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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산, 새로운 출발이 되기 위해
의사 파산, 새로운 출발이 되기 위해
  • 전성훈
  • 승인 2019.08.28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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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49)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예전 뉴스이기는 하지만, 1998년 ‘제주도의 30대 치과의사가 파산결정을 받았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회사가 파산결정을 받는 경우도 적었고 개인은 더욱 적었는데, 제주도 전체에서 개인파산결정을 받은 첫 사례가 치과의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의사가 파산했다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의사에게는 ‘호시절’이었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IMF를 전후해서 재벌이 망하고 심지어 은행까지 망하는 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하는 상황보다는 최선의 출구를 찾아나가게 준비시키는 파산절차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덕분에 법적으로는 파산 관련 법률들이 크게 정비되었고, 사회적으로는 파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되었다. 의료계 역시 영향을 받았는데, 2007년에 파산선고와 의료인의 면허취득 간의 직접적 관련성이 없음을 이유로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결격사유에서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삭제함으로써 파산한 의사도 의사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시대상을 반영한 상식적인 개정이었다.

사회적 인식은 변했고, 하지만 의사들의 처지는 더욱 변했다. 2014년에는 ‘개인회생신청 40%는 의사’라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대략적으로 5년간 수도권의 개인회생신청자의 직종별 분류 중 의사가 2위, 한의사가 4위, 치과의사가 5위로서 그 수를 더하면 총 신청자의 40%를 차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옥 없는 기독교와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는 속언처럼, 최악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개선과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의사 회생과 파산, 껄끄러운 주제이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은 알아두어 나쁠 것이 없다. 이번 글에서는 의사 회생과 파산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첫째 가장 기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의사 A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 지급불능 상태이다. 회생을 신청해야 하는가, 파산을 신청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채무자(의사)는 응급환자, 법원은 응급실, 판사는 의사로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사는 응급실에 실려 온 응급환자를 검사한 뒤 파악된 생체징후에 따라 먼저 응급환자가 살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만약 소생할 확률이 있다고 판단되면, 응급환자를 집중치료 프로그램에 넣어 일단 응급환자의 생존확률을 높인다. 이어서 응급환자의 상병에 대해 수술을 시행한 뒤, 상태가 안정되고 자력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퇴원시킨다.

법원은 채무자가 회생을 신청하면 일단 회생절차라는 집중치료 프로그램에 들어가도록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응급처치로서 ① 이자를 포함한 채무변제를 유예하고 ② 경매중지, 압류중지 등의 보존조치를 시행해서 채무자의 변제확률을 높인다. 이어서 채무자의 지급불능 상태에 대해 변제비율 조정, 변제기간 조정, 채무면제 등의 수술을 시행한 뒤, 채무자의 지급불능 상태가 해소되고 자력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절차를 종결시킨다.
만약 응급환자가 이미 사망했거나, 생존하고는 있으나 연명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사는 응급환자의 사망을 선고하고 후속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원은 채무자가 집중치료 프로그램을 거치더라도 채무변제의 가능성이 없거나, 가능성은 있으나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이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채무자의 ‘경제적 사망’을 선고하고 후속절차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파산절차이다.

단 의료적 응급환자와 경제적 응급환자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의료적 응급환자는 사망선고를 받으면 기적 외에는 부활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적 응급환자는 법인이 아니고 개인채무자라면 사망선고 후 일정한 절차를 거쳐 부활할 수 있다. 이것이 ‘면책’절차이다. 법원으로부터 면책결정을 받게 되면 개인채무자는 경제적으로 부활해서 Zero Base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회생을 먼저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 바로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 법원과 채권자들에게 ‘전문직임에도 자력으로 채무를 변제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여 파산결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인의 경우라면 대부분은 파산을 신청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다만 법원에 신청한다고 해서 법원이 항상 이를 받아주는 것은 아니며,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서 결정하게 된다.

둘째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회생신청의 인용 여부를 결정하는가? 이는 법원이 구체적인 제반 사정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어서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단 원칙적으로 ① 채무자가 더 이상 현금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경우(≒사망) 또는 ② 향후 만들어 낼 현금의 가치가 지금 현재 보유한 자산의 가치보다 낮을 경우(≒연명치료가 무의미)라면 법원은 회생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 앞으로의 수입’이라면 굳이 시간들일 필요가 없이 바로 채무를 최대한 변제하고 끝내는 것이 채권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수입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의 회생신청은 그 인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셋째 의사가 회생신청을 위해 알아둘 것은 무엇인가? 회생절차는 크게 ① 채무자가 의료법인인 경우, ② 채무자가 개인이며 무담보채무 5억 또는 유담보채무 10억 이하인 경우, ③ 채무자가 개인이며 위 금액을 초과하는 경우로 나뉜다. 그리고 개인의 경우 급여소득 또는 영업소득이 있어야 한다.
의사가 회생을 신청하는 데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고 봉직의나 개원의 등 그 업무형태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채무가 반드시 병의원의 운영과 관련해 발생한 것일 필요도 없으며 보증 등 개인적인 사유로 발생한 것이어도 무관하다. 또한 아직 지급불능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곧 지급불능이 될 것 같은 상황이어도 가능하다.

2015년부터 간이회생절차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 절차는 ① 총 채무액이 30억 원을 넘지 않는 ② 소액영업소득자일 것을 요건으로 하면서 ③ 담보권자의 동의가 필수조건이 아니어서, 회생절차를 희망하는 의사와 의료법인에게 매우 유용한 제도이다.

신차를 살 때에는 자신의 운전경험도 있고 주변의 승차소감도 들어 보고 직접 시승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회생신청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 주변에 망해본 의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 정보수집이 매우 어려워 적절한 대응시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 만약 환자가 ‘조금만 더 버텨보겠다’면서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면 의사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회생은 지급불능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전문적 조력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환자에 대한 치료에 골든타임이 있듯이, 재정상황에 대한 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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