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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대생은 글쓰기 가장 좋은 ‘경계’에 있어요”
[인터뷰] “의대생은 글쓰기 가장 좋은 ‘경계’에 있어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9.30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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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9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대상 수상자 조지현씨(중앙의대 본과 4학년)
의대생은 생사의 이면 모두 목격할 수 있어···훌륭한 글쓰기 재료 일상에서 마주해

지난 21일(토) 오후 5시 서울시의사회관 5층 강당에서 열린 ‘제9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시상식’에서 ‘경계에서’라는 출품작으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조지현 씨(사진, 중앙의대 본과 4학년). 

‘경계에서’는 의학도로서 경계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사유를 유려한 비유적 문체로 풀어내 3명의 심사위원이 최고 점수를 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 씨는 대상 수상자임에도 다른 수상자들처럼 어려서부터 특별히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거나 화려한 수상경력이 있거나 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저 평소 조용히 혼자 일기나 손편지를 쓰거나 아니면 SNS에 올린 짧은 글들이 습작의 전부라고 한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쓰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도 틈날 때마다 무엇이든 노트에 적어 두는 습관이 있다. 특히 일상에서 좋은 말이나 구절을 보면 꼭 포스트잇에 적어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기도 한다. 글쓰기로 주위로부터 특별히 인정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중학생 시절 학급문고에 쓴 짧은 소설이 급우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기분이 좋았던 게 전부다.

그런 그가 이번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고 에세이문학을 통해 등단까지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농반진반으로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작가가 되는 것이냐”고 축하해 주는가 하면 몇몇 지인들은 그의 수필을 읽고 난 후기를 정성스레 써서 보내줘 조 씨는 그 글을 다시 읽고 큰 위로와 감동을 얻었다고 한다.

조 씨는 평소 가장 좋아하는 문인과 문학작품으로 철학자이자 작가인 서동욱 씨와 그의 에세이집 ‘생활의 사상’을 꼽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를 소중히 아껴가며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라고 한다. “‘명문’이란 무엇인지, 또 ‘인문학’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진솔하게 쓴 글”이라며 “읽다 보면 누구라도 펜을 쥐고 한 문장 남겨보고 싶을 만큼 글쓰기에 대한 사유가 깊이 담긴 책”이라고 소개했다.

의대생이면서 이렇게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조 씨는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거나 의대 공부를 하는 일에 대해 ‘체제와 법칙에 완전히 순응하는 훈련을 받는 시기’라고 정의했다. 의대생들은 이렇게 배운 것을 암기하고 그것을 오롯이 배운 대로 또 정석대로, 흐트러짐 없이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창조적인 활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아 메마르기 쉽다. 

이렇게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그는 글쓰기를 통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삶의 또다른 의미를 늘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글쓰기는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창조적인 힘을 지녀 그 과정에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게 된다”며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거나 내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고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취미이자 특기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한편으론 학업에 지친 자신에게 ‘숨쉴 수 있는 틈’을 주는 힐링 장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그간 묵혀 두었던 감정이 때론 승화되기도 해요. 또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기도 하죠.”

기자는 불쑥 조 씨에게 공모전 대상도 차지한 마당에 글쓰기와 관련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거창한 계획이 나올까 싶어서였는데 '우문현답'이었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의 영역인 병원의 모습을 글을 통해 잘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의료인으로서, 또한 수필가로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그에게 있어 글쓰기의 본질을 가장 현명하게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었다.

다만 좀 더 욕심을 내 병원 영역을 벗어나서 새롭고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보고 싶은 계획도 있다고 했다.

“분야와 형식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누군가 ‘조지현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힘이 난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조씨의 눈빛이 더 반짝반짝 빛났다.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힐링하는 '맛'을 본 뒤부터 이렇게 좋은 취미이자 지적유희를 '그 맛'을 본 일부 사람들만 누리는 게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다른 동료선후배 의대생들에게도 글쓰기에 도전해 볼 것을 적극 추천했다. 의대생은 대학생이면서 의료계에 속하고, 아직 '의료인'은 아니지만 모든 과를 경험해야 하는 만큼, 이처럼 글을 쓰기에 알맞은 '경계'에 있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의대생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사 이면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목격자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늘 마주하면서 훌륭한 글쓰기의 재료를 일상에서 이미 얻고 있죠. 한편으론 의대생 시절에 글을 쓰면서 미래에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좀 더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어 앞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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