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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돌보던 의사 쓰러져 본인도 중환자 신세
중환자 돌보던 의사 쓰러져 본인도 중환자 신세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7.12 18: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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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대 박소영 교수, 동료 의사 사연 중환자의학회 뉴스레터로 전해
이제 중환자 의사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 고민해야

중환자들을 돌보다 도리어 본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가 되어버린 젊은 의사의 사연이 안타까움과 동시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대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박소영 교수(사진, 호흡기내과)는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다가 1년 전 쓰러진 동료 의사 A씨의 사연을 글로 풀어낸 ‘중환자실 의사의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을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원들에게 뉴스레터로 보낼 예정이다.

A씨는 안타깝게도 1년 전 쓰러져 현재까지도 식물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만성적인 감정적 스트레스와 일로 대인관계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느껴 결국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버리는 ‘번아웃증후군’은 누구보다 밤샘 당직을 서는 의사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1년 전 한 모임에서 첫 번째 강의 연자로 나서 열변을 토하던 A씨였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더 힘들어 보였다. 그게 A씨가 강단에 선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며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우리는 과다한 업무와 정신적 압박감으로 존중과 품위를 잃고 고통받고 있다. 이제는 중환자실 의사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가 쓴 뉴스레터 초안을 검토한 홍성진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본지에 글 본문을 전하며 “열정과 신념이라는 허울에 속아 자신의 생명이 갉아 먹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젊은 의사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이 울컥했다”며 “이 글을 학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소영 교수의 ‘중환자실 의사의 번아웃증후군’ 뉴스레터 전문.

중환자실 의사의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
                                                  이화의대 호흡기내과 박소영

온통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던 어느 일요일, 작은 모임이 있었고, 나는 조금 늦게 강의 장소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똑같이, 항상 열심히 일하던 나의 동료는 열변을 토하면서 첫 번째 강의를 하고 있었다. “헬멧형 마스크”에서 leak를 줄이려면 목을 더 조여야 하는데, 목을 조이게 되면 환자가 더 불편해하면서 숨을 더 못 쉬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더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일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던 그의 셔츠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강의를 하는구나. 어제 당직을 섰나? 오늘 유난히 힘들어 보이네.’ 하고 생각을 했다. 강의를 끝낸 그는 나와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것이 강단에 서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누구보다도 열정을 가지고, 정직한 마음으로 환자를 위해 애를 쓰던 그는 자신이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일을 하던 중환자실에 의사가 아닌 환자로 누워있다. 마음이 아프다는 흔한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나의 동료도, 대한민국의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의료인의 상황도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번아웃(burn out)의 사전적 의미는 ▲에너지를 소진하다 ▲다 타다 ▲가열되어 고장이 나다 등으로 번아웃증후군은 일에서 느끼는 만성적인 감정적 스트레스 및 일로 인한 대인관계 자체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으로 정의할 수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1974년 Freudenberger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Maslach와 Jackson이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전에 없었던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적 혐오나 냉소 및 전에 없었던 극복하기 어려운 현재 일에 대한 심리적 이탈감이나 내적 거리감(depersonalization), 업무 효율성 상실(lack of personal and professional completion)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 WHO에서도 번아웃 증후군을 제 11차 국제질병표준 분류기준에서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정의한 ‘번아웃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분류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번아웃증후군이라는 말이 있기 전에 산업 재해의 한 종류로, 근로자가 일을 지나치게 하거나 무리해서 그 피로로 갑자기 사망하는 과로사(過勞死)라는 단어를 좀 더 친숙하게 사용했었다.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과로사’란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의학적으로 정의된 용어가 아니며,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관용어로 일반적인 개념은 ‘과로로 인해 생체리듬이 깨져 생명유지 기능이 파괴된 치명적인 극한 상태’를 말한다. 1969년 일본의 29세 신문발송부의 사원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돌연사라고 부르며 업무와 관련된 사망이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5년 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를 최초의 과로사 사례로 보고 있다. 영어도 '일하다가 죽다'를 뜻하는 동사 to work oneself to death가 있기는 하지만 명사화된 낱말은 따로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과로사가 많아지자 일본어 "Karoshi"를 그대로 쓴다. 일본어의 과로사가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일본에서의 특이한 현상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Karoshi라는 표현은 영어 사전 및 다른 언어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의 봉건적인 노동 상황을 상징하는 단어로 인식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도에 처음으로 신문에 과로사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93년 5월에서야 노동부의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질병인정기준에 처음으로 업무상 과부하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93년 10월에 전문가 단체인 노동과 건강연구회 부설 ‘과로사 상담센터’가 생겨 상담활동을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과로사보다 번아웃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높아졌다. 소방대원, 경찰, 교사 등 여러 직군에서 경험하고 있으며 매우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의료인은 번아웃증후군을 경험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최근 한 연구에서는 50% 이상이 번아웃증후군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번아웃증후군은 개개인의 이상과 기대가 직장에서 원하는 역할과 차이를 보일 때 시작되기 때문에 번아웃증후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 보이지 않던 증상이 발생되는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의 증상은 안절부절하고, 화가 나고, 직장에 환멸을 느끼고, 희망을 잃게 되고, 일에 능률이 떨어지는 정서적인 것에서부터 실제로 불면, 근육통, 두통, 소화불량과 같은 신체적 증상까지 포함된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경우 회복이 매우 어려운 환자를 지속적으로 진료하기 때문에 정서적 고갈이 오기 쉽고, 환자의 죽음이나 수많은 의학적 문제를 오랜 시간 동안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동료나 환자에게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아성취감이 매우 떨어져 이른 나이에 일을 그만두거나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는 경우도 생긴다. 22개의 질문으로 구성된 Maslach Burnout Inventory(MBI)가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하는 가장 흔한 도구이다. MBI 스코어는 감정의 고갈, 심리적 이탈감, 업무 효율의 상실 등 세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으나 중환자실의 의료진에서 번아웃증후군을 진단할 만한 정확한 cut off value는 아직 없다.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번아웃증후군과 동반될 수 있는 것이 moral distress(도덕적 고뇌)이다. 이는 환자에게 시행되는 부적절한 치료에 대한 고민, 의료진 간의 갈등, 의료비에 대한 고민, 법적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한 개인의 moral distress(도덕적 고뇌)와 관련되어 의료인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할 수도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최소 2주 동안 우울감이나 의욕 상실이 지속되면, 체중 감소, 불면증이나 과다 수면, 심신 불안이나 무기력, 피로, 자존감 상실이나 죄책감, 사고력 저하나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같은 증상들이 최소 2가지 이상 나타나는 주요 우울장애와는 구별이 된다. 그러나 최근 320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중증 번아웃 증세를 보인 노동자의 40%가 중증 우울증을 동시에 앓는 것으로 나타났고, 번아웃증후군을 앓는 직장인이 우울증을 앓게 될 위험도 그렇지 않은 직장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확률을 보였다. 번아웃증후군은 개인적인 특성, 일하고 있는 병원(조직)의 특성, 병원(조직)의 구성원들 간의 관계, 그리고 end of life care에 얼마나 자주 직면하는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Figure1). 자기 비판적이고, 남들에게 도움을 잘 요청하지 않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 완벽주의자에서 번아웃증후군이 발생할 확률이 많다고 보고되었다. 번아웃증후군은 한때 경력이 오래된 의료인에게서 많이 올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최근 연구에서는 젊은 의료인의 경우 2배 이상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업무량이 너무 많고, 환경을 개선하기 어렵고, 보상이 작은 집단이 위험인자이며 특히 밤샘 당직을 서야 하는 의사에게서 번아웃증후군이 더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번아웃증후군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고, 노동 시간을 적절하게 줄이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명상을 하고 취미 생활과 가족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이러한 권고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당직을 서고 36시간째.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지 했는데, 이제 막 응급실에서 올라온 환자의 CPR이 났다. 그리고 그날은 자정을 넘겼다. 중환자실에서 나의 온 힘을 다해 사는 삶, 내가 원하던 삶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는 인간이 아니고,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부속품 같은 생각이 들었다. Simone Adolphine Weil 이라는 철학자는 “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었다. 거의 그랬다. 매일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일어나 두려움에 차서 공장으로 갔고, 노예처럼 일했다. 일요일이면 그 다음날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에 항상 짓눌렸다.”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왜 나의 삶이 그녀의 삶과 겹쳐지는 것인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누군가를 죽음에서 삶으로 끌어들이는 것,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도록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 혹은 누군가의 죽음이 가능한한 인간다운 존엄한 것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등 이러한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중환자실 의사가 되었는데, 어느 날 나는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나 자신의 삶을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순간을 넘기기에도 벅차서 중환자실의사가 되려던 그 때의 소망을 송두리째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한 존재라는 생각은 칸트의 시대부터 시작되어왔지만, 지금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우리는 과다한 업무와 수많은 정신적 압박감으로 인한 존중과 품위를 잃고 고통을 받는 모멸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환자실 의사의 번아웃증후군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제는 중환자실 의사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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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X 2019-07-18 11: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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