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 전성훈
  • 승인 2019.10.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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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6)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사랑? 웃기지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송혜교를 벽에 밀어붙여 놓고, 작렬하는 눈빛과 함께 날린 바로 그 대사이다.

2000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이 드라마에는 송승헌, 송혜교, 원빈, 한채영, 문근영 등이 출연했고, 말 그대로 한류스타 공장이 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대사는 바로 저 대사일 것이다.
그 당시는 1998년 IMF 사태 이후 기존의 가치와 권위들이 급속히 무너지고 ‘돈’으로 모든 가치가 재편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사랑도 돈으로 사면 돼!’라고 위악(僞惡)을 날리는 만찢남 배우의 대사가 어찌 멋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경악할 만한 사건(가령, 유영철 사건)도 ‘법적 절차’에 들어오면 절차에 따라 차분해 지고, 항소심쯤에 이르면 하다못해 지루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법조계에서 변호사가 처절하게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를 외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위자료이다.
이번 글에서는 변호사에게 ‘얼마면 되겠냐?’를 외치게 만드는 위자료를 ‘실무적’으로 알아보겠다.
위자료란 비재산적 손해(정신적 고통)에 갈음하기 위한 배상금을 말한다. 합의금이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하지만, 본질은 ‘손해배상’이다. 위자료는 민사, 형사, 가사 사건 등에서 인정될 수 있는데, 모든 사건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은 없다. 다만 민사 사건 중 위자료가 가장 많이 다뤄지는 교통사고.산재사고 사건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전담재판부가 일정한 기준을 정해두고 있고, 이것이 사실상의 기준이 되고 있다.

먼저 가사 사건의 위자료는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다. 가사 사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혼 + 위자료 + 재산분할 + 양육비지급 청구 사건에서는 재판상 이혼 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위자료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혼 사유 중 잘 알려진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증명’되더라도 위자료는 약 500만 원 ~ 5,000만 원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1,000만 원 ~ 3,000만 원 선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가사 사건에서는 변호사(소송대리인)가 ‘얼마면 되겠냐?’를 외칠 일은 별로 없다. 혼인기간, 부정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부정행위의 정도와 기간 등을 고려하는데 판사마다 나름의 판단기준이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호사는 위자료의 액수를 다투지 않고 재판상 이혼 사유가 없음을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사 사건의 위자료는 어떠한가? 앞서 말한 서울중앙지방법원 교통.산재 손해배상 전담재판부가 현재 적용하고 있는 기준에 따르면, 무과실이고 사망한 피해자에 대하여는 1억 원이 위자료의 기준이 되고, 이는 가족들 수령액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너무 적다고? 1991년 이전에는 사망시 위자료 기준이 2,000만 원이었고, 6번의 인상을 거쳐 많이 오른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법원은 각종 지급액 산정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인색하다.

사망한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거나, 사망하지 않고 장해가 남은 경우, 일정한 산정방법을 거쳐 감액한다. 일단 이렇게 산정된 위자료가 기준이 되고, 이에 다른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여 최종적인 위자료가 결정된다.
참고적으로, 사건의 종류는 다르나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의 위자료 산정도 기본적으로 위와 비슷한 방법을 거친다. 다만 의료과실 사건에서는 통상 위자료보다 일실이익(사망한 경우), 개호비(장해를 입은 경우)가 훨씬 큰 금액을 차지한다.

이렇게 민사 사건에서도 위자료의 산정방법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어서, 변호사가 ‘얼마면 되겠냐?’를 외칠 일은 역시 별로 없다. 따라서 위자료 액수를 낮추기 위해서 피해자의 과실비율이나 노동능력상실비율을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사, 민사 사건에 비하여 형사 사건의 위자료, 흔히 말하는 합의금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시쳇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가끔씩 교통사고이건, 폭행이건, 성범죄이건 ‘나 정말 돈 없다. 그냥 감옥 갈래’라고 말하는 초월한(?) 피의자/피고인이 있다. 이 경우 변호인은 피해자측에 (비교적 당당히) ‘얼마면 되겠냐?’라고 외칠 수 있다. 합의금 낼 돈이 없다고 하는 초월한 피의자를 변호하게 되면, 변호인도 함께 초월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초월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어떻게든 피해자측과 합의하여 처벌의 정도를 낮추려고 한다. 이 경우에는 변호인은 피해자측에 (매우 공손한 말투로)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다소간 협의가 있을 것이나, 통상은 ‘업계 평균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피의자가 반드시 합의해야 하는 상황(가령, 공무원, 성범죄에 연루된 의사 등)에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변호인은 피해자측에 (극히 비굴한 말투로) ‘얼마 정도면 용서하실 의사가 있으신지요?’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닥에 엎드린 저자세 정도로는 불충분하고, 필요하다면 변호인이 땅을 파고 들어가서라도 상대방을 높여야 한다. 오죽하면 ‘흥부는 대신 맞아주고, 변호사는 대신 빌어준다’고 하겠는가. 이 경우에는 피해자측이 ‘부르는 값’을 다소간 낮추는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진다.

많은 법적 분쟁에서 위자료나 합의금에 대한 합의는 불가피하고, 특히 형사 사건에서는 특별한 기준이 없으면서도 매우 중요하다. 당당하게 ‘얼마면 되겠냐?’를 외칠 상황이 아니라면, 그리고 합의금의 액수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가능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원빈의 눈빛에 제압되는 송혜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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