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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문제도, 보험금 안 주는 데 악용되나···의료자문 의뢰한 62%가 미지급
의료자문제도, 보험금 안 주는 데 악용되나···의료자문 의뢰한 62%가 미지급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10.08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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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분쟁 소지 줄이고, 제3자 의사에게 객관적인 답 구하자는 취지였는데
보험금 지급거절·삭감위해 의료자문의에 무리한 요구 강요하는 식으로 운영

보험금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의사로부터 자문을 받는 ‘보험사 의료자문제도’가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보험금을 삭감하기 위해 자신들이 고용한 의료자문의에게 자사에 유리한 자문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성 확보'란 취지와 달리 보험사 입맛대로 운용돼

보험사 의료자문은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간 보험금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당 사안이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보험계약자가 치료한 병원이 아닌 제3의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로부터 의학적으로 객관적인 답을 구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맡은 의사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답변을 요구하기 보다는 보험 회사에 유리한 입장에서 의견을 내라고 강요하는 식으로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 A씨는 “보험계약자가 보상금액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간에 대립이 일어나면 의료자문위원이 중재 역할을 하는데, 보험사에서 자문료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의료자문이 의사가 보험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현재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권역별로 지역 내 인지도가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자문위원을 위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의료자문을 받은 의료기관은 보험사로부터 소정의 자문료를 받는다.

A씨는 “보험사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거나 반대의견을 주다보면 그 뒤로부터는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하지 않는다”며 “보험사 의료자문이 과도하게 보험사 이익을 위해 요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자문이 보험금 거절 수단으로 악용

심지어 의료자문 결과를 근거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의료자문이 보험금 지급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최근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생명보험사의 의료자문 의뢰 건수는 2만94건이었다. 이 가운데 1만2510건은 보험금 일부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지급률이 무려 62%를 차지한 것이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미지급률은 낮지만 생명보험에 비해 의뢰 건수가 많기 때문에 보험사의 의료자문으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된 보험계약자 수는 오히려 더 많았다. 

즉, 지난해 손해보험회사의 의료자문 의뢰 건수는 총 6만7373건이었고, 이 중 28%에 해당하는 1만8871건에 대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의사 B씨는 “간혹 보험사들이 보험급 지급을 거절하기로 이미 결정을 내린 뒤 자신들이 내놓은 결과에 맞춰 자문을 해달라는 경우도 있다”며 “의사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실명제 도입 등을 통해 투명성 제고해야 

의료계는 이처럼 의료자문 제도가 보험사들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선 의료자문 실명제 도입 등을 통해 의료자문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보험사가 의사 개개인과 직접 계약을 맺을 경우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진료과별 대표단체나 학회, 의사회에 자문을 받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지난 8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자문의 실명제 도입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료자문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험회사로 하여금 의료자문을 실시한 경우에는 자문에 응한 사람의 성명과 소속기관 및 의료자문 결과를 서면으로 알리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의사 B씨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있지만, 의료자문 실명제 등을 통해 객관성과 공정성이 뒷받침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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