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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Sz.116 BB.123
벨라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Sz.116 BB.123
  • 오재원
  • 승인 2019.07.01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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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476)

■ 관현악의 패러다임을 뒤집어엎는 혁신적인 협주곡
버르토크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 첫 번째로 귀를 기울여야할 작품이다. 어쩌면 그의 유일한 교향곡으로 이 곡을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말년의 그는 지인들에게 교향곡을 써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곡은 도입부, 쌍의 놀이, 비가, 중단된 간주곡, 그리고 종곡의 5개 악장으로 교향곡과 같이 긴밀하게 구성된 작품이지만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기량을 고려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악기가 독주 악기로 사용되었고 협주곡풍으로 처리함으로써 신비적인 도입부부터 마지막 고조되는 부분까지 숨 막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1940년 버르토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 휩싸인 고국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몇몇 미국의 음악애호가들이 그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정작 미국에 도착했을 때 미국 사회는 그를 매정하게 대하자 생계를 강의로 이어야 했다. 그의 재능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와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는 그를 간접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기도 하였다. 드디어 1943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인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로부터 관현악곡 의뢰를 받게 된다. 당시 그는 백혈병을 앓고 투병 중이었음에도 단 7주 만에 현대 관현악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을 완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관현악의 패러다임을 뒤집어엎는 새로운 작품으로 악기가 오케스트라의 부속품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능동적인 일원인 것이다. 개개의 악기들은 자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오케스트라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협주곡이 탄생한 것이다.

1944년 12월 쿠세비츠키에 의해 초연된 이 작품은 삽시간에 미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는 하룻밤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작곡가가 되었다. 작곡 요청이 쇄도했고, 병중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며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와 피아노협주곡 제3번, 비올라협주곡, 현악사중주 제7번 등의 작곡을 착수했지만 이중 완성된 것은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뿐이었다. 피아노협주곡 제3번은 마지막 17마디를 완성하지 못했고, 비올라협주곡은 스케치를, 현악사중주 제7번은 몇몇 메모만을 남겼을 뿐이다. 고통을 인내한 끝에 얼마간의 보상을 받기는 했어도 그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는 1945년 9월 뉴욕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버르토크의 생애와 음악’을 집필한 헐시 스티븐스는 이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만약 창조자가 통렬한 그 무엇을 가능한 진지하게 말할 경우 현미경적 해부는 무의미하다.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걸작이며 금세기에 배출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는 그 선율이나 화성들의 독창성이나 처리 기법의 참신함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들이 폭 넓고 중요하며 더할 나위 없는 논리와 확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작품들로서 너무나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어떤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버르토크는 이와 같은 필연성을 현악사중주 제4번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서 마지막으로 획득했다.”

△제1악장 Introduzione: Andante non troppo-Allegro vivace 무겁고 어두운 서주를 지나 트럼펫의 억제된 코랄 선율을 선보이며 서서히 고조되다가 마침내 제1주제가 솟구치듯 등장한다. 서정적인 제2주제가 오보에로 제시된 후 다시 어둡고 차분하게 연주되다 힘찬 푸가토로 발전하면서 치열한 빛을 발산한다. △제2악장 Giuoco delle coppie: Allegretto scherzando 작은북의 리듬연주로 시작하면서 관악기들이 두 개씩 쌍을 이루며 연주를 하는 흥미로운 ‘쌍의 놀이’ 장면이 연출되다가 마지막엔 전체가 하나의 화음을 연주하면서 마무리한다. △제3악장 Elegia: Andante non troppo 버르토크 특유의 어둡고 정밀하며 드라마틱한 야상곡풍으로 그는 이 악장을 ‘우울한 장송곡’이라 불렀다. 오보에 등 다채로운 악기들이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면서 마지막에 파를란도 루바토의 민요선율이 등장한다. △제4악장 Intermezzo interrotto: Allegretto 서정적인 민요풍의 주부와 클라리넷의 익살스런 선율이 경쾌하게 나온다. 이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의 ‘침공의 주제’와 유사하다. 이 주제는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에서 따온 것으로 히틀러가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버르토크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망명의 원인제공자 히틀러에 대한 야유가 담겨져 있다. △제5악장 Finale: Presto 자신의 음악적 원천인 헝가리 루마니아의 민요에 대한 애정을 음악에너지로 승화시켰다. 4대의 호른의 힘찬 팡파르로 출발하여 현란한 패시지에 이어 고조되는 흐름 등 극적 장면 등들이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막을 내린다.

■들을 만한 음반
△게오르규 솔티(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80)△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RCA, 1955)△안탈 도라티(지휘), 헝가리 국립 오케스트라(Hungaroton, 1980)△피에르 블레즈(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DG,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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