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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의 잘못된 만남
의사와 환자의 잘못된 만남
  • 전성훈
  • 승인 2019.09.10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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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1)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남자가수가 있었다. 내놓는 앨범마다 대성공을 거둬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고 각종 가수상을 휩쓰는 등 가수로서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는 50살이 넘도록 여전히 노총각, 그것도 철없는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 대중에게는 재미를, 부모에게는 환장을 선사하고 있다.

그 가수의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는 ‘잘못된 만남’이라는 곡이다. 남자가 여자친구를 자신의 친구에게 별생각 없이 소개했다가 둘이 눈 맞아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었다는, 다소 막장스러운 가사를 담은 곡이지만, 흥겨운 리듬과 함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분출하던 시대와 맞아떨어져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이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잘못된 만남을 가지면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의사와 환자가 잘못된 만남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일단 기혼 의사와 기혼 환자가 눈이 맞는 것 같은 개인적인 잘못된 만남은 논외로 하자. 여기서는 의사와 환자가 만나게 되는 본질적 이유, 즉 진료계약과 관련한 잘못된 만남만을 살펴보겠다.
의사는 진료하고 환자는 진료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있어도, 즉 제3자가 의사에게 환자를 소개해도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끼어있는 제3자가 ‘돈을 받으면’ 문제가 된다. 잘못된 만남의 시작이다.
의료법은 ‘영리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금지 사례로 ① 본인부담금의 면제나 할인 ② 금품 등의 제공 ③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 제공 등을 들고 있다.

이렇게 영리목적 환자 소개행위 등을 하는 경우, 의료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이와 별개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라 2개월의 의사면허 자격정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보통 형사처벌 이후에는 자격정지처분이 따라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음에도 자격정지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산부인과 의사 A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B광고회사를 통해 ‘산부인과 프로그램 블로그 체험단’을 모집했다. A는 그 대가로 B회사에 광고비를 지급했고, B회사는 체험단에 블로그 리뷰지원금을 제공했다.
이후 의사 A의 ‘블로그 체험단 모집 및 광고비 지급행위’가 문제되었는데, 검사는 이것이 영리목적 환자유인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A에 대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법원은 같은 내용의 약식명령을 발했고, A가 더 이상 다투지 않아 벌금은 확정됐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2018년 의사 A에게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라 2개월의 자격정지처분을 내렸다. 이에 A는 ‘벌금형은 받아들이겠으나 자격정지처분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자격정지처분에 대한 취소처분을 청구했다.
이 소송에서는 의사 A의 ‘체험단 모집 및 광고비 지급행위’가 의료법상 금지되는 환자소개.알선.유인.사주행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허용되는 의료광고에 해당하는지가 주된 쟁점이 되었다.

재판부는 먼저 ‘의료광고는 그 자체로 환자를 유인하는 성격을 가지므로, 의료광고에 해당한다면 의료법이 금지하는 환자유인행위의 의미는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상식적이고 당연한 해석이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의료기관이 제3자에게 광고를 의뢰하는 경우 광고비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환자를 소개.알선.유인하거나 이를 사주하는 것과 결부돼 금품 등이 제공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광고행위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것에 불과하다면, 의료법이 금지하는 경우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판단했다.

이어서 ‘A는 B회사를 통해 불특정다수인을 상대로 병원을 홍보하는 의료광고를 한 것이며, 이는 의료시장의 질서를 현저히 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고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기망 또는 유혹하여 유인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행정처분과 형사처벌은 각기 대상과 목적을 달리하므로 동일한 행위에 관해 독립적으로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을 과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지만, A가 의료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됐다고 무조건 자격정지처분을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A에 대한 2개월 자격정지처분은 과도하므로 행정청이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결론내리고 이를 취소했다.

어쩌면 재판부의 속내는 ‘벌금 100만 원에 전과가 남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2개월 자격정지면 사실상 벌금 몇 천 만 원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인데, 너무 과하지 않느냐’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판결은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별개의 불이익이므로, 행정처분을 내릴지 여부는 별도의 기준에 따라 다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법리를 확인한 판결로서 그 의미가 있다.

적절한 재량 행사 여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기가(즉 책임지기가) 어려운 공무원의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행 실무 관행과 같은 기계적인 행정처분 발령은, 법이 공무원에게 재량을 부여한 취지를 근본적으로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 의사가 과도한 행정처분을 면하기 위해 소모적이고 힘겨운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형사처벌 이후에 기계적으로 행정처분을 발하는 기존의 실무 관행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향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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