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 인간, 그리고 의사
형벌, 인간, 그리고 의사
  • 전성훈
  • 승인 2019.07.22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45)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형벌은 인간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동체의 제재를 말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형벌은 언제였을까? 아마 인간이 가족을 넘어서 공동체를 이루고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였을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살면 꼭 ‘말 안 듣는’ 사람이 있고, 그 중 일부는 그 정도가 심각해서 공동체의 안위를 위하여 제재를 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형벌이 권력자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집행되던 형벌의 초기 단계를 겪은 후, 사람들은 권력자의 즉흥적인 판단이나 감정에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완전성을 맡기는 것이 위험함을 체감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소망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는 보기는 어렵지만, 형벌을 명문화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따라 이른바 성문법이 제정되었다.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하면 대부분 ‘함무라비 법전’을 떠올린다. 그렇다. 바로 그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기원전 1700년대에 고대 바빌로니아를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함무라비 법전은, 동해보복(同害報復)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잔인한 법은 아니었다. 보복을 빙자한 과도한 사적 복수를 금지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법이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① 도둑이 가축을 훔치면 그 값의 10배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보상할 돈이 없다면 사형에 처한다. ②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다가 환자가 죽게 되면 의사의 손을 자른다(!). ③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소하고도 입증할 수 없으면 고소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④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두 손을 자른다. 웬만하면 죽이거나 자르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실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2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왕조의 우르남무 왕이 반포한 ‘우르남무 법전’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이다. 강력한 전사였다고 하는 우르남무 왕은, 무력으로 국내를 평정한 후에 질서 유지를 위하여 법전을 반포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이런 것이다. ① 살인은 사형. ② 절도는 사형. ③ 처녀를 성폭행하면 사형. ④ 기혼녀가 외간남자와 동침하면 사형. 아마 왕이 의도한 대로 질서는 잘 유지되었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⑤ 여자 노예가 그녀의 여주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무례하게 말하면 여자 노예의 입에 1리터의 소금을 문지른다는 형벌이다. 입에 소금을 문지르는 형벌이라니, 참으로 창의적이지 않은가?  멀리 중국에서는 기원전 700년경 춘추전국시대에 공식적 형벌로서 5형이 확립되었다. 그것은 ① 묵형(죄명을 문신으로 얼굴에 새김), ② 의형(죄인의 코를 자름), ③ 월형(죄인의 발뒤꿈치를 자름=앉은뱅이를 만듬), ④ 궁형(죄인을 거세함), ⑤ 대벽형(죄인의 목을 자름)이다. 신체절단형 풀 패키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끔찍한 5형이 약 1,200년이 지나면 인지의 발달로 인해 많이 순화(?)된다. 이 순화된 5형은 ① 태형(엉덩이 회초리 치기, 지금도 싱가폴 등에서 시행한다), ② 장형(흔히 말하는 ‘곤장’인데, 60대~100대여서 맞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 ③ 도형(장형을 받고 1년~3년간 감금되어 강제노역을 한다), ④ 유형(흔히 말하는 ‘귀양’인데, 장형을 받고 2~3천 리 밖으로 쫓아낸다), ⑤ 사형(귀족은 교수형, 평민과 노예는 참수형)이다. 그래도 이 시기가 되면 툭하면 신체를 절단하는 단계는 벗어나게 된다.

조선 역시 위의 태-장-도-유-사 5형을 받아들여 사극 등에서 보는 형벌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식 형벌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영향으로 현재와 같은 형벌 체계가 자리매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사형방식이 미국과 같이 총살형, 가스형, 전기의자형 등이 아닌 교수형인 이유는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교수형으로 사형을 집행하다가 패망한 이후 일본이 남긴 처형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벌이란 제도를 도입한 이후, 비록 몇 천 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인간은 꾸준히 이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왔다. 아무리 형벌이 사회유지를 위한 필요악이라 하더라도 ‘확실한 효과’를 위한 ‘강력한 형벌’만이 능사가 아니고 이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대가가 따름을 차츰 깨달아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인지가 발달하면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인 형벌과의 관계를 정립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형벌과 인간의 관계는 정립되어 가지만 형벌과 의사의 관계는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의료인이 술에 취한 상태나 약물의 영향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로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면허취소와 함께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기 때문이다.

일단 법리상 특정 직역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법을 위해서는 그 입법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협의가 있어야 할 것인데, 위 의료법 개정안 발의시 이러한 시도라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한 백보 양보하여 입법 필요성이야 이해한다 하더라도, 형법, 의료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과 같은 현행법들로도 위와 같은 행위들에 대한 예방과 제재가 충분히 가능하므로, 처벌을 남발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의료인들은 여느 직역보다 높은 수준의 법적, 윤리적 의무를 준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특정 직역이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여 주취상태로 직무수행시 가중처벌한다고 한다면, 국회의원들, 공무원들, 판검사들에 대한 입법부터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경찰, 소방관, 군인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 방위산업체 근로자, 응급구조사, 사회복지사는 어떤가? 차라리 대부분의 직종을 가중처벌하면 대한민국이 가중발전하지 않을까. 그런데 가중처벌을 안 받는 직종은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테니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어이없는 법안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어이없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