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에 창간된 (조선의보(朝鮮醫報))
해방 후에 창간된 (조선의보(朝鮮醫報))
  • 정준기
  • 승인 2019.10.02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16)
정준기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이 사진은 1946년 12월에 발간된 <조선의보>의 창간호 표지이다. 이 잡지는 해방 후에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의학 학술지로 그 다음 해 5월에 창립된 조선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잡지와 서로 경쟁하고 보완하였다.

이전에 윤일선 교수가 창립한 또 다른 <조선의보>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병리학자인 그는 1929년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스승인 후지나미 교수는 암 병리학의 태두인 독일 비르효 교수의 직계 제자였다. 윤일선은 1926년부터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부수로 시작해 조수를 거쳐 1928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제국대학 조교수가 되었다. 그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교수가 되어 해방될 때까지 근무하였다. 매우 학구적이어서 학술지의 필요성을 잘 아는 그는 1930년 11월 세브란스의전 병리학교실에서 <조선의보>를 창간했다.

한편, 한반도에서는 1911년 일본 의사들이 <조선의학회>을 결성하고 <조선의학회지>를 발간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조선인 의사들은 1930년 2월 <조선의사협회>를 만들고 <조선의보>는 그 기관지 역할을 하였다. 이 잡지는 어려운 여건으로 7년만에 폐간되었다. 해방 후 서울의대 의사학교실 김두종 교수가 문교부가 발행하던 <조선의사시보>를 인계 받아 <조선의보>란 이름으로 다시 발간하게 된 것이다.

해방 후 윤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연구뿐 아니라 학교 행정에도 몰두해 1956년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어 서울대학교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주도하였다. 이 계획으로 77명의 젊은 교수들이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의학의 각 분야별로 연수 받고 귀국해 우리나라 현대의학의 기초를 다졌다. 1973년 가을 의대생이던 필자가 선생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병리학 첫 시간에 큰 키에 마른 체구의 선생님이 긴 가운을 단정하게 입고 조그마한 목 소리로 진지하게 강의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다음은 첫 페이지에 실린 <조선의보> ‘창간의 말’이다.
“학술의 진보는 연구를 필요로 하며 연구의 확충은 발표를 기대한다. 우리가 해방된 지 이미 1년이요 또 4개월인 오늘에 아직까지 의학연구의 발표 기관을 완성하지 못함은 의학동인들의 가장 유감으로 아는바 이더니, 마침 문교부 의학교육과에서 발행 중이던 <조선의사시보(朝鮮醫事時報)>를 본사가 인계하여 지면을 확장하며, 내용을 혁신하여, <조선의보>로 개명 창간하게 되였 나이다.
이런 일이 실현되기 까지는 의학교육과 담당자의 후의와 이해가 가장 크려니와 본보 편집 관계 직원의 부담과 성원에도 많은 영향이 있는 것으로 믿는다. 특히 이 점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바이다.

지금 건국(建國) 도중에 있는 우리들은 민족 갱생(民族更生)의 결의와 웅상(雄想)으로 각 분야, 각자의 총력을 집결하여 이 대업을 달성할 중대한 임무를 가졌다. 특히 의학이 민족 갱생의 직접 기초가 되는 체력과 정력의 증강에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은 첨언을 필요로 하지 않으려니와, 의학 지식의 발달이 일반 민족 문화의 진도에 반영된다는 것은 의학 역사의 고찰에서 뚜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책무를 마땅히 수행할 의료계 동인들은 현상을 통찰하며 장래를 고려하여 의학 신생 국의 강력한 일익(一翼)을 맡아야 할 것이다.

생각하건 데 의(醫)는 학문과 술기가 결국 하나가 되는 조화에 의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이 조화로운 실현은 오직 의도(醫道)의 발현에 귀착된다. 의학, 의술, 의도 3자의 일치는 의료인의 이상이며 의도의 극치이다. 의학 분야에 있어 학문 연구와 술기의 응용과 의도의 실천을 종합적으로 단명하게 소개하여 신생 국가의 의학 건설을 촉진케 하는 동시에 의료인의 도의(道義)를 확립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본보의 당면한 사명(使命)이며 부담이다. 충분한 이해와 관대한 아량으로 협조와 성원을 지속하여 주시기를 희망하여 마지 않나이다.”

<조선의보>를 통하여 신생 조국의 의학과 의료를 발전시키고 의도를 확립하겠다는 다짐을 느낄 수 있는 명문장이다. 창간호의 내용은 더욱 우리를 흥분시킨다. ‘창간의 말’에 이어 ‘종설’, ‘임상실험’, ‘임상강의’, ‘사회의학’. ‘의사(의학 역사)’, ‘미국 의약품 해설’ 그리고 ‘외국 문헌 소개’의 순서로 논문을 배열하였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아우르면서 의도의 확립을 위해 사회 의학과 역사를 포함시키고, 미국에서 새로 나온 의약품을 소개하였다. 편집진의 의학에 관한 넓은 안목과 열정을 보여준다, 더욱 감탄할 것은 높은 수준이다. 한국인의 영양에 관한 기초자료, Weil-Felix 반응, 수혈의 합병증 같은 중요한 기초 지식을 다루고, 임상강의는 놀랍게도 호킹 박사가 앓았던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루게릭 병)이었다. 그 당시 시대적 요구였던 의료의 민주주의를 논의하고, 우리 고유 의약품을 다룬 후 당시 초기 항생제인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의 종합학술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편집 기획과 내용으로 우리 선구자들의 의학에 대한 진지성, 철저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넓은 안목과 식견은 저절로 생기는 법이다.

이 잡지와 인연이 많은 윤일선 교수는 이듬해 발행한 2호 잡지의 ‘권두언’에서 아래와 같이 의학자로서의 자세와 신념을 밝혔다.
“신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해방 후 제2의 새해를 맞게 되었다. 그간 지난 과거를 돌아보아 감회가 무량하다. 의료계는 혼돈을 지나 정돈되는 듯하나 미지수에 있는 의학계는 모든 정세에 따라 아직껏 그 시작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장구한 동안 고뇌와 인내에 살아나온 사람이다. 장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이상을 버리지는 않았으며 또 버려서는 아니되겠다.
금년에는 의료계가 통일 정비되어 의도의 본질을 수행하는데 일치하여야 하겠다. 또 의학계는 침체된 것을 발휘하여 여러가지 난관이 많으나 의학도는 스스로 정진하여 조선의학을 진전해 국내외에 소개 시키며 세계 의학에 공헌할 바 있어야 하겠다.
의학의 통일된 기관, 한층 더 나가서 과학을 포함한 학술 전체의 통일된 기관이 형성되어 우리 학문 전체의 추진력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어느 나라나 그러한 것은 소수의 열(熱)과 성(誠)이 있는 사람으로 형성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은 내용을 요구한다. 의학에 있어서도 매일 매일을 묵묵히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다 그 재료가 되겠다. 과학은 입 보다는 손이요 두뇌에 있다. 1예의 환자, 1개의 실험이 다 그 재료가 되겠다. 의사는 의사의 길로, 의학도는 의학도의 길로 돌아가야 하겠다. 그러면 자기 근방의 재료를 살펴 발견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진리는 항상 뜻을 거기에 두는 사람에게 그 발견의 기회를 줄 것이다.”
당시 의학계의 어렵고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꾸준한 열정을 강조하던 그는 위대한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쳤다.

“과학은 한없는 긴장과 불타는 정열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일과 탐구에 원하건 데 정열적이 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