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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이 뭐길래'···직원 사칭 ‘보이스피싱’까지 등장
'심평원이 뭐길래'···직원 사칭 ‘보이스피싱’까지 등장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8.1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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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크고 작은 ‘갑질 사건’ 재조명···골프·술 접대부터, 뇌물수수로 구속까지
심평원, 의사 출신 감사 영입하는 등 변화 중···의료업계 "갑질 근성 사라질까?"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김승택·이하 심평원) 직원을 사칭해 일종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벌이려는 사례가 발생해 심평원이 일선 병원에 '사칭주의보'를 내렸다. 심평원 측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기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사전 예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번 사건을 다른 관점(觀點)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심평원의 ‘갑질’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사건까지 발생하냐”는 것이다. 

◆전남 여수서 심평원 과장 사칭해 병원에 금융상품 강매 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주 본원 전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주 본원 전경

심평원에 따르면 최근 한 여성이 전남 여수의 한 요양병원에 전화해 병원직원에게 자신을 ‘심평원 박 모 과장’이라고 소개하며 병원에 방문해 병원 직원들에게 모 은행 금융상품을 홍보·판매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병원 측이 이 여성에게 관련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이 여성은 “심평원 윗분의 부탁으로 전화했다”며 금융상품 판매를 거듭 요청했다.

이 사실을 파악한 심평원 측은 홈페이지에 이 사실을 공지해 유사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알리고 또다시 이 같은 요구가 있으면 심평원과 경찰 등에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형호 심평원 고객홍보실장은 “심평원은 어떤 경우에도 의료기관에 금융상품 가입이나 계약 권유 등 업무 이외의 요청을 하지 않는다”며 유사한 사례 발생 시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갑 중에 갑(甲)' 심평원···골프접대는 기본, 업무 편의봐주고 금품수수하다 사법처리까지 

이번 사건이 비록 미수(未遂)에 그쳤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심평원이 일선 요양기관들을 상대로 행했던 ‘갑질 사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실제로 심평원은 ‘의료계 금융감독원’이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의료계에서 ‘갑 중의 갑’으로 알려졌다.

모 병원급 의료기관 관계자 A씨는 “심평원으로부터 의료행위 전반에 대한 심사·평가를 받고 의심되는 경우 현지조사는 물론 진료비 삭감까지 당할 수 있는 요양기관 입장에서 심평원 직원이 전화해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 해도 쉽게 단칼에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평원은 예전부터 크고 작은 ‘갑질 사건’에 휘말리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골프 접대다. 

지난 2017년 심평원 모 부장이 모 대학병원장, 이 대학병원 교수와 함께 골프를 치고 식사 접대를 받아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은 일이 있다.

지난 2016년에도 심평원 직원들이 무더기로 서울 소재 한 병원 관계자로부터 골프접대를 받았다가 중징계 처분을 받았고, 2014년엔 심평원 현지조사 직원이 한 의료재단 이사장으로부터 골프와 식사 대접을 받고 내부징계를 받았다.

단순 접대를 넘어 업무상 편의를 봐주고 금품을 챙겼다 사법처리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17년 초 심평원 심사위원 2명이 한 제약사 신약(新藥)의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 이 회사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현금 8000만 원을 비롯해 술값, 호텔 마사지비, 골프비, 식대 등 약 1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0년에는 심평원 3급 직원이, 2013년에는 2급 직원이 각각 금품을 수수해 파면되기도 했다.

◆심평원의 항변 "갑질 근절 종합대책 등 마련해 자정노력 중" 

당사자인 심평원은 이 같은 세간의 시선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고 이후 자정(自淨) 노력을 기울여 이제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평원은 지난해 7월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갑질 피해 신고·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또 의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심평원 감사에 취임한 문정주 감사는 지난 2월 취임 일성으로 “비리 및 부패 사건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평원이 의사들의 약한 고리인 요양급여 삭감 여부를 쥐고 있는 이상, 을(乙)인 의사들을 상대로 한 갑질 근성이 사라질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한 현직 의사는 "심평원이 자신들의 심사권을 근거로 자신들이 병원에 군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국민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 기관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행동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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