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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체성 철저한 철학적 고증 절실 <6>
의대 정체성 철저한 철학적 고증 절실 <6>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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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의 사명과 비전 - 교육 · 연구 · 봉사

대학의 사명을 흔히 교육, 연구, 봉사로 표현하고 있다. 의과대학도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연구, 봉사인데 의과대학은 부속병원을 소유하고 있어 봉사 대신에 진료를 삼대요소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진료와 봉사의 의미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의과대학의 사명에 진료가 포함되는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의과대학 교수들에게 교수의 본분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통상 진료, 연구, 교육의 역순으로 답하고 있다. 물론 임상의사에게 물어본 것이다. 기초교수에게 물어보면 연구, 교육, 봉사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진료와 더불어 의료인 인재양성 목표

현재 우리나라에는 41개 의과대학이 있고, 나름대로 다양한 설립배경을 갖고 있으나 설립 취지나 건학이념을 보면 역시 의과대학은 무엇보다도 진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의대 설립은 진료와 더불어 의료인 인재양성을 목표로 한다. 의과대학의 사명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은 의료와 이를 수행하기 위한 인력배출이고 이것은 사사로운 이익을 떠나 사회의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의료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지 못한 중세시대에도 의학교육 기관과 구호기관의 성격을 띤 병원은 공익단체로 출발하였다. 최초의 의과대학들은 대개 종교기관과 같이 공존하여 왔으며, 이런 형태의 초기 의과대학은 대략 11∼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의과대학인 프랑스에 Montpellier 대학의 예를 보아도 의과대학건물과 성당이 같이 연결되어 있고 당시의 의과대학 교수는 성당의 일정한 서품을 수여받아 신학과 의학 모두를 위해 봉사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의과대학은 진료와 교육, 그리고 사회봉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연구의 주요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연구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지난 5년간 연구에 관한 부분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연구비에 대한 정부의 예산지원은 물론 연구실적에 따라 대학의 순위가 결정되고 연구업적이 교수채용과 진급에 결정적인 핵심요소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연구가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실상 주변국이나 선진국에서도 연구의 성패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고로 사회역량을 연구에 쏟고 있고, 차세대 성장 동력과 경제발전의 원천으로 육성하려는 줄기차고 용의주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양질 연구논문 요구 또다른 부담

우리 대학들도 이에 뒤질세라 수년 내에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 놓고 교수들에게 보다 더 많은 그리고 보다 더 질 좋은 논문을 쏟아내도록 압박을 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청과 주변 환경의 변화는 진료활동을 통한 수익창출에 의과대학의 운명을 걸고 있는 많은 의과대학에 또 하나의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공익사업, 비영리기관으로 출발한 의과대학의 역사적 전통 때문에 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영리화 요구에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아직 허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과대학은 양질의 의사 양성과 의료 제공이라는 공익을 위한 기관이고 사회적 양심과 선한 가치의 수호를 위한 투명하고 깨끗한 교육기관의 품위를 지키고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시간에 국민 개보험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많은 의과대학을 세운 또 다른 신화창조의 성공적인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나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개발 우선주의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기형적 의과대학 신설과정이 있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은 기하급수적인 양적증가를 초래하였다. 건학이념이 어찌되었든 간에 초기부터 의과대학 본래의 사명과 철학이 이차적 이득을 위해 오염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기형적 의대양산 ·  · 영리화엔 사회 냉담

애초부터 연구는 고사하고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할 상태에서 급증하는 의료요구를 충당하기 위해 대학들이 급조되었다. 단순히 종합병원의 인가로 충분한 경우에도 외형적으로 기본요소를 겨우 갖춘 의과대학을 세움으로서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아 병원 경영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는 논리이었다. 그리고 의과대학의 주된 사명이 진료에 의한 경영실적을 쌓아 수익금을 창출하고 잉여금을 다시 재투자하여 의과대학을 육성시키는 데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임상교수들도 병원수익률 향상에 일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주 업무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당연히 대학부속병원과 대학 간의 위상에 혼돈이 나타났다.

그러나 예술가가 금전적인 성공을 목표로 작품에 매진할 때 과연 좋은 작품이 나올까? 공익과 교육이 주된 사명인 기관이 경영 제일주의 앞에서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 물론 교육기관도 경영을 알고 낭비요소와 현상에 안주하는 통칭 보수적이고 기득권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변화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태생과 성장과정이 교육기관으로서 적절치 못한 경우 계속적인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병원과 임상기술이 선진국 수준이며 영어논문이 무역규모의 순위만큼 확보된, 얼핏 보면 선진국 문턱인 국가가 교육에서는 후진국인 양상을 보면 과연 의과대학이 사회양심의 보루요 중심 가치를 창조하는 지고의 사회적 기관인가에 의문이 든다.
 

#선진국 투명 경영의식 반면교사 삼아야

그간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은 투명하고 깨끗하고 건전한 것이기보다는 변칙적이고도 비정상적인 활동과 결과지상주의, 그리고 양적성장 위주의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즉, 발전을 하되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 외적인 성장만큼 내적인 문화가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우리 현실에도 아직 강하게 남아있어 국가와 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계속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이중적 가치와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의과대학을 하나의 법인으로 생각해볼 때 이들의 행동양식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으로 역설적이 아닐 수 없다. 진료를 위하여 건물과 인력을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여야 하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소독과 오염이 대학 자신에게는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 더구나 인재의 양성은 의과대학이라는 법인의 임신과 출산이 아니던가? 대학이 생산하고 있는 전문 인력의 사회적 가치는 단순지식을 갖춘 인간이 아닌 사회의 리더를 만드는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집단적인 사조는 한 국가의 중심 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선진국 유수의 의과대학을 돌아보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투명한 이들의 공공교육기관으로서의 경영의식이다. 소유주가 국가이건 공공이건 사립이건 간에 최우선 과제가 사회의 교육공익사업임을 인식하고 인재양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연구논문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세계 100대 대학에 한 대학도 못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초보적이고 가족적인 우리나라 의과대학 운영현실에서는 본래의 사명인 교육과 연구가 흑자 경영을 위한 장식 구실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의 설립과 존재에 대한 철저한 철학적 고증이야말로 방황하는 교육문화의 선진화를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고 의과대학을 차세대 성장 동력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하는 길일 것이다.

 



안덕선 <고려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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