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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뜨거워진 감자, 원격의료
더 뜨거워진 감자, 원격의료
  • 전성훈
  • 승인 2019.08.12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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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47)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조건반사(conditioned reflex)라는 말이 있다. ‘동물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반사’를 의미한다.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실험을 통하여 발견된 이후,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서서 사회학적으로도 ‘일정한 시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일컬을 때 폭넓게 쓰이고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이 발생할 때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격의료, 이는 의료계의 조건반사를 일으키는 용어 중 하나이다. 26개 전문과목마다 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의료계는 일관하여 일치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가 반대하는 논거는 명확하다. ‘진료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원격의료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망가진 의료전달체계의 급속한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전국 7개 지역에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했다. 이는 ‘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규제특례법’에 근거한 것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시험하고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핵심규제를 완화하는 ‘특구’를 지정하는 제도이다. 이후 특구마다 사업 결과를 평가해 특구 지정을 연장.확대하거나 해제하게 된다.

나머지 특구 지정에는 논란이 없으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 일대 약 77만㎡에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한 것이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사업기간인 2019년 7월 ~ 2023년 6월 중 특구 내의 1차 의료기관은 격오지의 만성질환자 중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으로 모니터링 및 내원안내, 상담.교육, 진단.처방을 할 수 있다. 다만 1년에 200명까지만 가능하며, 진단.처방은 간호사의 환자 방문 및 입회하에서만 가능하다.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을 잘 알면서도 정부는 왜 계속적으로 원격의료의 확대실시(의료인-의료인간 원격의료는 2002년 이미 입법되었다)를 시도하는가? 그 이유는 크게는 세계 산업계 동향을, 작게는 정부와 강원도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바이오제약 산업, 건강증진 사업이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론이 없다. 그리고 미국, 영국 등과 같이 건강보험제도의 비효율성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선진국들이나,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신흥국들에게는 기존 의료서비스의 개선과 보완을 위하여 원격의료는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다. 따라서 의료플랫폼 산업, 의료기기 산업, 의료정보 산업 등 원격의료 관련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실제로 가파른 성장세에 있다.

이러한 신시장을 간파한 세계의 기업들과 우리나라 대기업집단들은 위 산업들에 대하여 몇 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투자를 계속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집단들은 국내의 의료법과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인해 개발한 원격의료 관련 기술을 실험하고 산업화 가능성을 타진할 테스팅 마켓이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동향을 알고 있는 중기부는, 특구 지정을 발표하면서 “의료사각지대 해소, 국민 건강증진, 의료기술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의료기기 분야에 원격의료, 의료정보 등 규제특례를 부여하여 디지털 헬스케어 신산업 활성화로 지역 및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원도 역시 “원격의료가 실생활에서 가능하게 되면 지금까지 각종 규제로 인해 묶여 있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이 활발해 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50여 개 기업 유치, 3천여 명의 고용창출 등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며 3천억 원의 생산 유발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정부가 내건 원격의료 확대실시의 1차적 목적은 ‘의료사각지대 해소’라는 보건의료적인 목적이지만, 본심은 ‘기업 지원과 경제 활성화’라는 경제산업적 목적이다. 욕망을 고귀한 명분으로 감싼 당의정(糖衣錠)이라고나 할까.
모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규제자유특구 지정과 관련하여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지난달 15일까지도 중기부와 보건복지부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였으며, 의료계의 거센 반대를 알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계속하여 난색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강원도는 “중기부가 주무부처지만 보건복지부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현재 보건복지부 측과 협의해 원격의료 부분의 사업 내용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견 조율의 결과는 원격의료 허용이었다. 위 보도가 사실이라면, 4선 국회의원 출신 실세 장관을 업은 중기부가 원격의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누른 격이 된다.

원격의료의 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이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여 경제산업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되 의료계가 우려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히 관리하겠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나, 의료계는 그간의 경험으로 이를 신뢰할 수 없다.

의료계 역시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한 불필요한 비판과 시간끌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 입장들을 효과적으로 수렴.정리하겠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나, 정부 역시 그간의 경험으로 이를 신뢰할 수 없다.
규제 개혁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하나, 의료에 대한 규제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의 특수성, 그리고 의료가 자본의 논리에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를 배경으로 도입된 것임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공장을 어디에 짓느냐, 오염저감장치를 몇 개 다느냐와 같은, 국민과 국회가 정부에 그 실무적 시행을 사실상 일임하고 있는 보통의 규제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의사의 손을 떠난 의료정책이란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쉽지 않을 것이지만, 원격의료와 관련하여 쉬운 쟁점부터 합의를 이뤄가면서 신뢰의 평행선을 좁혀나가야 한다.

정부는 ‘임기 내’라는 급한 마음을 버려야 하고, 의료계는 ‘진정한 마지노선’에 대한 선행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정부가 의료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특구 사업의 실제 운영과정에서 의료계와 충실히 협의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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