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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소나타 제2번 Bb단조 작품번호 35(장송 행진곡)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소나타 제2번 Bb단조 작품번호 35(장송 행진곡)
  • 오재원
  • 승인 2019.07.08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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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477)

■ 어둡고 절망적인 색채로 그려진 호소력이 강한 장송 소나타
40년이란 짧은 생을 통해 쇼팽은 거의 피아노 작품만 썼고 피아노의 기능을 최대한 살려 서정적 시를 읊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지만 정작 피아노 독주를 위한 소나타는 단 3곡만을 남기고 있다. 피아노소나타 제1번 c단조 작품번호 4는 열여덟 살 때 쓴 작품으로 은사인 엘스너에게 헌정되었으나 독창성이 없어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반면 피아노소나타 제2번과 피아노소나타 제3번 두 곡 모두 원숙기에 쓰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 마르조카 섬에서 요양생활을 마치고 노앙에 있는 집에서 조르주 상드의 위안을 받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는 속에 얻어진 산물이다.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난 이 작품은 발표 당시부터 비난과 환영이 엇갈린 평가로 말썽이 많았지만 지금은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가진 가운데 피아노적인 어법 그대로 살린 수작이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쇼팽의 시와 환상과 정열로 채워진 이 곡은 그야말로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이고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는 그보다 6년 연상인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인이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헤어진 채 두 아이를 데리고 1831년 파리로 들어온다. 이듬해 조르주 상드라는 필명으로 처녀작 ‘앵디아나(Indiana)’라는 소설을 써서 데뷔하자마자 대히트를 치면서 단숨에 당대 최고 인기작가로 부상하였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영국의 찰스 디킨스보다 인기가 높아 불어로 쓴 소설을 영어로도 번역돼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즈음 1830년 11월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에 체류하던 쇼팽은 1831년 9월 파리에 들어왔지만 아직 무명이어서 고생이 극심하였다. 이듬해 2월 피아노 회사 플레엘이 만든 콘서트홀에서 개최한 데뷔연주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그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836년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에서 이루어졌다. 남장을 하고 시가를 피우는 유명 여성 작가에게 처음엔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내 서로의 강렬한 개성에 이끌렸다. 그 후 1838년 가을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두 사람은 상드의 두 아이들과 함께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거여건이 좋지 못한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생활하다 우기에 건강을 크게 상하게 되자 마요르카 섬을 떠난다. 그들은 상드의 고향인 프랑스 중부 노앙에서 1846년까지 지내게 된다. 이 시절 그들은 매우 행복하였다.

상드는 매우 헌신적이었고 쇼팽에게 행복과 영감을 줬던 어머니 같은 연인이었다. 상드와 함께한 그는 마요르카에서 24곡의 전주곡을, 노앙 시절에는 피아노소나타 제2번과 피아노소나타 제3번을 비롯한 많은 곡들을 완성하였다. 이 두 곡 피아노소나타 중에서는 제3번을 음악적으로 더 원숙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피아노소나타 제2번은 형식적 완성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절망적인 색채감과 무겁고 어두운 리듬이 두드러져 감성적인 호소력이 더 큰 작품이다. 특히 제3악장 ‘장송 행진곡’이 유명한데 그는 1837년에 이미 이 악장을 작곡한 뒤 2년 후 피아노소나타 제2번에 포함시켰다.

△제1악장 Grave - Doppio movimento 신음하는 듯 무거운 네 마디의 서주에 이어 과격한 저음부의 빠른 반주 위에 제1주제가 제시된다. 불안한 가운데 거칠어지고 과격해진다. 이어서 애절하고 서정적인 제2주제가 잠시 나타난 후 다시 열정적인 제1주제를 회상하면서 끝난다.

△제2악장 Scherzo 격렬한 공포의 분위기마저 느끼게 한다. 마치 먹구름이 감돌고 뇌성이 울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듯 끊어 치는 리듬으로 연속악구가 이어지고 트리오에서 마치 천사의 음성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운 주제로 된 감미로운 부분이 나타난다. 이후 다시 스케르초와 함께 마지막 코다에서 중간부에 등장했던 우아한 선율이 다시 나타나면서 긴 여운을 남기고 끝을 맺는다.

△제3악장 Marche funebre: Lento 잃어버린 폴란드의 조국을 애도하는 듯하다. 조종과 같은 저음위에 장송행렬의 무거운 발걸음을 묘사하듯 정중한 행진곡 주제가 나타난다. 마치 장송의 행렬이 서서히 걸음을 떼는 분위기로 무겁고 장엄하면서도 비애감이 느껴진다. 장송의 발걸음이 점차 크고 무거워지다가 중간부에 아름답고 애수 어린 선율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제4악장 Finale: Presto 황량한 폐허의 고독감을 주는 그로테스크한 셋잇단음표를 양손으로 계속 연주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선율을 펼치고 마지막엔 강렬한 포르티시모로 마무리한다. 슈만은 이 악장을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조롱에 가깝다. 이 비선율적인 즐거움도 없는 악장에서 반항하려는 혼을 힘센 손으로 누르는 어떤 무서운 혼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우리는 마치 매혹되듯 불평과 칭찬을 할 수 없는 애매한 입장에서 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평하였고, 평론가 크라크는 “가을바람이 새로운 묘지 위에 나뭇잎을 뿌리고 있다”라고 표현을 하였다.

■ 들을 만한 음반
△마우리치오 폴로니(피아노)(DG, 1984)△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DG, 1974)△블라디미르 호로비츠(피아노)(CBS, 1962)△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RCA, 1961)△샹송 프랑수아(피아노)(EMI, 1964)△에브게니 키신(피아노)(RCA,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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