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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삼킨 이야기
동전 삼킨 이야기
  • 정준기
  • 승인 2019.07.01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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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110)
정 준 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정 준 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우리 딸이 만 다섯 살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서울에 있는 국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지방에 학회가 있어 혼자 참석하고 집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에 가 있었다.

딸 아이는 무엇인가를 입에 물거나 빠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유아기 시절 몸을 덮던 포대기를 물고 있어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 다른 집에서 잘 때에는 가지고 다녀야 했다. 프로이드가 지적한 어릴 때 구강기(oral stage)에 생긴 정신적 complex 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어린아이에서 보통 볼 수 있는 행동 양식이었다.

그 날도 저녁식사 후 ‘10 원’짜리 구리 동전을 하나 입에 넣은 채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어 TV를 보고 있었단다(참고로 예전에는 십 원 동전이 지금 백 원짜리 동전 크기였다). 입 속에서 동전을 돌리며 놀던 딸애가 갑자기 동전을 삼켰다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등을 두드리고 토하게 했으나 동전은 안 나오고 아이도 꾸중이 두려운지 크게 불편해 하지 않았다. 연락을 받은 나는 바로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근처 병원에 가니 응급 환자로 만원이어서, 복부 x-ray 사진만 찍고 2 시간 동안 기다려서야 진찰을 받았단다. 복부 사진에 특별한 이상이 없고 십 원 동전을 먹었다는 아이는 멀쩡했다. 아이에게 자꾸 반복해 물으니 어떤 동전인지 헷갈려 하고, 나중에는 진짜 삼켰는지 조차 혼동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낮에 다시 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단다.

다음 날 서울에 온 나는 우리 병원 방사선과에서 복부 사진을 다시 찍혔으나 역시 이상 소견이 없었다. 아마도 조그마한 ‘1 원’짜리 동전을 삼켰고 이 경우 알루미늄이 주 성분이라 x-ray 사진에 안 보일 수도 있어서 몇 일 간 아이 대변에 나오나 잘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병원 현관을 나오다가 이비인후과 선배 군의관을 만났다. 작은 병원이라 이미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방사선 촬영 소견을 듣더니, 목 부위를 찍으라고 펄쩍 뛰었다. 10 원 동전이면 얼마던지 목에 걸릴 수 있다고.

목에 무엇인가 하얀 보름달처럼 걸려 있는 영상을 보는 순간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정확하게 십 원짜리 크기로 아이가 처음부터 말했던 도망자를 드디어 찾은 것이다. 의학 지식으로 동전이 식도 입구에 걸리면 좌우로 긴 식도 모양 때문에 앞에서 촬영한 x-선 사진에 ‘동그랗게’ 보인다. 참고로 전후로 긴 성대 위 기도에 걸리면 동전이 옆으로 서 있어 ‘일 자’로 보인다.

의논 끝에 대학 병원에 가서 내시경으로 동전을 빼내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Amazing Grace” 찬송가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 가사를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나는 하느님에게 원망 섞인 기도를 하였다. 나에게 왜 이런 날벼락이 떨어 졌냐고? 그러나 딸애를 낫게 해주시면 착하게 살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람은 자기가 필요하고 약해진 때만 하느님을 찾는다.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수석 전공의가 시술을 했다. 전신 마취는 안하고 진정만 시킨 후 입으로내시경을 넣고 여러 번 시도해 동전을 짚어 내었다. 시술 후 딸애의 호흡이 잠시 멈추어 몸에 자극을 주니 바로 회복되었다. 시술한 의사는 마치 자기가 숨이 막히는 느낌이라고 스트레스를 표현하였다. 후배가 되는 그에게 여러 번 치하를 하고 고마워서 음료수 box를 응급실 식구들에게 돌린 후 딸애와 함께 귀가하였다. 운이 좋아 일이 잘 되었다고 가족들이 사건의 매 순간을 되새기면서 함께 위로하고 기뻐했다. 하느님은 다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일 동전을 못 찾고 지나다가 나중에 발견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동전이 식도 조직과 달라 붙고 음식물이 엉겨서 내시경 시술을 못할 수도 있겠다. 이 경우 바깥에서 피부를 열고 수술을 해야 한다. 치료 후 식도와 상처가 잘 아문다는 보장도 없다. 목에 생긴 상처는? 또 아이가 받는 고생과 정신적 후유증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여기서 나는 환자 진료에 요긴한 몇 가지를 배우고 실감하였다. 우선 정확한 병력 확인이다. 처음에 딸애가 제대로 이야기 했지만 크게 거북해 하지 않고 배속 사진에서 못 찼으니 동전을 삼키지 않은 쪽으로 유도한 것이다. 방사선 사진의 소견을 설명하기 위해 동전을 삼켜도 ‘1 원’짜리 동전일 거라고 엉뚱한 추측도 했다. 모두 내 쪽 잘못이나 오류는 없다는 전제하에 아전인수격 추론의 결과이다. 여기에 큰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객관적 판단을 못한 것도 있다. 또 진단과 치료에서 의견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전문가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 보아야 한다.

35년 전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의학에 대한 의료인의 진정성과 철저함이다. 의사의 지식과 능력에 따라 생명이 좌우되는 전쟁터에서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행동해야 하겠는가? 능력이 못 미치는 경우에도 최선을 다한 후 하느님 은총을 기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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