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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위한 몇 가지 변명
변호사를 위한 몇 가지 변명
  • 전성훈
  • 승인 2019.08.1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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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48)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변호사는 직업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대중의 미움을 받아 왔다. 셀 수 없을 만큼 그 표현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만 지면에 옮겨 보자.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 너희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았노라.”(예수, 누가복음 제11장 제52절)

법률가(lawyer)로 표현되었지만, 당시는 변호사로부터 판사와 검사가 분화되기 이전이었으므로 그 취지는 변호사를 비난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잘한다, 돈만 좇는다, 나쁜 사람을 변호한다.

사람들이 흔하게 변호사에 대해 쏟아내는 비난이다. 과연 그럴까? 어떤 설명을 해도 의견이 바뀌지 않을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겠지만, 객관적 판단을 직무의 본질로 삼고 있는 의사들에게는 변호사를 위한 몇 가지 ‘변명’을 말해보고 싶다.

먼저 사람들은 변호사가 거짓말을 잘한다고 비난한다. 그것은 변호사가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아닌 것 같고(변호사들이 과거 모범생이었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법적 조력을 제공할 때, 즉 변호사로 일할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한다는 취지인 것 같다.

이것은 간단한 반박이 가능하다. “당신이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조력을 받고 있는데, 당신이 한 말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변호사가 당신의 말을 그대로 법원에 전달한다면, 당신은 그 변호사에게 만족하겠는가?” 아마 여기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거의 공통되는 민사소송 원칙에 따른 변호사의 업무방식은, 의뢰인이 말한 ABCD를 법원에 그대로 주장하거나 또는 전혀 다른 EFGH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ABCD 중 의뢰인에게 유리한 AD만을 법원에 주장하고 불리한 BC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법원에 BC를 주장하면, 변호사는 BC를 증명할 것을 다시 주장한다. 증명되지 않으면 의뢰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이렇게 사실 중 ‘일부’만 존재한다고 주장하거나 그 증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비법률가들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어떤 변호사가 의뢰인이 말한 ABCD를 법원에서 EFGH로 주장한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의뢰인이 말한 것과 완전히 다르게) 주장하는 변호사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주장하면 실제 사실과 달라 증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소송에서 아주 불리할뿐더러, 변호사 개인도 의뢰인과 싸움만 생길 뿐 아무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 거짓말’은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한다. 변호사가 상대방에게 하지 않는다.

둘째 사람들은 변호사가 돈만 좇는다고 비난한다. 최근 개인의 이익 추구에 대한 사회 인식이 관대해지면서 이러한 비난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여전히 유력한 비난 중 하나이다.

변호사는 직업윤리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2000년부터 변호사법을 개정해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보통 연간 20~30시간의 공익활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한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이다. 또한 대규모 로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별도의 공익법인을 설립해, 직접 공익활동을 하거나 공익활동에 대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변호사가 공익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징계를 받게 된다. 그래도 하지 않는다면? 변호사로 일할 수 없게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변호사를 비난하는 이유는 바로 나쁜 사람을 변호한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을 변호하는 형사소송과 나쁜 사람을 대리하는 민사소송을 나눠서 살펴보자.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연쇄살인범이 범행을 완전히 자백하고 증거까지 확인된 경우라도 법적 절차를 빠짐없이 거친다. 효율성을 매우 중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시간 낭비로 보이는 절차지만 말이다. 법 앞에 평등하므로, 비난 가능성의 대소와는 무관하게 연쇄살인범도 절차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당연히 변호인의 변호를 받아야 한다. 징역 25년을 받는 것이 적정한 죄를 지었는데 ‘억울하게’ 징역 30년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사소송에서도 양측은 법원에 자신의 주장을 제출할 기회를 동등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쪽이 이른바 ‘나쁜 놈’일 경우에도 그러하다. 가습기 살균제를 잘못 만들어 사람들을 죽게 만든 회사는, 유족들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액을 전액 인정해야 하는가? 만약 당신이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어린아이를 죽게 했다면, 그 유족이 청구하는 액수를 다투지 않고 모두 지급해야 하는가? 도덕과 법은 다른 것이라는 당연명제 위에 설립된 우리의 법과 제도는 여기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도덕적 비난을 받는 사람이라도 법에 근거해 법정에서 다툴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다.

이러한 이유로 변호사는 나쁜 사람을 변호하기도 하고, 나쁜 사람에 대해 제기된 손해배상청구를 방어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법에 의해 판단되기 전까지는 나쁜 사람으로 확정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기자가 판사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형이 확실시되는 연쇄살인범이 치명상을 입었더라도 의사는 일단 살려내고 본다. 이것은 생명이 정의보다 중요한 최우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의사들이 ‘의사를 위한 변명’을 더 크고 더 당당하게 외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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