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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와 쓰레기의 인연
의료계와 쓰레기의 인연
  • 전성훈
  • 승인 2019.10.15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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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5)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산속에 호랑이가 있고, 죽은이의 이름을 기억할 만큼 사람이 적던 시절에 생긴 속담일 것이다. 이제는 가죽을 남길 호랑이도 없고, 죽은이의 이름을 기억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름은 못 남기더라도, 인간이 확실히 남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쓰레기’이다. ‘쓸-에기’라는 어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로 쓸어 낸 먼지나 티끌을 일컫다가, 못 쓰게 되어 내다버릴/버린 물건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쓰레기를 만든다.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동굴에 거주하면서 동굴 안쪽에 쓰레기를 버리다가, 쓰레기가 차면 다른 동굴을 찾아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조개가 풍부한 냇가에서 조개를 잡아서 까먹고 쓰레기 더미인 ‘패총’을 만들었다.

심지어 인간이 우주에 진출한지 50년만에, 지구 궤도는 이미 18,000여개의 우주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지름 1㎝ 미만의 우주 파편을 포함하면 1억 6,600만 개(!)의 우주 쓰레기가 지구 궤도를 열심히 돌고 있다.
삼국시대의 제갈량이 인용했던 중국의 고대 문헌을 보면, ‘재를 길거리에 버리면 사형’이라는 내용이 있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난방과 요리를 위해 항상 뭔가를 태우고 있었으므로, 집집마다 내놓는 재의 총량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민간인의 쓰레기 소각이 금지되기 이전, 시골집의 아궁이에서 나왔던 재의 양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것이다). 이 때 나온 재(즉 쓰레기)를 길거리에 그냥 버리면 엄벌로 다스렸음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물론 진짜 사형까지 시켰으랴 싶기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후 시민들에게 거리의 분뇨와 쓰레기를 청소하게 하는 의무를 지웠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1883년에는 건물의 소유주가 전용 쓰레기통을 건물 앞에 설치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법령이 반포되었다. 이 법령에 대해, 쓰레기로 먹고사는 넝마주이들과, 관리비가 늘어나게 된 건물주들, 추가업무를 맡게 된 관리인들이 격렬하게 반발했음은 불문가지.
이렇게 근대에 들어 도시가 거대도시로 발전하면서 쓰레기 문제는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후 정부, 시민, 이해관계자들은 쓰레기의 처리를 놓고 다각도로 충돌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쓰레기의 수거와 폐기는 막대한 이권이 거래되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방론이지만,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쓰레기 기념비를 가지고 있다. 올해 3월 CNN이 ‘한국의 플라스틱 문제는 말 그대로 엉망이다(South Korea‘s plastic problem is a literal trash fire)’라는 제목으로 크게 조명한 경북 의성의 ‘쓰레기산’이다.
처리업체 주인 부부가 몇 년만에 아파트 10층 높이로 쌓고 결국 구속기소된 이 쓰레기산은, 쓰레기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로 인해 항상 부분적으로 불타고 있다. 중국의 서유기에는 서역 어딘가의 ‘불타는 산’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동방인 한국에도 불타는 산이 있다. 단지 재질이 쓰레기이고, 235개나 있다는 것이 특이할 뿐이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쓰레기를 만들 듯이, 의사는 진료하는 동안 의료폐기물을 만든다. 아마 정신과 정도를 제외하고는, 의료폐기물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전문과는 없을 것 같다. 이 의료폐기물은 국가적으로는 국민보건위생을 지키고, 개인적으로는 환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수물이다.
정부는 폐기물관리법에 근거하여 의료폐기물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의사들도 전문가로서 의료폐기물이 가지는 보건위생상의 위험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엄격한 관리에 동의하고,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황당한 상황, 즉 폐기물을 폐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의 처리용량 포화가 직접 원인이다.

2008년 9만 1,000톤이었던 의료폐기물은 9년만에 2배 이상 증가하여 2017년에는 21만 9,000톤에 이르렀다. 현재 의료폐기물의 92.87%가 소각, 7.12%은 멸균분쇄, 0.01%만이 재활용되고 있는데, 전국 13개 의료폐기물 처리업체는 현재 최대소각가능용량인 24만 6,000톤의 90%를 처리하고 있어 처리대기 물량을 고려하면 사실상 포화상태이다.

수도권의 의료폐기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상급종합병원 등 초대형 의료기관들이 밀집되어 있어 배출양이 막대함에도 처리시설이 부족해서, 수거 지연으로 의료폐기물 보관시한이 초과되거나, 감염 우려 등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원거리 운반이 빈번한 상황이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처리를 위해 280㎞를 이동하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옮기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의료폐기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근본적인 해결대책인 소각시설 증설에 대해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를 들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환자 일회용기저귀 중 감염우려가 낮은 기저귀는 의료폐기물에서 제외하여 일반폐기물 소각시설에서 소각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 시행령등을 개정했다. 이것만 보면 바람직한 것처럼 보이지만, 감염우려가 낮은 기저귀도 개별밀봉해 전용봉투에 담아 분리배출하고, 보관시 일반의료폐기물에 준하는 기준을 준수하며, 수집.운반도 의료폐기물 전용차량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결국 이는 ‘소각시설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의료기관이 일을 더 해라’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대책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정부는 보건위생상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면 소각시설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보건위생상 위험이 낮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 부담을 의료기관에 떠넘기는 ‘언 발에 오줌 누기’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임을 정부가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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