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45 (목)
이 시대 바람직한 의료인
이 시대 바람직한 의료인
  • 정준기
  • 승인 2019.06.17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 준 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정 준 기 서울대병원핵의학과 명예교수

요즘 우리나라 의과대학에는 학업성적이 최우수인 학생만 입학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의대 지원생 이야기가 최고 인기 TV 드라마의 주제가 될 정도이다. 그러면 대학에 가서도 남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의사가 되면 그만큼 사회에 봉사하고 리더 역할을 하고 있을까? 성공적인 인생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가? 여러분 모두 수긍하지 못하고, 다른 전문가 집단 보다도 못하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혹시 공부할 것이 많고 일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 국민과 거리를 좁힐 여유가 없어서일까? 아닌 것 같다. 지금 보건의료 분야에서 조차도 많은 경우에 의사보다도 비전문가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왜 이런 괴리 현상이 생겼을까?

흔히 의대생의 선발과 교육 과정에서 원인을 찾는다. 의학은 우수한 지능에 장기간 꾸준히 공부해야 배울 수 있다. 여기에 의술은 인술이기 때문에 자기 희생과 남에 대한 봉사 정신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의과대학 입학생들은 이런 기본적 신념과 자세 없이 선택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단지 학업 성적이 아주 좋기 때문에 응시하기도 한다. 또 많은 경우는 높은 소득과 경제적 안정에 대한 본인과 주위의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에서도 광대한 의학 내용을 가르치다 보니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교육이 소홀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설령 의학 교육에서 강조해도 모델이 되는 사람이 적고, 구체적 실행 방법을 모른다.

여기 훌륭하게 모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원주에 있는 곽병은 원장이다. 이 분은 의대를 졸업한 이후로 의사로서뿐 아니라 사회복지사로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꾸준하게 돌보아 왔다. 역시 의사였던 아버지가 오히려 의학 전공을 반대했으나 그는 아버지를 본받아 봉사의 꿈을 키워왔다. 원주에서 의사인 부인과 함께 개업을 하면서 그는 30년 전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해 가난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다.

곽병은 선생의 봉사는 시대 상항에 따라 융통성있게 변해 왔다. 평소 소외된 분들을 위해 노인 공동체 시설인 ‘아녜스의 집’과 지적 장애인 시설인 ‘베닉노의 집’을 만들어 운영하여 왔다. 국가적 경제 위기였던 1997년 노숙자 무료 급식소인 ‘십시일반’을 개소해 무려 140 만명 분이나 되는 식사를 빈민들에게 제공하고, 자립 시설인 ‘원주노숙인센터’와 ‘봉산동 할머니의 집’을 열었다. 결국 이런 사회복지 사업은 ‘갈거리협동조합’으로 이어졌다. 그는 또 정부의 의료혜택이 등한시되는 곳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1991년부터 원주 교도소 보건의료과장을 겸직하면서 재소자의 보건과 인권을 돌보아 왔다. 한편 원주의 유곽 지역에 진료소를 설치하여 보건 활동도 한 바가 있다. 중앙 의대 의학박사인 그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도 해 가톨릭대학원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인권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하늘이 준 권리다. 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 편에서 참 의사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근 40년 동안 의사, 사회사업가로 전념한 그는 자연스럽게 ‘원주의 슈바이처’로 불리어 지고 대한민국 인권상, 아산상 대상, 성촌 의료봉사상을 수상하였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아산상 상금과 뜻을 같이 하는 의사들의 성금으로 ‘빈의자 의사회’를 만들어 현재 빈곤층에게 의료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모 문화재단의 일로 처음 만났으나 그는 겸손하고 또 친화력이 대단하여 금방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출신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나이인 우리는 서로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겹쳐 공감대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스스럼 없는 열린 마음이 그의 장점이 되어 ‘이웃집 의사 아저씨’ 같이 친근하게 일반인에게 다가설 수 있었으리라.
우리는 요즘 젊은 의료인의 자세와 생각을 염려하고 그 대책을 서로 이야기하였다. 의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나에게 그동안 느낀 것을 말했다. 초청 강연으로 의대 학생들에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여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그들에게는 의술을 보상하는 경제적 대가가 아주 중요하단다. 그러나 현실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의료인은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는 못하다.

의술은 인술이고 의학은 생명 증진이 목적이다. 여기처럼 쉽게 인류에게 봉사하고 건강 생활을지도해 줄 수 있는 분야가 없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가 국민 가까이에서 노력하고 이해시켜 보건 사회의 리더인 본래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우선 높은 소득을 기대하거나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원가 개념의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대폭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나 현실은 부정적이다.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도 의사의 평균 소득이 아주 높지는 않다. 경제적인 면만 추구한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분야를 선택하도록 권하자.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라는 책에서 제목 그대로 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은지, 존재의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은지 비교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자본주의자 같이 ‘소유적 삶의 방식‘에 집착하는 한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소유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 행복해지려면 자신의 ‘존재적 삶’에 집중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의료인이 다른 배금주의자처럼 소유에 집착하면 일반인과 간격만 더 커진다. 우리는 사람을 고치고 보건 사회를 주도하는 ‘의사’로서의 존재에서 가치와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생각과 행동에서 사람들은 우리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하고 리더로 추앙할 것이다.

나는 헤어지면서 그에게 왜 의료봉사를 계속 열심히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습관적인 행동? 자기 만족? 자아 완성? 아직 잘 모르겠다. 앞으로 계속 봉사하면서 답을 찾아보겠다.”

곽병은 선생은 사회 봉사자의 모델을 넘어서, 에리히 프롬의 ‘존재적 삶’을 진정으로 실천해 자아 완성에 다다른 이 시대의 바람직한 의료인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