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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원로
  • 유형준
  • 승인 2019.09.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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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88)
유 형 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노인은 어느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청장년 시절도 있고.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되짚는 까닭은 ‘원로’라는 단어를 살피기 위함이다. 원로, 으뜸 원(元), 늙을 로(老) 두 글자 중에서 으뜸 ‘원’은 위를 뜻하는 두 이(二)와 사람 인(人)으로 이루어져 우두머리, 처음, 시초 등을 뜻한다.

원로의 정의는 다양하게 표현된다. 몇 가지를 일단 건조하게 열거한다. 그 분야에 오래 종사하여 남다른 경험을 지닌 사람. 그 분야에 오래 종사하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 그 조직이나 단체, 사회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 이처럼 원로는 시간적으로 오랜 것을 강조하면 늙음이 필수 요건이지만, 창립 등의 공을 강조하면 나이는 중요하지가 않다. 나리와 상관없음에도 늙을 로(老) 한자를 쓰는 원로라 불리는 이유는 늙을 로(老) 글자에 관한 짧은 지식 탓이다. 즉, 늙을 로(老)는 늙음만을 의미하는 한자가 아니다. 한자를 만든 중국인들은 한 분야의 최고봉인 사람의 이름 앞에 늙을 로(老)를 붙여 ‘老OOO‘라 불러 존경하고 칭송한다. 늙을 로(老)는 나이 개념이 아니라 그 분야의 최고 경지에의 도달을 칭하는 글자다. 그래서 젊더라도 그 조직이나 사회에 뚜렷한 공을 세우면 원로라 불린다. 이처럼 시간, 경험, 공적 등이  원로의 조건이지만, 어떤 경우이든 더 중요한 요소는 대표성과 덕망이다. 어떤 일에 이바지한 공적과 노력이 그 조직이나 사회를 대표하는가를 평가하는 데엔 본인 스스로의 판단뿐 아니라 구성원을 포함한 타인들의 측량도 중요하다. 대표성과 함께, 어쩌면 더 중요하게 강조되는 요건은 덕망이다. 어질고 착하여 명망이 높은 자질이 원로의 주요 요건이다. 덕망, 명망, 명예로운 평판, 세상 사람이 우러러 믿고 따르는 인망 등은 거의 동의어다. 덕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공을 세우고, 오래 종사하고, 그 경험의 가치가 높진 않다.

오히려 오래 종사하면서 공을 세우고 차근차근 쌓인 연륜과 경험이 빛나게 되면 덕망이 풍부해지는 경향이 있다. 원로의 품새랄까. 방금 사용한 경향 또는 품새라는 단어는 스스로의 겸손과 스스로의 절제를 다른 말로 사용한 것이다. 공을 쌓았다고 으스대며 주변을 개의치 않는다면, 그는 ’공로자‘는 맞지만 ’원로‘라 불러주기엔 그 무게가 가볍고 그 두께가 얄팍하다.
또 만일 종사한 세월의 길이로 으뜸일지라도 올려 쳐다볼 덕이 부족하다면 ‘노회원(老會元)’에 불과하지 거기에 으뜸 원(元)을 붙여 ‘원로회원’이라고 부르기엔 아무래도 어색하다.

로마 공화정 당시에 초기 원로원은 서른 살 이상의 귀족들로 구성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신분 지위를 떠나 명문가 출신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사용한 ‘원로원’이란 용어와 같이 우리가 번역하여 칭하는 원로라는 용어를 제외하고, 원로를 공적으로 처음 사용한 곳은 일본이다. 1889년부터 1930년대 초까지 메이지 헌법에 의해 일본 정부를 지배했던 초헌법적인 과두정치 지도자들을 원로라 불렀다. 원로는 일본 발음으로 겐로다. 겐로들의 주된 역할은 천황을 보필하는 데에 목적과 의의를 두고 있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관료정치를 관장했다. 겐로를 역임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헌법을 기초한 이토 히로부미 등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굳이 ‘원로’라는 명칭에 해당되는 용어라면 아마도 ‘국로(國老)’가ㅡ아닌가 생각한다. 재야 사학자 이덕일의 ‘고금통의(古今通義)’를 인용한다. ‘나이 70이 기(耆), 80이 로(老)인데, 일흔 살 이상의 2품 이상 전.현직 관료가 들어가는 곳이 기로소(耆老所)다. 국왕은 환갑을 넘으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영조가 직접 기로소에 들어간 이후로는 관부 서열 1위가 되었다. 평생 공직에 있다가 은퇴한 원로를 국로(國老)라고 하고, 일반 백성 중에서 나이 많은 이를 서로(庶老)라고 한다. 오랜 옛날부터 임금은 국로와 서로를 모시고 잔치를 베풀었다.’

기독교사적으로, 초대교회에도 원로가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특별한 신분으로 대우했다. 사도 바울은 개척교회마다 원로를 임명했고 영성생활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당시 원로들은 완벽한 봉사자였고 사도들과 후계자 주교들에게 철저히 순종했다. 대접의 격식과 동시에 겸허한 순종이 원로의 구비 요소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늙음을 귀하게 여기고 나이든 남자를 관습상 존중히 여겼다. 존중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경험이었다. 그들의 경험 지식이 지금의 컴퓨터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삶의 지식은 늙음에 의해 숙성되었다. 자연히 나이가 들수록 - 보다 순리적으로 이르면 늙을수록 - 원로가 되는 확률이 높아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따라서 나이와 비례하는 경험과 정보와 지식, 그리고 관록으로 원로 행세를 하기엔 역부족인 세상이 되고 있다.

세월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현재의 만사는 과거에서 왔고, 자연스레 이것들은 미래에서 오는 것들로 교체된다. 현재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접촉의 순간이다. 모든 세월은 과거와 미래의 가고 오는 두 가지 속성의 순간적 접촉점이다. 시간에 대한 ‘주역(周易)’의 시각이다. 주역이 쓰인 시대에 비해 지금은 미래가 오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가. 늙음의 시간적 수치로만 감당해낼 수 있는 속도의 한계를 넘어 빠르다. 이런 연유로 원로로 불리거나, 아니면 원로 행세를 하려면 결국 덕망이다. 앞서 일렀듯이, 어질고 착하여 명망이 높은 자질이 원로의 주요 요건이다. 이쯤에서 조선 영정조 시대의 이덕무 선생이 ‘사소절(士小節)’에서 이른 말을 소개한다. “어리석지 않고 귀먹지 않으면 늙은이 노릇을 할 수 없다.” 혹시라도 언짢아할 필요가 없다. 선뜻 뒤로 물러서 삶의 여유를 돌아보라는 뜻이니. ‘원로(元老)’, 글자 그대로 ‘으뜸으로 늙는’ 방도의 하나를 일깨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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