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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의 역사
단식의 역사
  • 전성훈
  • 승인 2019.07.15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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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44)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인간과 다른 동물이 구별되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로서 인간은 단식(斷食)을 한다. 자발적으로 영양 섭취를 중단한다는 의미의 단식은, 비자발적인 영양 섭취 중단(이른바 금식, 예를 들어 의료진의 지시에 의한 금식)과 구별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코끼리가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코끼리 무덤에 가서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는 ‘코끼리 무덤’ 전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하며, 동물은 번식을 위한 필요성이 있는 정도가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도 단식을 하지 않는다. 단식은 동물로서의 자기보존 본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이고, 동시에 자연은 단식으로 허약해진 동물을 포식자가 배려할 만큼 자비로운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동물에게 단식과 죽음은 동의어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역사에서 단식은 자주 있었다. 의료적으로, 의료적 지식이 부족하던 몇 천 년 전부터도 사람들은 소화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오랜 경험에 따라 단식을 하였다. 종교적으로,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와 같은 세계종교에서부터 유대교와 같은 민족종교까지 많은 종교에 단식 계율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종교적 단식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현대인들보다 덜 종교적이거나 표리부동한 사람들이어서라기보다는, 항상 식량부족에 시달리면서도 현대보다 고되고 노동강도가 높았던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항상 운동부족과 영양과잉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도 두 끼를 굶기가 어렵지 않은가.

가장 목표지향적으로 실행되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식은 역시 정치적 단식이다. 이는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벌이는 인질극이며, 자신의 주장을 공적으로 표출하거나 그에 대한 대중의 주의를 환기할 방법이 별로 없을 때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쟁방식 중 하나이다. 단식 기간이 길어질수록 단식자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정치적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리고 정치적 긴장감의 최고조에서 극적인 타협이나 양보가 이뤄지기도 한다.

정치적 단식은 음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이 행할 경우에만 그 파급력이 있다. 그래서 과거 정치적 단식은 왕족(예를 들어, 식음을 전폐한 대비마마)이나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녹색혁명으로 인간이 만성적 식량부족에서 벗어난 현대에 들어와서는 만인의 투쟁방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유명한 정치적 단식으로는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 독립을 전후하여 행하였던 단식들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간의 단식,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의 46일간의 단식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정치적 단식은 1981년 북아일랜드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23명의 아일랜드 재통일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양심수(정치범)로 대우할 것을 요구하면서 벌인 ‘아일랜드 단식투쟁’일 것이다.

아일랜드 단식투쟁은 정치적 사건이었지만 이는 의학계에 소중한 case study를 제공하였는데, 이 사례를 통하여 의학계는 인간이 단식이 가능한 시한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단식투쟁에서 단식을 직접 사인으로 하여 사망한 10명은 단식 후 55~75일 사이에 사망하였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의학계는 단식의 정의를 ‘단식 후 공복통이 사라지는 72시간부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72일까지’로 정의하게 되었다(이른바 72-72법칙). 단식 후 72시간을 단식의 첫날로 정의하는 이유는, 이 시점이 되어야 체내에 저장된 모든 당이 소모되고 혈중 케톤체가 증가하여 소변 중에 생성.축적되는 케톤증에 빠지기 때문이다.

보통 단식 후 35~42일이 지나면 Ocular motility phase(안구운동국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가 되면 안구운동에 관여하는 근육이 마비되어 안구운동에 장애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안구진탕, 복시, 어지럼증, 내사시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단식자들은 이 시기에 가장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 누구나 ‘눈앞이 가물가물하면’ 이제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지난 2일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국민은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선언하고 의료개혁을 외치며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처음에는 ‘무엇을 위한 단식이냐’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수많은 의료인과 의료단체의 지지방문으로 증명되었듯이 그 진정성과 투쟁의 당위성에 대하여 의료계 내부의 상당한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단식의 부작용은 의사라고 하여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단식 8일째인 지난 9일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후송되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상근부회장을 필두로 무기한 연대 단식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단식투쟁에서 여당 국회의원, 국회 차기 보건복지위원장, 보건복지부 차관 등의 연속적인 방문을 통하여 ‘왜 13만 의사의 수장이 극단적인 투쟁방법을 택해야만 하였는지’에 대한 일정한 문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 인식과 문제 해결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심지어 그 간극이 가까운 경우는 드물다. 과연 이 단식투쟁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추이를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아일랜드 단식투쟁에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당시 영국 수상인 ‘철의 여인’ 대처는 원칙론을 앞세워 ‘양보도 타협도 없다’라는 초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였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대중의 주의를 환기할 방법이 없는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는 단식투쟁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최고 전문가단체의 수장이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뒤로 하고, 더 이상 대한민국 의료에서 ‘철의 여인’만은 없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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