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상 랑베르를 아십니까
뱅상 랑베르를 아십니까
  • 전성훈
  • 승인 2019.07.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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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43)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 절대명제이다. 동물로써의 생존본능에 기초한 무의식적인 관념을, 계몽과 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존엄성’으로 격상시켰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현재까지 이견 없이 지지되고 있다.

법은 사회적 합의의 총체이므로, 당연히 법 역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기초한 내용들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스스로 침해하는 자살과 자살미수는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자살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자살을 결의하게 하는 자살교사와, 자살을 결의한 사람의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자살방조 역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법은 자살교사와 자살방조를 중하게 처벌한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절대명제에 따라, 의료인의 중환자에 대한 임의적 치료 중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환자 본인이 살고 싶지 않은데도 의료인은 이를 막아야만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죽는 게 낫다’라는 말이 비유적 표현이 아닌 진지한 고민의 결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존엄사’라는 주제는 윤리와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 되고, 항상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2008년 프랑스에서 31세의 남자 간호사가 오토바이로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뇌에 회복불가능한 상해를 입고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식물인간’이 된다. 그때부터 이 남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유럽 전체에서 존엄사에 관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뱅상 랑베르. 그는 이후부터 한 가닥 튜브로 코를 통해 공급되는 음식물과 물로 생명을 유지하여 왔다.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 아니던가. 그의 상태는 5년간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2013년 이 남성이 입원해 있던 랭스 대학병원 의료진은 그의 부인 라셸 랑베르와 논의하여 치료중단을 결정한다. 치료중단은 튜브를 통한 음식물과 물의 공급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였고, 이는 동시에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의 부모는 즉각 반발했다. 즉시 행정법원에 병원측을 제소했고, 승소했다. 승소의 주된 이유는 병원측이 그의 부인 외에 부모형제와의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패소 직후 병원측은 그의 가족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이를 근거로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2014년 그에게 음식물과 물의 공급을 중단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유럽인권법원에 법적 판단을 청구하였다. 치료중단이 인권문제에 해당된다면 유럽인권법원이 판단할 수 있고,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은 유럽인권협약에 따라 프랑스 내에서 그대로 수용될 것이기에, 그의 부모는 프랑스 법원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권법원 또한 2015년 병원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주된 이유는 ‘인위적인 목숨 연장이 적절치 못한 치료, 즉 ‘치료집착(therapeutic obstinacy)’에 해당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후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 유엔장애인권익위원회 등 여러 기관을 거치면서 (그의 부모의 희망대로) 재판은 장기화되었고 그를 둘러싼 논쟁은 가열되었다.

그의 치료중단을 주장하는 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지금의 치료연장이 환자에 대한 ‘치료학대(therapeutic harrassment)’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05년 제정된 프랑스의 클레이-레오네티 법(일명 깊은잠법)은 “비이성적 고집으로 인한 의학적 치료의 연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또한 “의학적 치료가 무용하거나 부적절하거나 인위적 생명연장 외에 다른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때 치료를 미루거나 중단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가끔 눈을 뜨기는 하지만 자극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는 랑베르의 사례는 명백히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중단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치료비 문제, 그의 부인이 겪고 있는 고통 등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는 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주된 논거는 바로 랑베르가 평소 원했던 바대로(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에게 ‘존엄한 죽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치료중단을 반대하는 측의 입장 역시 분명하다. 랑베르의 경우 흔히 말하는 존엄사와는 다르며, 그는 지금 연명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고 단지 영양만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이다. 즉 단지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상태에 있는 장애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불치병이나 퇴행성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저 의식이 마비된 의식장애 상태에 있다고 한다. 스스로 호흡을 하고 심장도 스스로 잘 작동하고 있으며,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이 든다고 한다. 스스로 침을 삼키고 있지만, 다만 음식을 스스로 먹지 못하는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그가 지금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2019년에는 프랑스 서부 지역에서 한 여성이 27년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기적’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레오네띠 법에 따라 치료학대의 금지를 선언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랑베르에게 ‘존엄한 죽음’을 허용하려면 음식물과 물 공급 튜브를 제거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즉 의식이 있는 사람을 굶겨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많은 프랑스인들의 정서적 거부감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논쟁 끝에, 프랑스 대법원은 2019년 6월 28일 항소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랑베르로부터 음식물과 물 공급 튜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제 그는 존엄하게 굶어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의사 역시 그러한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동물로서의 삶으로 복귀가 불가능한 식물과 같은 삶을 강요받더라도 인간의 생명은 존엄한 것인가? 프랑스인 랑베르는, 생명과 현세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한국인들에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고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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