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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민간병원과 경쟁해야”
“공공병원,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민간병원과 경쟁해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8.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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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케어와 공공병원의 미래’ 토론회 열려…예산확대·공공요양시설로 용도변경 제안

정부나 지자체 소속의 공공병원들을 비영리특수법인으로 독립시켜 자율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문 케어’로 인해 전국의 지방의료원들이 경쟁력을 점점 더 잃어감에 따라 내놓은 대책이다.

‘문재인 케어와 공공병원의 미래’를 주제로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최병호 서울시립대 공공보건대학원장(사진,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장)은 기조발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사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공공의료 최일선 현장에 있는 ‘공공병원’과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문 케어’로 인해 대형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되어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위축에만 그치지 않고 ‘문 케어’가 지향하는 공공보건체계의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잖아도 공공병원의 의료질 수준이 민간병원에 비해 떨어지고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문케어’로 인해 큰 병원을 가나 작은 병원을 가나 의료비의 차이가 없어져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 심화됨에 따라 공공병원도 다른 민간 중소병원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은 운영 주체에 따라 크게 국립대병원과 특수목적 공공병원, 지방의료원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막상 대형 국립대병원을 ‘공공병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중앙부처에서 운영하는 총 9개의 특수목적 병원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220개의 지방의료원들이 있는데 이 둘도 ‘공공병원’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생각하기는 어렵다.

전국에 산재한 지방의료원들이 갈수록 경쟁력을 더 잃어버려 환자들이 찾지 않게 되자 정부는 민간병원도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난 2012년 관련법을 개정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문 케어’ 시행과 더불어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전국의 공공병원체계를 다시 구축하는 계획, 이른바 ‘공공병원 3.0’을 수립했지만 이미 구조적 한계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버린 지방의료원들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공공병원의 정의와 기능을 아예 새롭게 정립해 현재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전국의 공공병원들을 비영리특수법인으로 전환시켜 민간병원과 경쟁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병호 교수는 우선 공공병원의 정의부터 ‘공공재원에 의해 운영되는 병원이라면 모두 공공병원’으로 새롭게 하고, “민간병원도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며 “국가나 지자체 소유 공공병원을 비영리특수법인으로 전환시켜 관료의 규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면 민간병원과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더해 “공공병원은 1차적으로 민간 주도 의료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2차적으로 민간병원이 수행하기 어려운 기능도 당연히 수행해야 한다”며 “여기에 공공병원의 전국적 네트워크까지 활용하게 한다면 의료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 ‘문 케어’를 완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발제자와 토론자들도 점점 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공공병원들을 살리기 위한 나름의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민간병원과 똑같은 일반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병원은 단일수가체계의 우리나라에 맞지 않아 다른 특별한 ‘존재의미’를 하루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발표회 좌장을 맡은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사진)는 “사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국림암센터, 근로복지공단 병원, 원자력병원, 한일병원 등) 각 중앙부처의 특수목적을 갖고 있는 공공병원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방의료원들은 다른 민간병원들과 똑같은 일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쟁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하에 단일한 수가체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존재이유를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병원이 국가보건의료정책을 선도하고, 수익이 나지 않는 필수진료 등 민간병원이 제공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면 그에 걸맞은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사진,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는 “역대 정부는 공공병원이 공공보건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다름 아닌 재정 부족 문제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다양한 지원제도를 마련해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이를 위한 구체적 과제로 공공병원 예산제를 통한 고질적 예산 부족 문제 해결, 의대 교수 파견을 통한 임상적 리더십 구축 또는 대학병원의 공공병원 위탁 운영 등 2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임상적 리더십 확보는 공공병원의 정책적 리더십 구축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의대 교수 정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차라리 공공요양병원으로 전환은 어떨까?…공공병원 제 역할 위해 재정지원 시급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도 공공병원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무엇보다 전국의 지방의료원들의 경쟁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당장 무리한 시도를 하기 보다는 ‘공공요양병원’ 등과 같이 현실적으로 국민의 수요가 높은 공공시설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됐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영국이나 호주는 가장 경쟁력 있는 병원이 공공병원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지방의료원들은 너무 경쟁력이 없고 존재감도 없어 우리가 뭘 기대할 수도 없고, 각 병원들도 자신들이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상당수 지방의료원은 ‘요양병원화’된 현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방의료원들을 국민의 수요 및 선호도가 높고, 의료인력의 수요는 일반 병원에 비해 훨씬 적은 공공요양시설로 전환시키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일선 공공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장도 토론회에 나와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민기 서울의료원장은 “공공병원에 주어진 커다란 사회적 책무가 있지만 이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아무 것도 없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공공병원 역할의 중요성이 가장 크게 부각됐던 2016년 메르스 사태 이후 3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관련 예산은 더 줄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려 한다면 우선 현재 매우 적은 수준인 공공병원 예산 지원 규모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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