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9 (금)
초록 숲 내음 속에 왕릉의 역사가 함께해
초록 숲 내음 속에 왕릉의 역사가 함께해
  • 김진국
  • 승인 2019.08.19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국 교수의 걷기 예찬 (56) 융건릉 숲길

오백년 역사의 조선 왕릉은 42기 능 모두가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 30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중 융건릉은 우리가 흔히 사도세자로 알고 있는 장조와 황후의 능인 융릉과 아들인 정조와 황후의 능인 건릉이 나란히 모셔져 붙여진 이름이다.

■ 맑은 정기와 함께 초록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숲길
밤새 비가 내리다가 그친 날씨로 해님이 가려져 더위는 주춤하지만 습한 기운이 가득한 아침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길가의 논에는 벼들이 쑥쑥 자라서 초록 내음이 차 안에서도 느껴진다. 융건릉에 도착해서 안내지도를 보고 가장 긴 산책로 코스로 오늘의 코스를 정한다. 신선한 아침 공기와 함께 입구부터 맑은 정기가 샘처럼 길 위에서 솟아나는 기분이다. 길 가의 나무들도 건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오는 손님들을 행복하게 맞아준다.

융릉으로 향하는 길 가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소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자태로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밤새 내린 비로 단단히 다져진 길을 살며시 지르밟는 소리가 재미있다. 오솔길을 따라가서 돌다리를 건너니 융릉의 웅장한 자태가 시선을 압도한다. 융릉 입구에 자세히 쓰여 있는 왕릉의 구성물을 보니 머리가 복잡하다. 왕릉이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많은 건물과 조형물들이 필요하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홍살문을 중심으로 융릉의 풍광을 사진으로 남기고 산책로로 향한다. 두 능의 배후에서 이들을 든든히 지켜주는 영산의 능선을 따라 걷는 산책코스로 숲의 정기를 받으며 걷기 좋은 길이다. 처음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길을 따라 호위를 서서 숲길을 만들어 주더니 어느 순간부터 밤나무들이 임무를 이어간다. 밤나무 밑으로 흙길에는 떨어진 밤나무 꽃송이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를 만들어 메시지를 전한다.

다시 능선길을 따라 푸른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산새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가벼운 발걸음으로 행진한다. 능선의 끝에 다다르자 누군가가 소원을 빌며 열심히 쌓아올린 돌탑이 예쁜 모습으로 인사를 한다. 내리막길을 따라 가다가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보고 궁금해서 바로 앱으로 찾아본다. 이것이 바로 열매를 빻아 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어 떠오른다는 때죽나무의 열매다.

■ 아름다운 왕릉 탐방과 위대한 임금의 역사가 어우러진 명품길
건릉에 도착해서 홍살문을 사각액자 삼아 작품으로 만들고 능 주변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긴다. 비 온 후 햇살을 받아 더욱 초록이 두드러진 커다란 왕릉 앞 풀밭에서 한가히 앉아서 차 마시는 모습을 그려본다. 커다란 소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서 책을 펴고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습도 떠오른다. 단체로 온 방문객들에게 열심히 이곳의 역사를 설명해 주시는 한 신사분의 열띤 강연에 잠시 함께한다.

건릉을 뒤로하고 입구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니 쭉쭉 뻗은 가로수들이 길을 안내해준다. 확 트인 넓은 길에 초록 나무들이 만들어준 이 길은 어디에 내놓아도 명품길로서 손색이 없다. 멀리서 가족들과 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서로 내기를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신나게 뛰어온다. 또 다른 아이는 할머니와 아빠의 손을 잡고 비행기 타기를 하며 얼굴에 미소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이것이 바로 “소확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구에 있는 역사문화관에 들러 뒤주에 갇혀 슬픈 생을 마감한 후 추존된 장조와 황후인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이런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당당히 살아가신 정조는 지극한 효성으로 수원 화성을 건설하고 매년 화성행차를 하였으며 행차 때마다 백성들과 소통을 하신 위대한 임금이었다. 마지막으로 능을 관리하였던 능참봉이 머물렀던 재실을 둘러보고 2시간여의 아름다운 왕릉 숲길 걷기를 마무리한다.


TIP. 융건릉은 9시부터 입장이 가능하고 마감시간은 시기에 따라 다르다. 융건릉에 대한 정기해설을 함께 하고 싶으면 10시 30분과 오후 2시에 해설사 안내소로 가면된다. 융건릉 앞에는 한정식을 비롯한 다양한 메뉴의 맛집이 있어 골라먹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