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빚는 영혼의 소리…서양악기보다 매력있어요”
“‘혼’ 빚는 영혼의 소리…서양악기보다 매력있어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6.1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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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매력에 푹 빠진 하태국 포근한맘요양병원 원장

“죽기 전에 거문고 산조 한번 제대로 신명나게 연주해 보는 게 꿈입니다. 평생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한도 내에서 거문고의 최고 달인이 되어보자는 목표를 향해 한번 정진해 보려고요.”

북한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산의 정기를 그대로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호젓한 공간에 위치한 포근한맘 요양병원 하태국 원장. 도봉구의사회 법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요즘 바쁜 병원일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현악기인 거문고의 매력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비내림 국악관현악단 악장으로서 동료 단원들과 함께 지난 6월 8일 제2회 정기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내림 국악관현악단은 국립극장에서 주최한 아마추어 관현악단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이 우리 고유 전통 악기 연주의 즐거움과 무대 위에서 경험했던 설레임을 잊지 못해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지난해에 창단했다.

의사, 직장인, 학생, 주부, 변호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 경험을 가진 단원들로 구성되어 음악적 역량 향상이라는 개인적 성취를 추구할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국악을 소개하고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과 음악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이를 통해 침체된 국악의 저변까지 확대돼 생활예술로 자리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한다.

하 원장은 최근 성공적으로 마친 제2회 정기연주회 당시 느꼈던 설레임과 흥분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숨김없이 드러냈다.

“관객들 앞에서 우리가 그렇게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는데 점점 완성도를 높여가며 상승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모두 아마추어 연주자들이지만 정말 어렵다고 정평난 신곡까지 성공적으로 연주해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불과 3년 전부터 거문고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해 뜬금없이 관현악단 활동까지 하게 됐고 더해 악장까지 맡게 됐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거문고 실력이 일취월장하며 주변에 놀라움을 주고 있는 하 원장이지만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작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많았지만 소양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사실 그가 거문고를 정식으로 배우게 된 것도 지금으로부터 3년 전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다만 거문고와의 인연은 꽤나 오래되어 서울의대 94학번인 그가 연건캠퍼스가 아닌 관악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예과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의 의대 동기인 조현정 현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가 먼저 서울대 본교 국악동아리에 가입해 거문고를 배우고 있었는데 의대 대동제 축제 때 가부좌를 틀고 연주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무게감 있으면서도 정적인 느낌을 주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역시 당장 도전하고 싶었지만 당시 끝도 없는 의대 공부량의 압박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후 졸업하고 강릉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조 교수가 거문고 연주 CD를 선물해줘 들어봤지만 전통적으로 ‘선비들이 즐기는 악기’라 불릴 정도로 정적이고 난해하며, 서양 현악기로 치면 ‘콘트라베이스’와 비교될 정도의 굵은 저음에 매번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그의 거문고에 대한 관심도 열정도 ‘그냥 그런’ 수준이었던 것.

그러다가 공중보건의 복무와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 수련까지 마친 이후에나 제대로  여유가 생겨 거문고에 정식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막상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병원일을 하며 잠시 접어두고 있던 중 3년 전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조현정 교수가 이사를 하면서 하 원장에게 생각이 있으면 자신의 거문고를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하 원장은 “이때다” 싶어 즉시 일산으로 달려가 조 교수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소중히 거문고를 모셔왔다.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마침 당시 환자의 지인이 거문고 전공자여서 주 1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에게 ‘신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선비들이 하는 악기인 거문고의 중후한 소리에 저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어요. 그냥 악기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 인생의 악기를 드디어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죠.”

가야금과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 소리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현과 악기의 몸체인 울림통이 똑같은 주파수 대역에서 반응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이 듣기 좋은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현과 울림통이 같은 주파수에서 떨려야 하는데, 가야금과 거문고는 이 같은 특성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더해 하 원장은 “거문고는 현악기면서도 타악기의 요소도 갖고 있다. 가야금처럼 손으로 직접 켜는 게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술대로 때리며 켜기 때문”이라며 “이런 연주법은 전 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악기 중 거문고만이 유일하다”고 ‘거문고 예찬론’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음색이 아름다운 만큼 연주도 쉽지 않아 그는 거문고를 시작한 이래 정규 레슨 시간 외에도 주 2-3일에 한두 시간씩은 꼭 빠트리지 않고 개인 연습을 하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2주에 한 번 있는 국악관현악단 합주 연습에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일단 거문고는 소리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음이 기타처럼 누른다고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줄 자체도 매우 두꺼워서 운지를 하면서 음을 맞춰야 한다. 하 원장은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온 자연스럽고 친근한 거문고 소리와 장단은 여느 서양 악기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그의 재능을 환자들을 위해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암환자요양병원인 그의 병원에서 6년 전부터 매년 송년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전까지는 하 원장이 직접 기타 연주를 선보이다가 3년 전부터는 ‘기종’을 전환해 거문고 연주를 선보이고 있고 틈틈이 따로 익힌 대금 연주도 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장이 직접 선보이는 연주에 누구보다 환자들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한다. 오는 9월 28일 서울대 가정의학과 4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동료의사들 앞에서 거문고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암치료요법은 항암제와 수술치료만 있는 게 아니라 음악치료와 미술치료 등 예술치료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과 영혼까지 움직여야 근본적인 치유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거문고의 ‘거’짜도 모르던 제가 짧은 시간 동안 연주 실력이 향상하는 모습을 환자들이 지켜보며 새로운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면 치료회복효과도 당연히 더 커질 수 있겠죠. 이런 면에서 결국 음악을 통한 제 자신의 ‘힐링’뿐만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환자들을 위한 진정한 ‘힐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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