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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천군보건소의 황당 ‘갑질’, 공보의에겐 오죽할까
[칼럼] 서천군보건소의 황당 ‘갑질’, 공보의에겐 오죽할까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9.3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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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열 기자

지난 26일 서천군보건소 내 보건소장실은 의협 회장실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인구 6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지자체 보건소장실에 전국 13만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서울시의사회장, 충남의사회장, 서천군의사회장 등 의료계 대표자들이 보건소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보건소장님'과의 면담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사연은 이렇다. 앞서 의협과 충남의사회, 서천군의사회 등은 이날 오후 3시 서천군청 앞에서 ‘서천군 원격의료 시범사업 및 공중보건의사 강제동원 규탄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끝난 직후 보건소 측이 즉석에서 면담을 요청했다. 이에 최대집 회장과 원격의료대응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홍준 부회장(서울시의사회장), 박상문 충남의사회장, 김신호 서천군의사회장이 집회 장소에서 1Km 정도 떨어진 보건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막상 면담을 하려고 하니 보건소 측에서 "인원수가 약속했던 것과 다르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보건소 측이 "애초 3명만 오라고 했는데 4명이 왔다"며 이를 문제삼았고, 인원수로 실랑이를 벌이던 최대집 회장 등 의협 관계자들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이다.

이날 의협은 앞서 서천군수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번엔 보건소장 측에서 먼저 요청해와 직접 찾아갔는데, '인원수'를 이유로 면전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다. 

보건소 측은 애초부터 대화보다는 시비(是非)를 거는 것이 목적이었던 듯싶다. 현장에 있던 보건소 직원은 기자를 포함한 취재기자들에게 “어차피 ‘그쪽(의료계)’에 유리한 기사만 쓸 것 아니냐”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잠시 뒤엔 의료계 대표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의료취약지의 환자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원격의료에 대해) 그러느냐”고 훈계하듯 말했다. 

비단 의료계 대표가 아니더라도, 서천군보건소의 이런 행동은 멀리서부터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갑작스레 먼저 불러놓고는 납득하기 힘든 궁색한 이유를 대며 대화를 거부하는 것을 보며 이들이 애시당초 의료계 대표들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서천군청과 서천군보건소의 연이은 ‘갑질’ 행태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문득 '의협 회장한테도 이렇게 할 정도면 공보의들한테는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날 의협의 규탄집회는 서천군보건소의 소속 공보의에 대한 갑질이 발단이 됐다. 

서천군은 불법적 요소가 있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소속 공보의의 참여를 지시했다. 공보의들이 의사로서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이를 이행하지 않자 급기야 "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내리겠다"는 내용의 서면경고장을 발송했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누가 이를 누설했는지 당사자 '색출' 지시까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지자체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지자체장을 일명 ‘소통령’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그들이 보여준 행태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형적인 ‘공무원 나으리'의 모습이었다. 

이날 서천군청 앞에는 의협 외에도 다른 단체들이 서천군의 ‘갑질’ 행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서천군의 고압적인 행동이 의료계 관계자들한테만 적용됐던 건 아닌 모양이다. 이런 곳에 후배 공보의들을 '볼모'로 남겨두고 돌아가야 하는 선배 의료인들의 표정에 짙은 그늘이 드리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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