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그리고 독이 든 사과
염병, 그리고 독이 든 사과
  • 전성훈
  • 승인 2019.09.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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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2)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염병할.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염병을 앓을’이라는 의미이다. 염병이 거의 소멸한 현대에도 꿋꿋이 살아남을 정도의, 욕설이 풍부하게 발달하였다고 하는 우리말에서도 수준급(?)의 욕설이다. 그리고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고 통칭되었던 것처럼, ‘염병’이 과거 우리 선조들에게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알게 해 주는 말이다.

염병(染病)을 현대적인 정의와 분류로 바꾸면 범유행감염병(pandemic)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범유행감염병은 인류가 농업혁명 이후로 군집생활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2세기경 로마에서 천연두 또는 홍역으로 추정되는 감염병이 유행하여 40~50만 명이 사망했다(당시 로마 전체 인구는 약 2,000만 명). 6~7세기경에는 동로마제국에서 페스트로 추정되는 감염병이 유행했는데,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에 5,000명씩 사망하여 도시 인구 절반이 사망했다고 한다.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에서 그 유명한 흑사병이 창궐하여, 6년 만에 2,000만 명이 사망했고, 14세기에만 7,500만 명이 사망하여 전체 유럽인구의 1/3이 사망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817년 인도 벵골지방에서 창궐하여 1819년 동남아, 1820년 중국, 1822년 일본까지 번져 단 5년만에 아시아 전역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인해, 당시 한양 인구 20만 명 중에 13만 명이 사망했다. 이후에도 10~20년 간격으로 6차례의 콜레라가 유행하여, 쇠약해진 조선의 국력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러한 범유행감염병들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상하수도의 완비, 위생상태의 개선, 영양개선에 따른 면역력 증가 등에 힘입어 감소하기 시작했고, 의사들의 노력에 의해 인류는 구세대 범유행감염병들에 대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DS, 에볼라 바이러스 등과 같은 신세대 범유행감염병들은 아직 치료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통.통신의 발달로 그 전파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단적으로 우리나라는 2015년 발원지인 중동 지역에서 수천 킬로 떨어져 있음에도 메르스 사태로 큰 국가적 손실을 입었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공공방역체계에 대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서울특별시의 ‘지하철역사 내에 의료기관 개설이 가능한지’에 대한 유권해석 요청에 대하여, ‘건축물대장 등재 건물만 개설 가능하다’라는 기존의 해석을 재확인했다. 즉 현행 건축법 시행령상 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의원은 제1종 근린생활시설, 병원은 의료시설로 구분하고 있으므로, 그 용도를 구분할 수 있는 건축물(즉 건축물대장이 존재하는 건축물)에서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가 위와 같은 유권해석을 요청하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지하철역사 내에 의료기관을 설립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구청은 강남구청역 내의 의료기관 개설허가신청을 불허했고, 송파구청이 잠실역 내의 의료기관 개설허가신청을 불허하자 이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에서 지하철역사 내에 의원이 입점한 것은 은평구의 디지털미디어시티역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지하철역사 등을 운영.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등은, ‘도시철도역사 등은 건축법 적용을 받지 않기는 하지만, 도시철도법에 따른 부대사업범위 중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의원.약국의 개설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자의적인 법해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첫째로 도시철도법은 ‘도시철도의 역사(驛舍)’와 ‘역사와 같은 건물에 있는 근린생활시설’을 구분하여 규정함으로써, 역사 내에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과 역사와 같은 건물(예를 들어, 세칭 용산역아이파크몰)에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용산역아이파크몰과 같이 ‘역사와 같은 건물’인 건축물에는 건축물대장이 생성되므로 의료기관이 개설될 수 있다(실제로 용산역아이파크몰에는 4개의 의료기관이 개설되어 있다).

둘째로 도시철도법 시행령상 도시철도시설 등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개발.운영사업은 “도시철도 이용객을 위한 편의시설의 설치.운영사업”인데, 사회통념상 ‘특별한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시설’로 인식되는 편의시설에 의료계가 공중보건적 위험성을 들어 명확하게 반대하고 있는 의료기관이 포함된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지하철역에서 기침하면서 쓰러진 승객으로부터 바이러스의 광역전파가 시작되는 장면은 이제 너무나 흔히 표현되는 장면이어서 특별한 상상의 소산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렇게 ‘지하철역과 같은 광역대중교통시설이 감염병원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전파될 것이다’라는 것은 비전문가인 대중의 생각으로도 당연한 사실인데, 도대체 왜 지하철역사 내에 ‘기를 쓰고’ 의료기관을 개설하려고 하는 것일까?

서울교통공사 등으로부터 역사 내 부지를 임차한 임차업체는, 이를 다시 실제로 운영할 전차인에게 전차하는데, 이 때 매출액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체에게는 정액이 아닌 매출액의 일정비율(통상 8% ~ 15%)을 임차료로 받는다. 의료기관은 높은 매출액이 예상되므로, 임차업체는 높은 임차료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결국 서울교통공사 등이 다시 높은 임차료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핵심은 돈이다.

사과가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독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누구도 먹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그냥 안 된다고 하는 것’과 ‘진짜 안 되는 것’의 차이를 언제까지 전문가들이 앵무새처럼 떠들어야 할까. 독이 든 사과를 놓고 먹겠다느니 먹으면 안되느니를 떠들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필자로서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격한 표현을 쓰고 싶지만, 이 글을 읽으실 독자 분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한 마디만 하겠다. ‘염병을 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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