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의파라치의 탈법과 불법에 대한 단호한 처벌, 보건의료 신고포상금 제도의 정비, 그리고 의료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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