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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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준기
  • 승인 2019.07.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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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111)
정 준 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정 준 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미국에 사는 의과대학 동기생 A가 자기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 가셨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나에게는 A 어머니가 각별한 분이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생 시절 매년 3-4개월씩 그 집에 머물면서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A와 나는 본래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나보다 1년 먼저 의예과에 들어 온 선배였다. 의예과를 마치고 어떤 사정으로 일년을 쉰 뒤 본과부터는 같은 클라스 메이트가 되었다. 아시다시피 의대 공부는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예사롭지가 않아 보통 혼자보다는 몇 명이 그룹이 되어 공부를 한다. 내 고교 선배들과 어울리고 다녀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던 그가 나에게 색다른 제안을 해왔다. 쿼터 시험 두 달 전에 학교 근처에 있는 자기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함께 하자고. 집이 멀어 학교에서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 동의하였다.

A와 나는 공부하는 방법이 아주 달랐다. 나는 정통파(?)로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정독하고 중요한 내용은 색깔이 있는 볼펜으로 표시를 하고 또 종이에 써 보면서 암기를 했다. 그는 책상을 나에게 양보하고 아랫목에 비스듬히 누워 소설책을 보듯이 교과서를 읽었다.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다음날 아침에 내용을 정리해 보면, 나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또 암기하고 있었다. 노력형인 나는 더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를 했고 이 것이 그에게는 자극이 되고 공부의 진도를 맞추는 효과도 있어, 서로 도움이 되었다.

같은 의대생이지만 학업의 기초 실력에 차이가 있었다. A는 그 당시 가장 좋은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의예과도 2등으로 들어 온 수재였다. 나는 사립 중고등학교를 졸업 후 평범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온 ‘보통 학생’이었다. 지능지수도 155으로 최상급인 그는 부러워하는 나에게 이 좋은 유전자가 외갓집에서 온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외삼촌과 이모들이 모두 경기 또는 경기여자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출신인 ‘*KS 마크’라는 것이다.

그러나 ‘KS 마크’를 달았다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외삼촌 중 한 분이 역시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와 장래가 유망한 군법무관이 되었다. 그러나 장교 숙소에서 새어 나온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뇌가 크게 손상되고 화상까지 생겨 정신이 총명하지 못하고 거동도 불편하게 되었다. 결혼을 약속한 처녀가 있었지만 부모의 강요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나중에 자식을 결혼시키고 남편이 죽은 뒤에 50여 년만에 외삼촌을 찾아왔단다! 홀로 가난하게 지내던 외삼촌을 잘 봉양하면서 재미나게 5년을 살고 외삼촌이 돌아 가셨다.

하여튼, 내 생각에 A의 어머니는 가장 바람직한 주부의 심볼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쳤지만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 대학교도 다니고 현모양처로 생활하면서 예술적 소양까지 갖추었다. 서울 종로구 한복판 큰 기와집에서 살고, 개성 출신답게 보쌈김치, 조랭이 떡국을 맛있게 만들고, 고추장을 바른 두부무침은 어머니의 별미 레시피였다. 청소년 시절에는 한 동네에 살던 박완서 소설가와 문학 수업을 같이 하였으나 6.25 전쟁 통에 그녀의 뜻을 펴지 못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이지만 지적이었고 예술을 즐기는 문화인이었다. 따분한 의학 공부에 지친 우리들에게 비틀즈 리더였던 존 레논의 ‘Imagine’을 피아노를 치면서 불러 주신 적도 있다.

졸업 후 우리는 헤어져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고 서울국군병원에서 근무하고 마침내 모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졸업하고 바로 군의관이 되어 의무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 갔다. 수련을 받으면서 점차 능력을 발휘해 캘리포니아 소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우리 대학 옆에 계속 살던 A의 가족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나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아들 부부가 곁에 없어 적적한 어머니는 가끔 우리 집 사람과 고부처럼 전화통화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도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하다가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 만 들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 만 해도 아주 가까운 사이다.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 또 영겁의 시간 속에서 같은 곳, 같은 시각에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니!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500번 윤회를 같이 해야 이루어지는 관계라고 했다. 여기까지 글을 적다 보니, A어머니는 나와 더욱 특별한 이유 관계가 있어, 학생 시절 그 수많은 숙식(宿食) 공덕으로 내가 의사가 되는데 일조하신 분이겠다. 단지 우리 인간의 한계로 그 신비하고 복잡한 기전을 파악하지 못할 뿐이다. 연기론에 의하면 과거의 원인으로 지금의 일이 생기고, 또 현재의 생각과 행동으로 미래 어떤 일이 발생한다. 같은 과거 인연이라도 우리의 주체적 이성과 감성으로 다른 미래를 만들게 된다. 우리가 적극 노력하면 인연도 더 발전하고 깊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외삼촌의 여자 분은 일생의 악연을 능동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좋은 인연으로 바꾸었고, 나는 A어머니와 좋은 인연을 소극적으로 일관하다가 이어가지 못한 셈이 되었다.

뒤늦게지만 내 존재 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음덕을 깨닫고, 연기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를 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영원한 명복을 빕니다.

*KS 마크1962년부터 정부에서 각 분야에서 성능이 우수한 농공업 제품을 선정해 KS(Korean Standard)라고 인증하는 제도로 일종의 품질보증서. 경기(Kyunggi)중고등학교와 서울(Seoul)대학교 출신을 품질이 보증된 우수한 인재라는 의미로 KS 마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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