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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형병원 환자쏠림, '우문현답'으로 풀어내자
[칼럼] 대형병원 환자쏠림, '우문현답'으로 풀어내자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9.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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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열 기자
배준열 기자

# 수도권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의 병원장 A씨는 요즘 고민이 부쩍 깊어졌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의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그동안 지급되던 종별가산금과 의료질평가지원금을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의료법상 '진료거부권'이 없고 환자를 유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순히 경증환자를 진료했다고 막대한 ‘페널티’를 부과하자 상급종합병원 입장에선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의 한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B원장에겐 이번 정부 대책이 처음엔 가뭄의 단비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실상을 알고 나니 무조건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현실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환자의 진료의뢰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선 기존 '우회로'(?)를 차단할 방법이 없고, 새로운 우회로가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응급하지 않은 환자들이 상급종병의 응급센터를 통해 입원하거나 진료 의뢰 없이 초진 외래진료가 가능한 가정의학과를 통하는 식으로 여전히 경증환자가 동네 병원 대신 상급종합병원을 찾아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복지부가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 대책’은 ‘중증도’에 초점을 맞춰 환자 쏠림을 막아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번 대책에 대해 “취지에는 '공감'하나 실효성은 의문”이라며, 제법 호의적인 논평을 내놓은 것도 무분별한 대형병원 선호현상을 타파하겠다는 정부의 단단한 각오가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미 지역 병·의원에서 마음이 떠난 다수 환자들의 발길을 돌릴 만한 확실한 ‘유인책’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 빨리 붕괴된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이해하지만 지금까지 그 과정에 있어 절차가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접근법을 달리해 당사자인 의료 현장 전문가들의 생생한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건너뛰어서는 결코 보다 완성도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주축이 돼 의사협회, 병원협회, 각 학회 등 의료계 전 직역 관계자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봐야 한다.

아울러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우리나라 동네의원엔 대학병원 못지않은, 때로는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집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도 이런 최고 수준의 의사들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수많은 전문의들이 일차의료기관에서 진료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환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의료 '현장'을 제대로 알리라는 것이다.

다소 유행이 지난 듯한 건배사가 현 상황을 풀어낼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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