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국민에게 바라는 것
우리가 정말 국민에게 바라는 것
  • 정준기
  • 승인 2019.08.12 09:4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113)
정준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정준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요즘 <의사신문>을 보니 ‘산부인과 의사 법정구속 사태’와 ‘원격의료 특례’에 관한 의사들의 반대시위가 중요 뉴스로 나와 있다. 내용을 보면 사산아를 유도분만하는 과정에서 의사의 과실로 산모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슈는 정부가 강원도 산간과 오지에 사는 만성질환자(당뇨병, 고혈압) 중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원급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사건이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의료 전문성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은 사산아를 유도분만하는 과정에서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산모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담당 의사를 법정 구속했다. 이에 분노한 산부인과 의사 600여 명이 7월 20일 서울역 광장 집결해 이번 사건을 규탄하는 궐기대회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모든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위험성을 안고 있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분만 시에는 돌발 변수가 많고, 사전 예측이 불가능해서 의료진의 과실이 없어도 사망이나 중증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동은 결의문을 통해 △의사 전과자를 양산하는 형사 입건을 당장 중단하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뇌성마비와 같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제 시행 △원래의 목적과 기능을 상실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해체 △의사를 법정 구속하고 과도한 배상 판결로 분만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법원의 각성을 촉구했다.

한편 7월 24일 정부는 원격의료를 시범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은 우리나라는 의사 밀도가 높고 교통 접근성이 좋아 사실상 오지가 거의 없어서 원격 의료는 실효성이 없다고 줄곧 설득해 왔다. 무엇보다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진찰해야 하는 의학적 원칙에도 어긋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당사자인 의사협회는 물론, 강원도의사회와 전혀 협의도 없이 시범사업을 발표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국민들의 의료 이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의료정책’을 정부는 산업적, 기업적, 영리추구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아닌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원격의료 추진 계획을 발표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의료를 벤처 사업과 기업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에피소드를 하나 더 이야기하겠다. 내 친구가 장마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날 출근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얼굴에 큰 상처가 나고 머리는 땅에 부닥치는 사고를 당했다.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119 구급차를 불러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촬영한 머리 CT에 다행히 이상 소견이 없어 이마 상처 만 깨끗이 소독하여 실로 꼬메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물론 실력 좋은 성형외과 의사가 시술하였다. 여러분, 이 환자가 모두 낸 돈이 얼마일까요?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고 5일간 약 조제비를 포함해 20만원이었다.

미국과 독일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그 친구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비용과 질적인 면에서 세계 제일인 수준’ 이라고 감탄했다. 특히 응급상황에서 대처는 감사를 넘어 감동적이었단다. 요즘은 해외 교포가 중증질환이 생기면 무조건 고국에 와서 치료를 받는 이유를 실감했고, 단지 응급실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 간호사가 좀 더 따뜻하게 환자의 심정을 헤아려 주었으면 했다고.

그러나 이렇게 수준 높고 효율적인 의료를 전국민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은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 위에 이루어 지고 있다. 의료보험 수가가 원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나 국민들은 이미 이 제도의 단맛에 빠져 있어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학병원에서도 의료행위만으로는 적자가 나고 식당, 주차장, 영안실 등에서 얻는 이득으로 지탱하고 있는 왜곡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근본이 흔들거리는 이런 위기 현상은 외면하고 조그마한 보험인상폭을 놓고 생색을 내고 있다.

그러면 전국민에게 최고의 의료를 착한 값(?)으로 지탱하고 있는 의료인이 정부나 국민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너무나 당연하지만, 먼저 보건 의료 분야의 유일한 전문가로 인정 받는 것이다. 국가적인 의료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할 때 의사의 전문적 지식과 판단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또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집단이 의료행위를 조사 평가하는 사태는 고쳐져야 한다.

다음은 의료인들이 안심하고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 환자가 악화되기를 바라는 의사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 면책 제도가 확립되면 결과적으로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도움을 받는 셈이 된다. 풍부한 경험에 의한 소신있는 진료, 새로운 진단과 치료법, 환자에 따른 맞춤 치료법 등 효율적 의료를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생긴 원인은 이 자리에서는 논의 밖이다. 아무튼 이러한 ‘전문성의 인정과 보장’을 넘어 ‘존경과 애정 어린 국민의 시선’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의과대학 교수만의 꿈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자꾸 열심히 타령인데 2019-08-18 01:51:39
착한값에 열심히 하고 있으니 대우받고 싶으신 것 같은데, 열심히 안해서 사람 목숨 날라가는게 한둘이 아니니 국민들이 분노하고 불신하는 거죠. 열심히 좀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