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늙음과 호르몬
여성의 늙음과 호르몬
  • 유형준
  • 승인 2019.07.01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늙음 오디세이아(79)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늙음에 따른 실생활 속의 불편들을 하나의 생리적 자연노화현상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미흡한 지경이 늘고 있다. 강연이나 강의 중에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하고, 우울과 같은 정서적 변화가 대인 관계를 건조시키기도 한다. 여성의 내분비적 특성이 늙음에 적응해야하는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들과 한데 엉켜 나타나는 여성만의 독특한 늙음의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난소가 뇌하수체의 자극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난소 안에서 난자를 내고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과 같은 여성호르몬을 분비하는 난포 세포가 노화되면서 난자 생성이 안 되고 여성호르몬농도가 감소한다. 이에 따라서 생식기, 질, 자궁에 퇴행성변화가 온다. 폐경이다. 폐경은 여성호르몬을 단기간에 감소시킨다. 폐경기후증후군은 말 그대로 폐경기가 오고 나서 발생하는 여러 증상들의 집합체이다. 에스트로겐으로 대표되는 여성호르몬의 결핍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증상들을 통틀어 이르는 것이다. 흔히 얼굴이 화끈대고, 땀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면증, 신경질, 불안 등등으로 그 증상은 많고 다양하다.

안면홍조 등의 증상은 대부분 폐경 후 이년에서 사년 사이에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나 약 이삼십 퍼센트는 팔년 정도 계속된다. 증상이 가벼운 사람은 그런 대로 지내나 증상이 현저한 경우에는 불편이 대단하다. 자연현상이 튀어나온 것임을 알지만 활동에 제약을 받는 까닭에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주 심장병, 신경 정신과의 병으로 오인하여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는 것을 왕왕 본다. 폐경에 따른 골의 소실로 골다공증이 심해져 골절의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

폐경기후증후군의 불편한 증상들을 없애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투여한다. 에스트로겐을 쓰면 먼저 이른 혈관 운동 관련 증상, 비뇨기계 증상, 질위축, 골다공증 등이 개선되어 여성호르몬 결핍 증상들이 해소되고, 편해지고, 성과 연관된 문제들이 슬며시 줄어든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량의 에스트로겐을 투약하면 유방에 통증, 다리부종, 자궁경부의 점액대하(점액질 물질이 냉처럼 흘러나옴). 체중 증가, 자궁출혈이 올 수 있다.

장기간 복용 시 유방암, 자궁내막암, 혈전색전증, 에스트로겐 의존성 고혈압, 이상지혈증 등의 심각한 부작용들이 비전문적 투약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상기하면 대단히 주의할 일이다.

따라서 에스트로겐의 투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만일 적응이 되어 투약을 시작하더라도 에스트로겐만 투약하느냐 또한 얼마나 오래 쓰느냐 등을 의학적 지식과 경험으로 마음을 기울여 판단해야 부작용 없이 약물 치료를 할 수 있다. 더구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트로겐을 함께 투여하면 월경 출혈이 되돌아오는 수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지식과 설명이 요구된다. 노인의 월경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뜻밖의 상황일 수도 있음을 살펴야 한다. 호르몬 요법은 심리 정신적 상담과 지지, 혈압과 체중의 정기적 체크, 내진을 포함한 진찰, 정기적 자궁경부와 질 검사, 혈당과 지질 측정, 간기능 검사들을 요구한다. 무턱대고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은 안 그래도 자연적인 노화현상에 거슬러 치료를 하는 의학적 무리가 따르는 일인데 심지어 올바른 조언과 처방이 없이 오남용하는 것은 안 된다.

여성호르몬을 보충해주는 호르몬대체요법은 지난 이십여 년간 폐경 전후의 갱년기 증상의 호전을 위하여 시도되었다. 그 후 골다공증과 심혈관질환의 예방, 치료법으로 폐경후 여성들에게 널리 쓰이다가, 여성 호르몬 투여군에서 심혈관질환, 뇌졸중, 혈전질환과 유방암의 발생이 증가한다는 보고에 따라 적어도 심혈관질환의 일차예방 치료법으로서 여성호르몬 치료는 더 이상 추천 되지 않고 있다. 한편 여성호르몬 치료가 폐경기 증상을 호전시키고,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것 이외에 여성에서 인지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치매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아래, 대규모 임상 연구들이진행되고 있다. 좀 더 기다려 봐야한다.

여성호르몬은 치매와도 상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오십 세 이상의 폐경 여성에서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인지기능을 좋게 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뒤이은 연구들은 사용하는 에스트로겐의 종류, 투여기간, 복용 순응도, 신경정신학적 검사 방법 등에 따라 결과의 차이를 보여 인지기능 향상에 대한 일관된 경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에스트로겐 치료가 인지기능을 향상시키는지 또는 치매를 예방할 수 있겠는 지에 대한 해답은 대규모 임상 연구의 결과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이다.

문득 황인숙 시인의 ‘갱년기’란 제목의 시의 후반부가 떠오른다. ‘6호선 승차장 가까이서 / 열차 들어오는 소리! / 어느 새 내가 달리고 있다 / 누구 못잖게 서둘러 달리고 있다 // 이런, 이런, / 이런, 이런, / 건들거리던 내 마음 / 이렇듯 초조하다니 // 놓쳐버리자, 저 열차!’ - ‘갱년기’

황인숙 6호선은 나이를 상징한다. 늙음이 폐경의 모양으로 다가오더라도 느긋하겠다고 짐짓 ‘건들거려’ 보다가 막상 달려오는 지하철을 보자 혹시 놓칠세라 초조해진다. 늙음의 바로 앞에서 조급해지고, 조급함은 호르몬 농도를 청춘 시절로 돌려놓고 보자며 더 급해지고. 어느 누구도 그렇다. 그렇게 애타고 조마조마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시인은 초조를 탈출하는 꽤 현실적 비법을 문득 깨우친다. ‘놓쳐버리자, 저 청춘, 저 세월.’ 떠나고 흩어진 뒤에 그래도 남아있는 순리를 움켜쥐기도 버겁다. 어차피 떠나갈 청춘 세월은 ‘놓쳐버리자’. 늙음의 순리에 따른 현상임을 알아차리고, 차근차근 의술의 현재 형편을 제대로 살피는 건 꽤 슬기로운 비법이 확실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