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손자 양육일기
할아버지의 손자 양육일기
  • 유형준
  • 승인 2019.06.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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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77)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근처에서 조부모와 함께 오가는 어린이들을 보는 건 낯 설지 않다. 아들, 며느리 둘 다 세상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세상에서 조부모가 손자를 양육하는 일이 흔해진 까닭이다. 조부모 양육의 최대 장점은 정서적 안정감이라고 교육학자들은 말한다. 안정감에 덧붙여 부모의 자녀 교육에 경험을 보태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각 가정의 사정이 다르므로 빅데이터에서 구한 값을 개개 가정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한 가정의 절절한 조부 손자 양육기를 통해 그 값과 효험을 생각해보는 편이 더 슬기로울 지도 모를 일이다.

16세기 조선 중종에서 명종 시대사화에 휘말려 몰락한 어느 명문가는 자식복마저 참으로 박했다. 여섯을 낳았는데 대부분 천연두, 조산 등으로 모두 일찍 죽고 둘째 아들 하나만 장성하였다. 하지만 그 둘째도 어려서 열병을 호되게 앓은 후유증으로 여러 면에서 모자랐다. 이문건이 쉰여덟 살이 되던 1551년 정월 초닷새, 손자 수봉이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태어난 지 사흘 후 그 감격을 적고 있다.

“쉼 없이 생기고 생김이 하늘의 이치거늘 어리석은 아들이 자식을 얻어 가풍이 이어졌도다. 선조의 영혼들이 지하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앞으로 세상일이 더 잘 될 거다. 오늘 저 어린 손자를 기쁘게 바라보며, 노년에 네가 커 감을 지켜보리라. 귀양살이 쓸쓸하던 터에 좋은 일이 생겨 나 혼자 술 따라 마시며 경축하노라. 초 8일에 쓰다.”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과 정성은 남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16세기 조선시대의 자손에 대한 몰입은 엄청났을 것이다. 성리학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기에 가문의 위상과 명예를 세상의 어느 가치보다도 중히 여기던 때가 아닌가. 자손이 풍성하고 잘 자라서 이름을 널리 알리길 모두 바랐다. 집안 대대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로 잘 알려진 고려 말의 이조년, 영의정 이직 등의 인물들을 배출한 가문에서 자식의 수효가 가물었으니 달랑 하나 남은 손자를 향한 조부의 기대와 정성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특히 손자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아들은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오롯이 할아버지가 양육을 맡게 되었으니 그 열성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이문건은 손자의 성장을 낱낱이 기록하기로 작정하고 글 제목을 ‘양아록(養兒錄)’이라 정했다. 그리고 즐거운 기대를 가다듬어 짐짓 한가한 노인의 소일거리라며 일기의 서문을 쓴다. 

“아이 기르는 일을 꼭 기록할 건 없지만 그래도 기록하는 건 할 일이 없어서다. 노년에 귀양살이를 하니 벗할 동료가 적고 생계를 꾀하려고 해도 졸렬해서 생업을 경영할 수도 없으며 아내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고. 홀로 지내는데 오직 손자 아이 노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중략--- 아이가 장성하여 이걸 보게 되면 아마 글로나마 할아비의 마음을 알게 되리라. 1551년 귀양처에서 기록한다.” -‘양아록(養兒錄)’/노태환 저 ‘조선의 아웃사이더’[묵재는 이문건의 호]

그러나 기대와 달리 손자는 똑똑하지 못했다. 잘 잊어버려 암기에 서툴렀고 혀가 짧아 발음이 흐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에는 험하고 거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점차 들면서 공부에 대한 관심이 더 떨어졌고 술에 취해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일기는 성에 안 차는 손자의 행실과 그것을 나무라는 할아버지의 꾸중과 매로 점점 채워졌다. 이문건은 술에 탐닉하는 손자를 보고 탄식한다.

“늙은이가 아들 없이 손자를 의지하는데/손자아이 지나치게 술을 탐하여/번번이 심하게 취해 토하면서도 뉘우칠 줄을 모르는구나/운수 사납고 운명이 박하니 그 한을 어떻게 감당하리” -‘양아록:음촌주탄(飮村酒嘆)’ / 노태환 저 ‘조선의 아웃사이더’

학문을 게을리 하고 술만 마시는 손자일지라도 할아버지의 기대는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직접 책을 읽히고 틈나는 대로 성실함에 관하여 교육하였다. 그러나 느는 것은 꾸지람과 매 뿐이었다. 더구나 머리가 커진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한다. 실망과 아타까움은 절망과 분노에 이르러 사랑하는 손자에게 매질을 해대야 하는 허전한 조급함을 눈물로 일기 말미에 기록한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수봉이 어릴 때는 애처로워서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는데 지금은 글을 가르치며 어찌 조급하게 성을 내고 자애롭지 못한 것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 늙은이의 포악함은 진실로 경계해야할 듯하다. 하지만 손자 녀석 역시 매우 게을러 매일 익히는 것이 겨우 몇 장뿐이다. ---중략---  비록 엄하게 시켜도 끝내 말을 따르지 않으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후에나 그칠 것이다. 아! 눈물이 흐르는구나.” - ‘양아록:노옹조노탄(老翁躁怒嘆)’ 노태환 저 ‘조선의 아웃사이더’

세월이 쌓여 할아버지는 하늘의 순리대로 세상을 떴고, 이승에 남은 손자는 예상에 벗어나지 않고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전공에 대한 보상을 나라에서 주려하자 극구 사양하여 주위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도리어 단단한 열매다. ‘양아록’의 서문처럼 세상이 쉼 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하늘의 이치를 향한 할아버지의 믿음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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