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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 최고령 졸업생
하버드대학 최고령 졸업생
  • 유형준
  • 승인 2019.07.2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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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82)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메리 파사노(Mary Fasano)는 일흔 한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흔 두 살에 하버드 대학 평생대학에 입학하여 이탈리아 문화를 전공하고 여든 아홉 살에 졸업하였다. 루덴슈타인(Rudenstine) 총장은 ‘이 대학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인 그녀가 한 학기에 1과목씩 수강하며 총 17년 만에 꿈을 실현한 사실을 짚었다. 그녀가 학위를 받고 자신의 소회를 밝힌 연설을 가능한 줄여 마물러 적는다.

“나는 몇 년 전 내 딸이 매우 걱정스러워 했던 어느 날 밤을 기억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보통 11시까지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던 저를 기다리던 제 딸은 그날 밤 당황했습니다. 제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딸은 정거장 주위를 몇 번이고 돌아보고 황급히 친구들과 연락했습니다. 한참 후 대학의 천문학과 교수와 연락이 닿은 제 딸은 제가 천문 센터에서 망원경을 통해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다가 시간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일흔 한 살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든 아홉 살에 학사 학위를 받은 여성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늦게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할 수 있는 한 배우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먼 나라로 여행하여 유명 화가의 그림, 잘 알려지지 않은 조각가의 동상, 고대 건축가의 성당 등을 구경하는 큰 느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무리 준비해도 충분히 준비 할 수없는 마지막 시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전후, 7학년[열두세 살 정도로 중학교 2학년] 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가족을 돌봐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드아일랜드의 면화 공장에서 수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 후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 스무 명의 손자, 열여덟 명의 증손 자녀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는 주변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느꼈습니다. 한편 저는 대학 졸업생만큼 똑똑하다고 자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성공적인 가족 사업을 운영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고 감상함으로써 얻는 힘은 누구든지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이 힘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지난 75년 동안 학위를 얻으려는 노력의 동기였습니다.
여러분, 저의 이 여행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지식의 힘은 저를 늦은 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던 가장 만만치 않은 여든 아홉 살 여성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노년기의 특성을 다양성, 이질성 등으로 설명하는데 필자는 노인의 특성을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으로 푼다. ‘고체에 어떤 한도 이상의 힘을 가하였을 때, 고체가 부서지지 않고 모양이 달라져서 그 힘을 없애도 달라진 모양 그대로 있는 성질’로서 유연성, 적응성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게 가소성이기 때문이다. 가소성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또한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한 사람은  ‘인간 심리사회 발달 여덟 단계’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슨(Erik Erikson)이다. 그는 ‘사람은 일생을 통해 꾸준히 발달해 간다’는 대전제 아래 삶을 노화 과정이 아니라 발달의 과정으로 본다. 따라서 각 시기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도전하고 대응하며 성숙해진다. 이 과정을 ‘발달과업’이라 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65세 부터 죽기까지의 시기는 성숙기로 자아통합을 이룰 것인지 아니면 절망 상태에 빠질 지의 갈등 시기라고 한다. 즉,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거나 검토해보며 마지막 평가를 하는 숙고의 시간이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상황과 잘 통합시킬 수 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을 갖는 게 자아통합이다. 반대로 과거가 불만족스러우면 통합이 안 되어 절망감에 빠져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뒤돌아보기도 검토와 평가도, 그리고 자아통합도 절망도 마땅한 지식이 필요하다. 철저한 성찰 앞에선 절망도 무력해질 뿐이라 믿는 까닭이다. 에릭슨의 이론에 따르면, 메리 파사노는 대학 졸업 후 십 년 더, 아흔 아홉 살 세상을 뜨기까지 쉼 없이 배우고 익히며 자아통합을 넉넉히 하였을 것이다. “인간의 가소성은 전 생애를 통해 열려 있다.” 독일의 자를란트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폴 발테스(Paul Baltes)는 1978년 ‘발달심리학(Development Psychology)’에 발표한 견해다.

메리 파사노처럼 나이 들어 학업을 시도하거나 수료하는 이들을 보고 자주 “참 젊습니다.”라는 덕담을 보낸다. 아마도 나이 들어 공부한 사람 스스로 ‘나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라 지레 판단하여 건네는 찬사다. 일부는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많은 부분은 틀렸다. 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늙었음에도 늙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시도하고 수료하는 것이다. ‘늙음이 젊다’는 허상적 착각이 아니라 ‘늙음은 늙음’이라는 확신 덕택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늙음이 지닌 가소성은 배움과 지식 성숙의 능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사람의 수명이 빠른 속도로 길어지고 있어 한 두 개의 정설로 당장 한정지을 수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실제로 가장 현실적일 수 있는 경제 분야에서도 늙음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면,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마이클 밀컨(Michael Milken)이 설립한 싱크탱크인 미국의 밀컨 경제 연구소는 ‘인류가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자원이 고령자’라고 노인층을 꼭 집었다.

‘지식이 힘’이라는 메리 파사노의 가소성과 자아통합능력을 빌어 그녀의 말투로 끝을 맺는다. ‘늙음은 늙음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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