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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 쓰기는 쉬우나 환자와 소통은 어렵다'···10명의 글 쓰는 의학도 발굴
'처방전 쓰기는 쉬우나 환자와 소통은 어렵다'···10명의 글 쓰는 의학도 발굴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9.23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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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시상식···중앙의대 조지현씨 등 10명 수상

전국 의학도들을 대상으로 한 수필 공모전에서 중앙의대 본과 4학년생 조지현씨를 비롯한 10명의 의대생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국의사수필가협회는 지난 21일(토) 오후 5시 서울시의사회관 5층 강당에서 '제9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시상식'(주관 대한의사협회)을 개최했다. 한국의사수필가협회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전인적 의사를 지향하는 의사수필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김애양 의사수필가협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카프카는 ‘처방전을 쓰기는 쉬우나 환자와 소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는데, 점점 소통 불능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아픈 마음도 어루만지며 소통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길이 글쓰기라 믿는다”며 “올해도 대회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관계자 여러분들과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공모전에 응모된 46편의 작품 중에서 예심을 통과한 20편이 5명의 본선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돼 각자 심사에 들어가 결과(점수)를 합산해 다(多)점수 순위대로 대상부터 동상까지 10개의 작품이 선정됐다.

대상을 차지한 조지현씨의 ‘경계에서’라는 작품은 의학도로서 경계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사유를 적절한 비유를 활용해 전달력 있게 담아 3명의 위원이 최고 점수를 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씨는 “이렇게 큰 상을 받아 놀랍고 감사드린다. 작년 이맘때 임상실습을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8시간씩 인문학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사람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지만 몸과 질병에 대해서만 알아서는 환자를 대하는 진정한 임상실습을 해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며 “이를 통해 인문학과 의학은 서로 많이 닮은 학문이었다는 점을 느꼈다. 또 글을 쓰며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경계에 서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은 의사와 예비의사인 학생의 경계, 병원 안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었다. 의사들도 언제든 환자와 입장이 바뀔 수 있으므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의학도들이 수필쓰기에 참여하면 좋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조광현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특히 비유가 심미감을 높였다. 인공호흡기 튜브에 의지해 잠든 노인의 찡그린 얼굴과 탯줄에 연결돼 잠든 태아의 얼굴을 통한 생과 사의 대비, 죽음의 바다와 검은 물결의 비유, ‘생명’이란 단어에서 끝숨까지 이어지는 이응의 포착 등은 예사롭지 않다. 이 글은 자신의 사유를 심층적으로 무리없이 잘 전개하고 있다. 조지현 수상자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량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 수필가로서 대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심포지엄에서는 고려대 한문학과 송혁기 교수가 “고전 산문의 너비와 깊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전통적인 문학의 개념에서부터 수필이라는 말, 좋은 글의 요건, 고전산문의 범주 등에 대해 설명하며 한문고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송 교수는 “오늘 의대생 수필가 공모전처럼 전통적으로 각 시대마다 누가 글을 잘 쓰는가에 대해 말했는데 그게 비평이다. 이를 통해 많은 고민이 축적돼 왔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문학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우리 전통적 가치에 따른 좋은 글에 대한 기준과 방법 등이 많이 단절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며 “앞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 고유의 축적된 가치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모전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의료단체 대표자들이 축하의 말을 전달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하린 의사수필가협회 총무이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의학은 자연과학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접근이 어려워 깊은 공감과 넓은 소통이 그 기반인 수필은 의사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오늘 수상자들이 의사사회는 물론 환자와 일반국민에게 소통과 치유의 통로가 되는 의사가 되어 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박명하 부회장도 축사를 통해 “의사는 생활의 대부분이 진료실에서만 이뤄지고 의학도들은 과다한 학업량으로 세상과 인간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가지기 쉽지만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노력을 통해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향애 한국여자의사회장은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해부학 실습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수필로 세밀하게 표현해 낸 글들을 감명깊게 보았고, 선배로서의 책임감과 의학도들에게 수필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추석 연휴 때 필리핀 난민촌에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앞으로 기회가 돼 수상자들과 함께 간다면 거기서 더 많은 소재를 얻고 가슴을 울리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바쁜 의학도들의 글을 쓰는 부지런함과 재능이 놀랍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좋은 의사가 되기 바라며 인터넷, SNS에 저급한 글이 범람해 상처나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여러분은 위로와 치유를 주는 그런 훌륭하고 따뜻한 글을 많이 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의학회 장성구 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박정율 부회장은 “무엇이든 하루에 세 시간씩 10년을 하면 1만 시간이 되고 그것에 통달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며 “수상자들이 오늘의 수상에 만족하지 말고 또 한 번의 1만 시간, 그 이상을 노력해 더 훌륭한 수필가,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수상작 및 수상자 명단

△대상 - 경계에서(조지현 중앙의대 본과 4학년)
△금상 - 외상(심재광 아주의대 본과 4학년), 유언(이준수 부산의대 본과 1학년)
△은상 -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화희민 부산의대 본과 1학년), 닫힌 방 안의 아이(이우승 순천향의대 본과 4학년)
△특별상 - 인생 제 2막의 요란스런 시작(조우종 연세의대 본과 2학년)
△동상 - 가장 따뜻한 색(김혜원 가천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중독 뒤에 가려진 삶(허지윤 바르샤바의대 예과 2학년), 부고(허재영 인제의대 본과 2학년), 두 손을 모아(윤지수 가톨릭의대 본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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