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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 산모사망 의사 법정구속 웬말인가?”
“불가항력 산모사망 의사 법정구속 웬말인가?”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7.20 22: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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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600여 명 서울역 광장 집결…규탄 궐기대회 열고 대책 마련 촉구
의료사고처리특례법·불가항력 사고 국가책임제·의료중재원 해체 등 요구

불가항력으로 분만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분만 산부인과 의사의 책임을 물어 법정구속한 법원의 결정에 전국의 600여 명의 의사들이 무더위 속 주말 저녁 한자리에 모여 석방을 촉구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가 20일(토) 오후 6시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한 ‘산부인과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에 전국의 의사들이 집결해 일제히 분노를 터트렸다.

지난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형사 2심 판결을 통해 사산아를 유도분만하는 과정에서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를 인지하지 못해 산모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를 금고 8개월로 법정구속했다.

모든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위험성을 안고 있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료계의 입장이다. 특히 분만 의료행위는 돌발 변수가 많고, 사전 예측이 불가능해서 의료진의 과실이 없어도 사망이나 중증질환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 의사가 위급한 산모를 살려내지 못한 게 감옥에 갈 사유가 된 이번 판결은 결국 재판부의 의료에 대한 몰이해가 불러온 ‘마녀사냥’이라는 지적이다. 그렇잖아도 출산율 저하와 의료 저수가 등의 문제로 전국에 분만 산부인과가 부족한 상황에 일부 의사들이 어렵사리 분만실을 운영하며 진료하다가 한순간 흉악범으로 낙인찍혀 법정구속되었다는 점에서 의사들 모두 ‘내일은 내가 잡혀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

20일 궐기대회에서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불가항력 상황에서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고 실형을 선고하면 대한민국의 어떤 의사가 소신있게 진료를 할 수 있겠나”라며 “전 세계적으로 불가항력 사고는 국가가 나서서 적극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해 안전한 진료환경을 하루 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승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젊은 여성과 의원급 의료기관이 가장 많은 진료 과목이 산부인과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설명을 해도 의료사고를 피할 수 없는데 오히려 무분별한 판결과 포퓰리즘 형사처벌의 먹잇감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김 이사장은 “예측 불가능한 태반조기박리 확률은 무려 12%나 된다. 그렇다면 산부인과 의사 10명 중 1명은 감옥에 가야한다는 것인가. 산부인과학회는 법정구속한 동료의사를 하루 빨리 불구속 재판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며 “오늘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의사의 권익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김윤한 모체태아의학회 회장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턱도 없이 낮은 수가로 분만 산부인과를 1년 365일 24시간 운영하면서 응급의료수가도 못 받고 있는 현실에 불가항력 사고로 동료 의사가 구속까지 당함에 따른 우리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외국처럼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산부인과 의사인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태반조기박리는 정말 발견하기가 어렵고 몸속에 박혀있는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는 특히 더 어렵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교과서대로 진료하고 혈압측정을 했는데도 산모가 사망했다고 법정구속을 해버렸다”며 “이번 사건으로 당사자인 동료 의사는 10년 이상 경북 안동에서 어렵게 운영했던 분만실을 접기로 했다고 한다. 사법부는 대한민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전부 분만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장 법정구속된 의사를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도대체 왜 대한민국에서만 의사 구속 사태가 이렇게 빈번한 것인가? 주요 선진국들은 수백 년간의 경험을 통해 불가항력 사고에 대해서는 의사의 책임을 면책하고 있다”며 “의협이 대정부 투쟁을 선포하며 내세운 6대 척결과제 중 하나가 ‘(가칭)의료행위 형사처벌 면책 특별법’이다. 이 법을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고 동료의사의 구속 해제를 13만 의사를 대표해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읍소했다.

 

 

이철호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의사의 법정구속이 과연 타당한가. 입원 중이고 분만 대기 중인 다른 환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며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는 희귀증례로 어느 의사도 쉽게 진단하고 치료하기 힘들다. 의사가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예측 불가능한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구속한다면 진료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장 구속된 의사를 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행동하는 자유시민 대표)도 이날 궐기대회 현장을 찾아 “지금 대한민국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 결과만 갖고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 마녀사냥을 하고 정치인들은 이를 쫓아 표를 구걸하기에 급급한 현실”이라며 “이번 법정구속 사건도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구속 권한을 멋대로 남용한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자유의 억압이다. 전국 60여 개 시군구에 분만받을 곳이 없다고 하는데 이들 지역의 산모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라고 개탄했다.

이날 궐기대회에는 산모 사망을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가 법정구속을 당해 이번과 마찬가지로 2년 전 궐기대회를 열게 했던 사건의 당사자인 이희정 원장도 나와 울먹이며 사법부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이 원장은 “구속됐던 당시 저는 좋은 변호사를 알아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산부인과의사회와 의협에서 도움을 줬다”며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했음에도 결과만 갖고 책임을 물어 법정구속한다면 이 나라에서 더 이상 분만은 이루어질 수 없다. 정부와 국회, 사법부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지난 2013년 4월 8일부터 시행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분만 과정에서 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신생아의 뇌성마비, 산모의 사망, 태아의 사망 또는 신생아의 사망 등 의료사고에 대한 피해보상제도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 재원을 분만병원이 분담토록 강제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일을 전담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진료비를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청구액에서 할당금을 미리 공제하는 방식으로 강제징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과실 분만 사고는 의사의 과실이 없다는 의미인데도 책임을 지도록 강요하는 제도를 의료계는 더이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주최 측은 “결코 비용 부담의 문제가 아니다. 분만실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도 모든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분만을 집도한다는 이유로 과실이 없는데도 배상의 책임을 지라는 정부의 비뚤어진 인식은 의사들의 자긍심을 무참히 짓밟는 폭력이며, 저출산 시대에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대한 상해가 발생했을 때 중재원의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현 제도에서는 중재원의 조사 결과가 형사 사건의 자료로 수집될 것이고 중재원의 감정서가 형사 재판의 결정적 증거로 악용될 것은 뻔하다. 이는 의사들의 방어진료를 부추기고 소신진료를 막아서 결국 국민건강권의 침해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주최 측은 대한민국 분만의사들이 정부의 억압에 결국 모두 총살당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경각심을 주기도 했다. 궐기대회 현장에서 이번에 법정구속당한 산부인과 의사의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끝으로 주최 측은 전국 산부인과 의사 일동 명의의 결의문을 통해 △의사 전과자를 양산하는 형사입건을 당장 중단하고 진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특례를 법으로 정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뇌성마비와 같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책임제 시행 △증거수집과 형사고소 그리고 구속의 수단으로 전락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해체 △의사를 구속하고 과도한 배상 판결로 분만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법원의 각성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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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2019-07-21 23:57:08
은폐성 태반박리라고 해도, 그 과정중에 최선을 다했느냐 안했느냐가 쟁점일텐데 활력징후 조차 체크 안했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것 아닌가? 같은 의사지만 너무들 하네 국민들한테 욕 먹을짓만 골라서 하는게 요즘 의협이다.

정신들좀 차려라 2019-07-21 23:54:45
아니 같은 의사라도 비호할게 있고 아닌게 있는거지, 기본적인 활력징후도 체크 안하고 의무기록 마저 조작한 비윤리적인 내용까지 비호하면 어쩌자는건가? 요즘 협회 왜 저러나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