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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사집에 '사후약방문'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나
[칼럼] 의사집에 '사후약방문'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나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8.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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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원격의료 허용 과정···'불투명·무책임·부도덕'으로 요약
언제까지 뒤통수 치기식 행정 반복할 건가···진정성 보여달라

우리나라 의료계 역사에서 총파업은 단 두 차례 있었다. 그 중 최근인 지난 2014년, 의사들이 파업을 결의하게 된 명분은 '원격의료' 추진 반대였다. 그만큼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원격의료'는 민감하고 폭발력이 있는 사안이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논란이 될 만한 내용에 대해선 이해관계자들과 토론하고 협의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사실상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강원도 규제자유특구 지정 과정에서 택한 방법은 그와 정반대였다. 추진 과정은 '불투명'했고, '깜짝' 발표가 돼버린 공개 방식은 '무책임'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정부는 '부도덕'하기까지 했다. 대놓고 원격의료라고 하면 참여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없을 것을 우려했는지, 추진하는 사업이 원격의료라는 사실을 숨긴 것이다. 

이번 원격의료 사업에 유일하게 참여한 의원급 의료기관인 밝음의원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면 진료를 목적으로 한 의료정보 기반의 당뇨 원격모니터링 실증 특례로 설명 듣고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며 “의사-환자 간 진단과 처방을 포함한 원격의료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본지 취재 결과, 밝음의원 측 주장은 사실이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처음에 밝음의원 측과 '원격모니터링' 사업을 추진하기로 협의한 것은 맞는데 중간에 사업 자문위원이 변경되고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로 변경됐다"며 "이 사실이 해당 밝음의원 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의 주무부처인 중기부는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애초 원격모니터링이 원격의료로 사업내용이 바뀐 이유'를 묻자 “강원도 소관사항이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 모두 의료계가 민감해 하고,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격의료’를 추진하면서 기본적인 소통 노력조차 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지난 2일 의료계 인사들을 만나 “이번 원격의료 사업은 반드시 의사가 주도하고 참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의료계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다른 집도 아닌 의사 집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언제까지 말로만 협의를 외치고, 뒤돌아서 뒤통수를 치는 행태를 반복할 것인가. 의사들이 바라는 건 정부가 제발 최소한의 '진정(眞情)성'이나마 보여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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