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전주곡)작품번호 23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전주곡)작품번호 23
  • 오재원
  • 승인 2019.06.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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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475)

■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최고 고난도의 피아노 수작
자신이 작곡가이기를 항상 갈망했던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진보주의보다는 낭만주의 피아니즘에 대한 업적으로 더 많은 평가를 받지만 생의 마지막 무렵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피아노 소품을 작곡하는 것은 교향곡이나 협주곡보다 나에게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 간단히 명료하게 말하자면, 소품 작곡은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소품들은 그 변화의 폭이 크지는 않지만 강렬한 개성을 가진 걸작들이다. 출판 당시부터 호응을 얻었으며 악보는 폭발적으로 팔렸고 모든 연주회에서 그의 피아노 소품이 연주되었다. 특히 전주곡은 그가 각별히 사랑했던 장르로 C#단조 전주곡 작품번호 3 제2번과 1910년 작곡한 13개의 전주곡 작품번호 32, 그리고 이 작품을 합해 모두 24개의 전주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10개의 작은 전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3회에 걸쳐 나누어 출판됐으며, 각각의 곡들이 개별적인 성격과 독립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어 극명한 차이가 있다. 구성적인 면에서도 바흐와 쇼팽, 스크랴빈 등의 전통적인 전주곡 형식보다 진일보했고 할 수 있다. 매 곡마다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고도 확장된 폴리포니를 띠면서 낭만주의적인 기교가 최고조로 발휘되어 연주와 해석 모든 면에서 최고의 기량을 요한다. 연주 테크닉, 조성과 화성, 리듬, 서정성, 타악기적인 가능성과 낭만적인 음색 등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세계가 바로 이 전주곡에 오롯이 담겨 있다. 각 전주곡 작품들은 작곡시기와 스타일이 현격하게 다르지만 그가 작곡한 총 24개의 전주곡도 쇼팽의 24개 전주곡처럼 조성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일관성이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1901년 행진곡풍의 전주곡 제5번을 먼저 작곡했고 나머지 전주곡들은 이듬해 결혼 후 완성되었다. 제1번, 제2번, 제5번은 1903년 2월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나머지 여섯 곡은 그 이후에 작곡되어 1904년에서야 비로소 ‘전주곡 작품번호 23’으로 온전히 출판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대단히 힘들었던 기간으로 이 작품을 작곡하게 된 동기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부터 기인했다. 거주할 집조차 없었던 라흐마니노프는 무기력증, 의기소침과 싸우고 있었다.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문제는 사촌인 알렉산더 질로티에게 의지해야만 했고 강한 창작열로 이 시기를 극복한 그는 그 결과물인 이 전주곡을 그에게 헌정했다.

△제1곡 F# minor Largo 쇼팽의 전주곡에 가까운 스타일로 자유롭게 구성된 작품이다. 단순한 분산화음을 반주로 하여 오른손으로는 서정적인 선율이 물결처럼 흘러나간다. △제2곡 Bb major Maestoso 왼손의 현란한 아르페지오 위에 오른손은 힘찬 주제를 노래하고  왼손에 애조 띤 선율과 함께 오른손은 이를 장식해 나가다 기대감을 높인다. △제3곡 D minor Tempo di menuetto 육중한 화음이 날렵하게 진행되면서 주제가 지나가고, 대위법적인 진행이 적절한 무게감을 실으며 긴장감을 더한 뒤 주제를 반복하고 끝을 맺는다. △제4곡 D major Andante cantabile 셋잇단음표의 완만한 리듬으로 시작하며 오른손의 애수 띈 선율과 베이스의 분산화음이 어우러지면서 야상곡 스타일을 보인다. △제5곡 G minor Alla marcia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다. 행진곡풍의 리드미컬한 주제 선율로부터 극적인 긴장감을 높여가는 전형적인 라흐마니노프 스타일이다. 우울한 서정을 거쳐 위풍당당하게 끝난 뒤 사그라지는 듯 짧은 코다는 무척 인상적이다. △제6곡 Eb major Andante 서정적인 주제가 분산화음처럼 진행된 다음 발전하다가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연상시키는 음형과 분위기를 자아내며 잔잔한 물결을 따라 끝을 맺는다. △제7곡 C minor Allegro 빠른 패시지와 오르간적인 울림으로 시작하면서 중후한 선율과 장식적 선율이 대비를 이룬다.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침잠해 들어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제8곡 Ab major Allegro vivace 처음부터 분산화음과 함께 화려하고 인상적인 선율을 왼손이 반주 형식으로 노래 부르며 클라이맥스를 맞이한 뒤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제9곡 Eb minor Presto 기교적으로 가장 난해하다. 대위법적인 진행으로 섬세하면서 다이내믹한 컨트롤과 음영 조절을 요구한다. 장대한 선율로 진정한 비르투오소를 위한 전주곡이다. △제10곡 Gb major Largo 단순하고 섬세하며 우아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싱커페이션의 반주를 받으며 주제를 노래 부르며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 연주하며 끝을 맺는다.

■ 들을 만한 음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피아노)(Melodiya, 1968, 1971)△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Decca, 1976)△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피아노)(RCA, 1990)△니콜라이 루간스키(피아노)(Erato,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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