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사 11월호 낭만닥터 인터뷰(백인운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서울의사 11월호 낭만닥터 인터뷰(백인운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10.25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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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을 통해 삶의 자세를 되새기고
제 모든 것에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어요”


백인운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명확히 시작을 알 수 없을 때부터 백인운 교수는 음악과 가까웠다. 좋아서 가까이했고, 좋아서 배우고자 했다. 지금은 합창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 그에게 음악은 삶의 환기 장치임과 동시에 삶의 자세를 바로잡는 매개체다. 모든 일에 정도가 있듯 소리에도 길이 있다는 백 교수. 그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삶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이를 가능케 하는 기본 요건은 ‘책임’이다. 자신의 모든 것에 책임지는 삶… 백 교수의 10년, 20년 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어려서부터 음악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어요.
합창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요”

백 교수의 일상은 대개의 대학병원 교수들과 비슷하게 돌아간다. 출근으로 하루를 열면 병동 회진, 외래 진료, 관절 초음파 시술 등의 병원 업무로 눈코 뜰 새가 없다. 류마티스내과 집담회나 심포지엄, 학술 활동에도 성실히 참석하는 편이다.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상이지만 그는 일주일에 두 번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연치 않게 시작한 합창단, 그곳에서 백 교수는 지친 일상에 쉼표를 찍고, 삶의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성가대 지휘를 맡은 적이 있어요. 잘못 가르치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합창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2015년경 서울 오라토리오 합창단에서 2~3개월 동안 합창을 배웠어요. 당시 워낙 시간적으로 바빴던 터라 지속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성가대 지휘 활동도 그만두게 됐는데, 최근 정말 운 좋게 서울 오라토리오 합창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덕분에 다시 음악을 만나게 됐죠.”
다시 합창을 만난 건 올해 5월부터다. 바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백 교수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그는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며 미처 몰랐던 합창이란 세계에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백 교수는 덧붙인다. 
사실 백 교수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가까웠다. 공부는 안 하고 여동생과 하루종일 피아노 치며 노래만 한다고 모친은 그를 ‘베짱이’라 부르곤 했단다. 그는 교회에서 반주를 하거나 중창단, 성가대 활동을 하며 성장했다. 백 교수가 합창을 시작하게 된 건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돌아보면 그는 의대, 인턴, 레지던트 기간 10년을 제외하곤 항상 음악과 함께했다.
“피아노는 어려서 배웠고, 마흔이 넘어서는 바이올린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악기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합창은 정말 매력적인 분야예요. 특히 사람의 목소리를 능가하는 악기는 없다는 걸 느껴요.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서울 오라토리오에서 합창을 배우며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요. 모든 일에 ‘정도’가 있듯 소리에도 ‘길’이 있다는 겁니다. 올바른 법칙과 본질을 지키며 노래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어요. 80명 각자의 아름다운 소리가 하나로 모여 울려 퍼지는 합창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백 교수에게 합창은 휴식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활동이 아니다.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매개체다. ‘오늘은 어떻게 불러볼까?’, ‘오늘은 무엇을 더 발전시켜볼까?’ 스스로 묻고 답하며 실천하는 과정은 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평소 귀찮은 일은 슬며시 미뤄두곤 했는데, 합창을 만나고는 바뀌었어요. (웃음) 올바른 방향으로 나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연습 과정들이 제 일상의 연장선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지난 5개월 동안 삶에 작은 변화가 생겼어요. 제게 합창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하모니’예요.”


“오라토리오, 전통 음악을 정통으로 하는 합창단이죠.
내년에는 독일 베를린 공연에 참가할 계획입니다”

백 교수가 소속된 서울 오라토리오 합창단은 꽤 유명하다. 합창 단원만 80명이고,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더해지면 140명 정도의 대규모 합창단이다. 1991년 최영철 감독이 설립한 오라토리오는 현재 서울시 지정 전문예술단체로 합창이나 연주뿐 아니라, 음악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음악원의 기능도 있다. 백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음악의 정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오라토리오는 합창단, 드보르작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국제 안토닌 드보르작 작곡콩쿨 위원회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이든의 <천지창조>, 헨델의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야> 그리고 베르디, 베를리오즈, 모차르트의 <레퀴엠>, 미사곡 등 정통 오라토리움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죠. 게다가 체코, 독일 등 해외에서 활발히 연주하며 우리의 전통음악도 소개하고 있어요. 음악가들을 발굴, 육성하기도 하고 국제 행사를 통해 21세기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하고 있어요.”
모든 단원이 전공자는 아니지만 전공자 비율이 60% 넘는 오라토리오 합창단은 그 저력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다. 전통 음악을 정통으로 하는 오라토리오 합창단은 내년 독일 베를린에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계획 중이다. 물론 백 교수도 참여한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정기공연에 벌써 3~4번이나 참여했네요. 얼마 전에는 독일 합창단과 합동 공연도 했어요. 첫 공연을 떠올리면 방대한 분량인 멘델스존의 <엘리아>를 독일어로 소화해야 해서 정말 진땀이 났었어요. (웃음) 운 좋게 내년 독일 공연에도 참여하게 돼서 무척 영광이에요.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공연을 마치고 싶습니다.”
인생에 찾아온 멋진 기회는 백 교수에게 아직 꿈과 같지만 곧 실현될 일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가 모인 하나의 울림이 베를린을 전율시킬 훌륭한 무대가 기대되는 바다.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백 교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게 묻어난다. 그래서 음악을 통해 더 나은 개인이자 의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쉬이 수긍이 간다.
“의사는 매일 아픈 환자를 대해요. 힘들고 지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정신적인 소모가 꽤 커요. 오래 봤던 환자들은 감사하게도 저를 먼저 챙겨주세요. ‘교수님이 먼저 건강하셔야 해요’라고…. 그 말이 맞아요. 제가 건강해야 환자를 챙겨줄 수 있잖아요? 의사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환기 장치가 필요해요.”
음악 이외에도 미술, 운동 등 통로는 다양하다고 백 교수는 조언한다. 보람이 큰 한편 지치고 슬픈 일을 피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그는 동료들에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 스스로를 환기하고 재정비해 정신을 건강히 챙기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은 물론 환자에게도 좋은 길이라 백 교수는 믿는다.


“내 오더에 책임지는 의사,
내 얼굴에 책임지는 사람이 될래요”

백 교수는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29세에 다시 의대에 입학한 것이다. 늦게 의대 공부를 시작한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꿈과 목표가 생기니 의사가 되기까지의 고된 과정은 즐거웠다.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았던 의사의 표본, 지금의 스승을 만났다. 스승을 쫓아 부족한 점을 배워나가다 보니 어느새 류마티스내과 교수가 돼 있었다.
“제가 잘해서 의사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길에는 다 뜻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흔치 않은 질환을 보며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훌륭한 임상의 자질을 갖추면 언젠가 의업이라는 달란트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길이 제게도 열릴 거라고 믿어요. 그때 음악도 좋은 동행자가 되지 않을까요?”
백 교수는 여전히 의사로서 배움의 길을 묵묵히 걷는 중이다. 그 길의 원동력이 되는 건 환자들이다. 특히 내과 의사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환자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삶을 배운다. 그는 환자들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늘 겸손하게, 충실하게 삶에 임하려 노력한다. 의사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신념을 심어준 것 또한 환자다.
“레지던트 2년 차 때 중환자실에서 3개월 계셨던 환자분이 있었어요. 보통 수련은 3개월 턴인데, 내내 그 환자분과 보낸 것 같아요. 수술실도 몇 번 들어갔다 나왔다 하셨고 응급 콜을 매일 받느라 온·오프도 없었죠. 그래도 기적적으로 좋아지셔서 나중엔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보내드렸죠. 요양병원으로 직접 문병을 가기도 했어요. 이후 지금의 병원에 전임의로 오게 됐는데 외래에서 우연히 그 환자분과 만나게 됐습니다.”
서류가 필요해 외래에 왔던 환자와 전임의로 다시 병원에 복귀한 백 교수는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는 지금도 백 교수에게 외래 진료를 받는다. 환자는 백 교수에게 값진 교훈을 안겼다. 어떤 환자건, 아무리 중환이라도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물론 이후의 일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야 후회도 없다는 게 백 교수의 생각이다. 
“다소 소박하긴 하지만 ‘내 오더에 책임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제가 레지던트 때 세운 좌우명이에요. 그야말로 제가 낸 검사 처방 한줄, 약 처방 하나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무게감을 주고 있어요.” 
백 교수의 진료 철학은 삶의 철학과 이어진다. 그는 어린 시절 링컨의 위인전을 보다가 ‘40대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장에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꺼냈다. 이후 백 교수는 성장 과정 내내 자신의 40대 얼굴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40세까지의 삶에 후회가 없도록 부단히 애썼다. 묘하게도 전문의가 됐을 때 그의 나이가 딱 40세였다.
“나의 일,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외모까지 책임지는 삶을 산다면 일상이 더욱 소중해지고 매사에 신중해질 거예요. 좋은 결과물은 부수적이겠죠. 전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삶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 모든 것에 책임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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