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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1일부터 시행인데···분석심사 개편 앞두고 뒤숭숭한 의료계
당장 1일부터 시행인데···분석심사 개편 앞두고 뒤숭숭한 의료계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7.19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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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최고위 과정 수업에 서울시醫 관계자들 청강생으로 대거 참여
제도 시행 목전 앞두고 이영아 심평원 심사기획실장 강의에 질문 쏟아져

다음 달 1일부터 진료비 심사체계가 현행 건별(件別) 심사에서 분석(경향) 심사로 전환된다. 심사체계 개편이 임박했지만 여전히 의료계에선 새 제도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큰 상황이다. 

지난 18일 오후 7시 45분 의협 임시회관 7층 대회의실에서는 대한의사협회 제28기 의료정책최고위 과정 제10강 수업이 진행됐다. 정부가 강행하는 ‘심사평가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 심사평가원 관계자가 직접 설명하는 자리다. 

이날 강의는 원래 의협 최고위 과정생들을 위한 강의였지만 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의 특별 요청으로 서울시의사회 임원진과 대의원, 구의사회 회장들이 청강생으로 대거 참석했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

박홍준 회장은 이날 강의 시작에 앞서 “심사체계 개편 내용에 대해 냉철하게 팩트를 체크해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 강의에 서울시의사회 관계자들이 가능한 한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며 “정말 유익한 시간이 되어 앞으로 제도 개편방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의실이 평소보다 빽빽하게 들어차면서 자연스럽게 초반부터 열띤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날 강연자로 강단에 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영아 심사기획실장(사진)은 심사평가 체계 개편의 추진 배경과 경과, 기본 개편 방향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1일부터 새 심사체계 시행

보건복지부는 진료비 심사체계 개편 내용을 담은 ‘요양급여비용 심사·지급업무 처리기준 고시 전부 개정안’을 지난 9일 행정 예고했다. 오는 29일까지 관련 개인·단체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다음 달인 8월 1일부터 즉시 시행할 예정이다.

이미 새 제도 도입을 거스를 순 없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심사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분석심사체계로 개편할 경우 과소 진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진료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해 자칫 이 제도가 총액계약제로 변질될 가능성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부와 심평원은 현재의 비용 효과성 중심의 건별 심사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봤다. 심사 물량이 이미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데다,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전 방식으로는 도저히 밀려드는 심사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환자 입장에서도 현행 제도 하에선 제대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등 현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져 현행 심사 체계에 대한 전면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는 입장이다. 

◆보건당국, 심사의 유연성 확대 등 보완장치 마련

새 제도 도입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를 감안해 당국은 여러 가지 보완 장치를 마련해 놨다고 설명한다. 

일단 심사의 유연성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건별 방식에서는 급여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심사조정에 들어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뀐 제도 하에서는 급여기준을 다소 초과하더라도 당장은 삭감하지 않고, 의학적 필요성이 있으면 인정하는 방식으로 심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심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도 추진된다. 

우선 분석심사과정 전반에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한 임상전문가가 심사 주체로 참여한다. 심평원은 심층 심사를 지역별․주제별 2단계로 나눠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역별 ‘전문가심사위원회(Professional Review Committee, PRC)’와 주제별 ‘전문분과심의위원회(Special Review Committee, SRC)’ 구성을 위해 의협과 병협에 각각 위원 추천을 요청한 상태다.

이영아 심평원 심사기획실장

또 심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심사위원 실명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심사위원 위촉방식도 연임 횟수를 제한함으로써 부패의 연결고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영아 실장은 “앞서 심사체계 개편 방안을 협의체에서 논의하면서 가입자단체의 반발이 크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예상과 반대로 공급자단체인 의협이 반발했다”며 “이후 의정 대화가 단절되면서 (새 제도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 모든 원인은 그동안 일관되지 않은 심사를 한 심평원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 때문인 것 같다”며 “앞으로 모든 개편 과정에 있어 의료계의 자문을 충분히 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초반 날선 공방, 말미엔 덕담 오고 가

이 실장의 설명이 끝나고 참석자들의 코멘트와 질문이 이어졌다. 예상대로 심사체계 개편에 대한 일선 의료현장의 깊은 불신과 우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사진)는 “PRC 인적구성에 대한 내용이 고시에 없어 시민단체 관계자 등 비전문가가 참여해 의학적 전문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또 의료기관이 분석심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할 경우, 이에 따르는 행정 비용을 보상하는 내용도 없다”고 지적했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가 질의하고 있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가 질의하고 있다.

먼저 위원회 인적구성에 대해 이영아 실장은 “의협의 의견을 모두 수용할 것이라고 제가 장담할 수 있다”고 답했다. 행정비용 보상 부분에 대해선 “현재 의료기관의 추가적 자료 제출에 따른 행정비용 보상방안을 검토 중인데 이것이 일자리 창출과도 맞물려져 복지부 예산이 아닌 기재부 예산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 이사는 ‘별건’(別件) 심사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전달했다. 그는 “의무기록을 기반으로 심층심사를 하게 되면 원래 심사대상이 아니었던 다른 항목의 자료까지 제출하게 된다”며 이에 대한 추가적 심사가 이뤄져 급여가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 질문자로 나선 이세라 의협 기획이사는 “심사체계 개편에 앞서 잘못된 수많은 급여기준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PRC와 SRC의 한정된 인력과 시간으로 그 많은 심사건수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무엇보다 의료계는 그동안 행위별 심사에 익숙해져 있는데 현재 추진하는 심사체계 개편 방향 내용을 보면 너무 복잡해서 모두 이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심사체계 개편으로 의사들이 얻게 될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에 이 실장은 “심사기준을 먼저 개선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래서 분석심사는 심사기준을 벗어나도 일단 그냥 놔두고 의학적 타당성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원래 가장 많은 급여기준 항목 개선 요청이 있었던 공급자단체가 의협으로 우선 30개 항목을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의정 대화가 단절되면서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의사들의 이익에 대해서는 “심사가 잘 이루어져 의료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의료기관들을 의학적 기준으로 제대로 심사해서 바로잡자는 게 이번 심사체계 개편의 골자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심사체계 개편을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최고위 과정생은 “그동안 행위별 심사에 맞춰 오랫동안 진료해 왔는데 이번 개편안은 이런 프레임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장성 강화정책을 발표한 지도 얼마 안돼, 이번엔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심사체계 개편을 시행한다니 일선 현장에 있는 의료인 입장에선 너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강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됐지만, 강연이 끝날 무렵엔 덕담이 오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조문숙 노원구의사회장은 “이영아 실장이 너무 설명을 자세히 (잘) 해줬다”며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오늘 강의만 들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 “당장 비용 효과성 위주의 건별 심사 삭감이 없어지는 것만 해도 상당한 진전이며, 우리가 봐도 정말 형편없다고 판단되는 극소수의 의료기관은 앞으로 제대로 파악,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서울시의사회에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그동안 심사체계 개편에 대해 의협이 거부함에 따라 우리가 사전 정보를 얻기 힘들어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서울시의사회가 오늘 강의 참석을 적극적으로 독려해 좋은 강의를 듣는 유익한 기회가 됐다”며 “앞으로 의협도 심사체계 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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