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엘리엇, 늙음에서 절망을 읽다
젊은 엘리엇, 늙음에서 절망을 읽다
  • 유형준
  • 승인 2019.10.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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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94)
유 형 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긴 설명을 보태지 않더라도 ‘황무지’의 시인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초기에 지은 시 중의 하나인 ‘게론티온(Gerontion, 제론션)’은 도저히 비생산적이고 불건전한 키 작은 노인의 건조한 목소리를 낸다. ‘자네는 젊지도 늙지도 않아 / 마치 젊음과 늙음 둘 다를 꿈꾸며/식사 후 잠을 자는 듯해, // 여기, 나는 메마른 달의 노인, / 아이에게 책을 읽혀 들으며 비를 기다리는. / 나는 한 번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성문에 서 본 일도 없고, / 더운 비속에서 싸운 적도, / 소금물 늪에서 무릎까지 적시며 단검을 휘두르고 / 파리떼에 뜯기면서 싸운 적도 없다. / 나의 집은 퇴락한 가옥, / 창문턱에 쭈그리고 앉은 유태인, 그 집 주인 / 앤트워프의 어느 싸구려 술집에서 자식을 내질렀고 / 브뤼셀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고, 런던에 와서 약을 바르고, 껍질이 벗겨졌던’ 노인의 목소리다.

엘리엇의 노인관은 ‘게론티온’보다 이태 후에 발표한 그의 대표시 ‘황무지’에서 좀 더 확장되고 뚜렷해진다. 시빌(Sibyl)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신정현 교수의 ‘황무지’ 시평을 본다.
‘늙어 쪼그라들어 작은 병 속에 갇혀 추녀 끝에 매달려 살게 된 무녀 시빌에게 한 아이가 묻는다. “시빌, 너 무얼 원하니?” 시빌이 대답한다. “나는 죽고 싶어!”

아폴로 신은 무녀 시빌을 총애해 어느 날 소원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빌은 먼지 한 줌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먼지알만큼 많은 삶을 내게 주십시오.” 그녀는 젊음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먼지알만큼 많은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무한히 오래 살고 싶었을 뿐, 젊음을 재창조하며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시빌의 모습과, 그저 많은 문명의 이기는 원하지만 그곳에서 행복과 희열을 얻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현대 서구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시빌의 절망에는 아직 희망은 있다. 그녀는 죽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재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절망에는 희망이 없다. 그 황폐한 정신을 가지고 죽음을 피해 다닐 뿐, 재생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황무지에 등장하는 겨울에 따스함을 쫓아 남쪽으로 가는 유한계급의 사람, 종교적 신념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 문명의 값진 유산을 허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류계층 속물,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성(性)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는 방탕한 여인, 상업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장사치, 구원의 기사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는 거리의 여인 등 수많은 인물은 모두 황폐한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으로 절망하지 않는,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젊음의 재창조가 없는 영겁의 삶에도 두려움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황폐한 정신.’

시빌(Sibyl)은 그리스 시대 전설과 문학에 등장하는 무녀 또는 여사제를 가리킨다. 바티칸 시스틴 성당 천장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에 그려져 있어 잘 알려진 직업명이다. 그 시빌들 중에서 나폴리 근처의 쿠마에(Cumae)에 사는 시빌, 쿠마에 시빌이 ‘황무지’에 등장한다. 그녀는 아폴로 신에게 한 줌의 모래[신현정 교수는 먼지로 의역]를 들고 와서 그 모래만큼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허나 오래 살기만을 간청했지 늙지 않게 해달라는 청을 잊었다. 얼마 후 그녀가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자, 아폴론은 분풀이로 그녀에게 늙음을 내린다. 점점 쪼글어 들어 항아리 속에 넣어져, 종국엔 목소리만 남게 된다. 엘리엇은 이러한 쿠마에 시빌의 늙음에 집중하였다.

요약하여, 엘리엇이 그린 노인은 추하다. 이 문장을 정확히 이르면, ‘서른두 살의 엘리엇이 그린 노인은 추하다.’ 서른두 살. 이글에서 주로 언급한 시 ‘게론티온’은 엘리엇이 서른두 살에 발표한 시다. 또한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았지만 엘리엇은 두루 여유로운 환경에서 만 76년 3개월여를 이승에서 살았다. 목사인 할아버지는 재력가로 워싱턴대학을 창립했고,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서른두 살에 잘 알려진 ‘황무지’를 발표한다. 유럽을 동경하여 서른아홉 살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영국 국적을 얻었다. 예순 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예순여덟 살에 서른 살 여비서와 재혼하고 나서야 염세적인 삶의 자세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배경을 지닌 젊은 엘리엇의 시 속에 드러난 늙음에 대한 생각을 강원대 신원철 교수의 글로 정리한다.

‘엘리엇의 늙은이들은 모두 그의 초기시에 등장한다. 말하자면 예이츠처럼 실제 늙음을 경험하고 쓴 것이 아니라 젊은 시인의 상상력으로 늙은이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문명관은 매우 염세적이어서 그것을 하나의 늙은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휴지땔감을 주우며 공터를 빙빙 돌고 있는 노파, 아무 할 일 없이 아이에게 이야기책이나 읽히며 듣고 있는 노인, 벗겨지는 머리와 가늘어져가는 팔다리를 의식하며 연애를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는 중년 신사, 이 모두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엘리엇의 노인에 대한 생각을 읽게 해준다.  --- 중략 --- 육체적으로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엘리엇에게 있어 육체의 쇠락이야 말로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엘리엇은 체험이 아니라 젊은 머리로만 생각한 것이다. 수많은 고전을 섭렵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노인을 생각하고 있다. 그의 노인은 피폐한 문명을 상징하는 추한 늙은이일 뿐이다.’ - ‘예이츠와 엘리엇의 늙음에 대한 시각’, 신원철, ‘한국 예이츠 저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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